1. 인도.네팔 여행 1일차(7월 19일)
일정 : 인천공항 출발. →네팔도착, →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 관광.
이번에 가지 못하면 못 갈 것 같아 모든 일을 제켜 놓고 결정한 고대하던 인도. 네팔 여행이다.
어제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선잠으로 자는 둥 마는 둥 핸드폰의 아람을 듣고 일어난 시간이 4시 반.
그래도 혈압약은 먹어야겠기에 어제 병원에서 타다 놓은 약을 먹으려니 보이지 않는다.
“아이고, 이거 사무실에 놓고 온 것 아녀?”
그래도 다행이다. 집이 안양이고 사무실이 신대방동이니 차로 들렀다가 독산 노보텔에서 공항 버스를 타면 오히려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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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이다. 비행기도 서너대밖에 보이지 않았다. |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빗속을 가르는 승용차의 속도감에 새벽 공기에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사무실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에 혈압약이 없다. 순간 아찔한 느낌이 든다.
“그럼,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집에 갖고 갔는데, 찾질 못했다는 것인가?”
시계를 보니 6시 10분 전이다. 지금 다시 집에 갔다가 공항까지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시간이다. 공항에 약국에서 혈압약을 살 생각으로 독산노보텔 앞에서 공항버스를 타니 6시 30분이다. 아무래도 모이라고 하는 시간이 7시 10분까지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거 차는 왜이리 천천히 가는지…
결국 20분이 늦은 7시 30분에 도착해 여권을 받고, 배낭은 수화물로 부쳤다. 배낭
속에 있던 노트북은 수화물로 부치는 것이 부서질 위험도 있어 들고 타기로 하고
사진기는 배낭에 넣은 채로 수화물로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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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거리의 아이들. 어느 나라나 돌보지않는 아이들이 있나보다. 야바우를 하는지 돈을 걸고 있다. |
공항 약국에서 혈압약을 달라고 하니 공항 병원이 있으니 처방을 하여 구입하라고 한다.
지하 1층에 가 진찰을 받고 약을 구입하고 나니 이제는 비행기를 타는 시간이 빡빡해진다.
비행기 표에 나타난 시간이 9시 20분, 가까스로 그 시간에 맞추어 땀을 뻘뻘 흘리며 19번 출구에 들어가려 이건 또 웬 말인가…
비행기가 20분 디레이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 출국 하기 전부터 매끄럽게 되는 것이 없고 계속 엇갈리기만 하는 것 같다.
비행기를 탔다. 먹고 자다 음악을 듣고 비디오를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다리가 뻐근하고 아랫도리에 저절로 힘이 주어질 즈음이 되니 드디어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한 나라 수도의 국제 공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한적한 카트만두 국제공항이다. 우리 비행기와 합하여 고작 3대의 비행기만 있을 뿐이다. 인천 공항이 서울역이라면 카트만두는 한적한 시골 정거장이라고나 할까?
비행기 트랙을 내려와 걸어서 20미터 정도를 걸어가니 공항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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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시내의 번화가다. |
네팔 비자를 신청하는데 30불을 지불해야 한다. 출입국 관리 요원이라야 돈을 받는 사람이 한 사람, 비자 스티카를 여권에 붙여주는 사람 한 사람, 그 스티카 위에 볼펜으로 기록을 하는 사람 한 사람. 이렇게 세조가 한 팀이 되어 입국 수속을 받고 있었다. 우리와 같이 모든 것을 전산으로 처리하지 않아 포근한 70년대의 옛 추억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정겹다. 바로 옆 창가에 수북이 쌓인 잡초 속에 두 여인네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풀을 뽑는지 무슨 잡일을 하는 것 같은데, 옷차림이 빈티가 나지 않는 화려한 차림세다.
다음은 1층으로 내려와 수화물을 찾는 곳이다. 다른 사람들의 짐은 다 나왔는데 내 배낭은 아직도 보이질 않는다. 나중에야 배낭을 찾아 공항을 나오니 공기가 신선하다. 먼산에 하얀 구름이 산 중턱에 걸쳐있다. 일행들은 네팔의 정경을 담으려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어댄다. 나도 배낭에 넣었던 사진기로 사진을 찍으려고 찾아보니 도시 보이질 않는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든다.
“도둑 맞은 것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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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부유층의 가족인 것 같다. 차림새가 호화롭다. |
분명 배낭 위 주머니에 사진기를 넣었는데 보이질 않는다. 밧데리도 4개씩이나 넣어두었는데 역시 보이질 않는다. 공항에서 잊어버린 것이다.
처음에 수화물로 물건을 붙일 때도 좀 불안했는데 그 불안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득 예비 모임 때 인도 여행사 사장의 말이 생각이 난다.
“인도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기회를 주면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위로했다.
“허긴, 배낭에 자물쇠를 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지. 잊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적선했다고 생각하자” 라고 ….
공항에서 호텔까지 오는 길은 그야말로 내가 불안할 정도다. 그 좁은 길에 사람과
오토바이, 싸이클릭샤(세발 자전거), 택시들이 뒤엉킨 곳을 비집고 가는 버스 기사
는 운전의 도인인 것만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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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르바르 광장의 꾸마리 사원 |
카트만두 로얄싱기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방 배정을 받고 걸어서 관광.
원래는 한국말을 하는 인도 가이드가 오기로 했는데, 가이드가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 내일 아침에 온다고 하여 영어를 하는 네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몇몇 사람들은 아예 인도 가이드는 내일 오지도 않을지도 모른다고들
한다.
여하튼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영어 통역을 받으며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으로 걸어서 갔다.
왕궁 앞이니 시내의 중심가 일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거리에는 허연 먼지를 뒤집
어 쓰고 꽤재재한 얼굴의 청소년 노숙자를 포함해서, 우리들이 지나 갈 때면 여기
없이 나타나는 구걸하는 어린아이들, 구걸하면서 코걸이, 귀걸이, 발찌까지 낀여인,
정말 다양한 형태의 구걸자들이 있다.
더르바르 광장
요금 : 200루피.
더르바르란 말을 왕궁을 뜻하는데, 16-19세기까지 실제로 카트만두 일대를 통치했
던 구왕궁인 하누만 도카(Hanuman Dhoka)는 가이드와 의사소통이 되지않아 들어가
보지 못했고, 꾸마리 사원(Kumari Bahal), 쉬바 빠르바티 사원(Shiv Parvati
Temple), 떨레주 사원 등 여러사원들이 광장 일대에 몰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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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마리 사원 입구에서 꾸마리의 사진을 팔고 있는 여인들. 배의 살이 불편하지도 않은가 보다. 인도 부인들은 이보다 더 살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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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를 내는데, 요금 받는 곳만 있고 경계나 표를 검색하는 사람도 없어 단체의
경우에는 몇 사람은 덤으로 구경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관광객의 양심
상 전원이 표를 샀다. 이 관람료의 일부라도 네팔 서민들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심
정에서다.
더르바르광장에는 네팔의 모든 계층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며칠째 세수도 하지 않아 하얀 먼지를 뒤집어 쓴 자거나 그저 멍하니 앉아있는 노숙자에서부터 화려한 네팔 전통 옷을 입은 부유층 여인까지 광장에 모여 있었다. 지나가는 관광객에서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객에게 구걸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네팔 사원은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는 것은 별로 없고
주위에 서민들의 주택들도 있어 어수선하고 관리하기가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꾸마리 사원 : 살아 있는 여신인 꾸마리를 섬기고 있는 사원으로 4-5세의 여자 아이를 대상으로 용모, 별자리등 몇 가지를 보고, 몇 명 선발하여 그 중 한 명을 달라이 라마를 선출하는 과정을 거쳐 1명의 꾸마리를 선택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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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르바르 광장의 비시누신. 독수리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
이로부터 살아있는 여신 꾸마리로 추앙을 받게되고 초경을 하기 전까지 가족을 떠나 이 꾸마리사원에서 지낸다고 한다. 꾸마리는 사진을 찍으면 않되고, 우리들이 갔을 때도 아주 잠깐 동안, 몇 초 얼굴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바산타뿌르 광장
꾸마리 사원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마헨드라 박물관과 바산타뿌르탑이 있으며 옛날에는 코끼라 훈련장이었지만 지금은 기념품상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기념품의 종류도 대부분 똑 같은 것이어서 흥미가 없었다. 가이드 말로는 기념품을 사는 방법으로 사원에 들어갈 때는 관심도 보이지 말다가 나올 때 깍을 경우 잘하면 반값에도 살 수 있다고 한다. 한 예로 손으로 만든 네 줄 바이올린의 경우 들어갈 때는 10불을 이야기 했다가 버스를 타고 네고해 4불에 산 사람을 보았다.
카트만두의 관광을 하고 영문 가이드의 추천으로 한 사람 앞에 600루피씩을 하는 집으로 저녁을 먹으로 갔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큰 돈이 아니지만 네팔 돈으로는 큰 돈이다.
들어가는 입구가 컴컴하고 어둡다. 나오는 메뉴는 감자튀김과 쏘스, 한 그릇에 닭고기, 살짝 삶은 야채, 카래와 감자와 브룩커리 데침과 무슨 고기가 나왔고 후식으로 라이스 푸딩이 나왔는데 별로 입에 맞지는 않았지만, 먹어 줄 만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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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기념품 파는 가계들 |
조그만 흙으로 만든 듯한 술잔에 따라주는 네팔의 독주라는 것이 흙 냄새와 어울려 자꾸 들어간다. 아마도 일곱 여덟 잔은 먹은 것 같다.
우리들은 음식을 먹고 나니 공연을 3층에서 한다고 한다. 올라가 보니 넓은 마루방 같은 곳에 탁자와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있게 되어있고 촛불이 탁자에 켜져 있어 답답함을 느꼈지만, 일단은 운치가 있어 보였다.
조금 있으니 영어로 설명이 나오고 공연이 펼쳐진다. 알딸딸한 상테에서 아릿다운 티베트의 무희들이 네팔의 4계절을 표현한 춤을 보니 색달랐다. 하지만, 춤 솜씨는 무뇌한인 나의 눈으로도 서툰 동작이 보인다. 아마도 여자들은 지루하고 졸렸을지도 모른다.
공연을 구경하고 돌아오면서, 모기향에 불을 붙일 라이타를 사려고 복대의 지갑을 찾으니 지갑이 없다. 순간 머리가 아찔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음식점에서 잊어버렸다는 것인가?”
여행 첫 날인데, 앞으로 지낼 일이 까마득하다.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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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 음식들. 저녁 먹을 때 찍은 사진이다. |
가이드에 연락을 해서 음식점에 가서 찾아 보기로 했다. 2층에서 음식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해준 기억이 생생한데, 지갑이 없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네팔 종업원들과 탁자 밑을 쳐다보기도 했지만 찾을 수 없다. 종업원들도 난감해 하는 모습이 보인다. 난 포기한 상태에서 가이드에게 가자고 하며 2층 문턱을 나올 때다. 가이드가 한번 포켓을 찾아 보라고 한다. 무심코 뒤 주머니를 만져보자 지갑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생각이 나는 것 같다.
2층 음식점에서 술을 먹고 풀어진 상태에서 지갑을 복대에 넣지않고 평소 한국에서 뒤 주머니에 지갑을 넣는 습관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복대에만 넣은 것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렸다는 당혹감에 아무 생각을 못한 것이다.
실로 천당과 지옥을 다녀 온 느낌이었다. 식당을 나오면서 주머니 확인을 시켜준 가이드에 고마움을 느꼈다. 주머니에 잡히는 100루피 짜리 하나를 쥐어주니 안받으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가이드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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