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428장)
※말씀: 출애굽기 12장 1-14절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8절)
■ 주님의 뜻
"하나님의 포옹" 콘서트, 교회, 축제, 여기에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소에서도 누구나 쉽게 혼자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디서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씁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이나 유명해지는 것을 통해, 또 어떤 사람은 소셜 네트워크나 온라인 게임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하려고 합니다. 그처럼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은 인간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그러한 연결을 찾으려고 하면 진정한 연결은 우리를 피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과의 연결이 잠시는 만족을 줄 수 있지만 결국 우리를 온전히 충족시켜 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자로서 우리를 안으려고 가까이 계십니다. 하나님과 포옹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데이브 비어만'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을 팔로 안으시고 사랑의 말을 속삭이시는 위로자가 가까이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키면서 무교병을 먹습니다. 그런데 무교병을 먹을 때는 반드시 쓴 나물과 함께 먹습니다. 그럼 "쓴 나물을 먹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 쓴 말을 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성도는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이 상처 되는 말을 하더라도 상처를 받을 수 있어야 성숙한 인간입니다. 너무 단세포적으로 대응하면 적은 사람입니다. 무교병 된 성도는 쓴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윗 왕과 사울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울 왕은 하나님의 종 사무엘의 쓴말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의 쓴말을 받아 드렸습니다.
□ 쓴 결단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이기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안 되는 것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습니다. 각박한 세상입니다. 이런 생존경쟁 속에서도 양보할 줄 알고 손해 볼 줄 알면서도 그런 방향으로 결단할 수 있다는 것은 무교병 된 성도들의 특징입니다. 그 극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죽는 데까지 쓴 결단을 할 줄 알아야 무교병입니다.
□ 쓴 일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교병 된 성도는 쓴 일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쉬운 일보다는 쉽지 않은 일들이 많고, 하기 좋은 일보다는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눈치나 보면서 체면 때문에 일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을 믿음으로 하는 성도가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쓴 사람과도 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그러나 무교병인 성도들은 누구나 다 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원수도 사랑할 수 있어야 무교병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유교병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무교병입니다. 무교병은 쓴 말을 먹을 줄 알아야 하고, 쓴 결단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쓴 일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쓴 사람과도 교제 할 줄 알아야 무교병입니다. 할렐루야!
■ 주님께 기도
하나님, 우리가 쓴 나물을 먹을 수 있는 성숙함을 허락하시고, 쓴 말도, 쓴 결단도, 쓴 일도 할 줄 알게 하시며,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교제할 수 있는 여유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