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도를 출항한 여객선은 약 20여분 만에 고대도에 닿았다
섬에 옛 집터가 많아서 고대도라고 부른다고 전해진다
인접해 있는 장고도와 함께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한국의 수많은 섬 중에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고대도가 명소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땅에 최초로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진 섬이기 때문이다
해안선 길이 4.3km인 고대도는 삽시도 북쪽 4.5km에 위치하고 있다
대천항에서 여객선을 타면 삽시도를 거쳐 장고도에 이른 다음 고대도로 간다.
고대도는 'GOD愛島'라는 명칭으로 ‘하느님이 사랑하신 섬’이라고 부르고 있다.
G는 ‘Gate’라는 의미로 보령시 관광의 새로운 거점이란 뜻을 담고 있다
O는 ‘Ocean’으로 해양문화자원을 기반으로 한 관광콘텐츠 개발을 의미한다
D는 ‘Destination’으로 해양문화 기반의 새로운 테마공간 구축을 의미한다
선착장에서는 주민들이 반지락을 운반선에 싣고 있었다
청정해역에서 채취한 반지락은 씨알이 굵고 먹음직스러웠다.
선착장을 나서자 아담하게 단장된 마을 표지석이 나타났다
표지석에는 ‘하느님이 사랑하신 섬 GOD愛島'라고 씌여 있었다
두 여인을 거느린 회장님의 얼굴에 행복이 넘쳐흐른다 ㅎㅎ
선착장 바로 앞에 대구 동일교회에서 운영하는 고대도 선교센터가 있었다
칼 귀츨라프 선교 기념관이 같이 있어서 한번쯤 들어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귀츨라프는 1832년 우리나라를 최초로 방문한 선교사라고 한다.
선교센터 입구에 칼 귀츨라프 일행이 타고 왔던 로드 애머스트호(Lord Amherst) 모형이 있었다
관리인은 당시의 애머스트호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문호 개방과 통상을 요구했던 최초의 이양선으로 알려진 배다
귀츨라프는 1832년(순조32년) 섬에 도착하여 배를 정박해두고 약 한 달간 머물렀다.
고대도 주민들을 위하여 해변에 감자를 심고 그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다.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게 했을 뿐 아니라, 한글을 선교잡지를 통하여 세계에 소개하였다.
국왕에게 성경과 전도문서 및 유리그릇, 담요 등을 선물하고 한문으로 쓴 통상청원서를 올렸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통상 청원을 거부하고 성경은 되돌려 주었다.
복음과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앞당길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은 애석한 일이다.
마을은 장고도에 비해 깔끔하고 활기가 넘치는 것 같다
집집마다 아담한 화단을 가꾸어 있어 더욱 예뻤다.
고대도의 명물인 선바위를 보기 위해 마을 끝으로 이동한다
선바위로 가는 길은 시멘트로 만든 다리로 이어진다
외딴 섬에까지 많은 돈을 들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과연 선진국이다
예전에 고대도에서 굴을 체취하던 시절에 유난히 이곳에서 굴이 잘 자랐다고 한다.
언덕처럼 보여 언덕 '여'자를 붙여 ‘뱅부여’라 하였다고 한다
'뱅부여'란 굴이 잘 자라는 언덕이란 뜻이라고 한다
보령시와 칼 귀츨라프학회는 귀츨라프 일행이 고대도에 닻을 내렸던 옛 항구에 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그는 독일 출신으로 네덜란드 선교회를 통하여 중국에서 선교한 루터교 목사이다.
우리 한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려던 그의 소원과 열정이 감명 깊다
기념비 옆으로 특이한 철골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름이 <도시의 기억, 베를린>인데, 이름만 보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귀츨라프가 졸업한 베를린 선교학교를 세운 베를린 보헤미야교회를 기리는 작품이다.
2016년 스페인 설치미술가 후안 갈레이사발이 고대도 현장에 와서 설치했다.
밤에 빛나는 조명과 함께 보면 더욱 아름답다고 하는데...아쉽다
시멘트 다리길을 10분 정도 걸어가면 끝이 보인다.
그리고 갯바위와 모래밭이 이어져 있고 그 끝자락에 우뚝 솟은 바위 하나가 보인다.
이 바위가 '선바위(돛단여)'다.
고기잡이 나가는 어민들이 하루의 무사함을 빌며 한 번씩 머리를 숙이고 지나간다는 바위이다.
이곳에 귀츨라프의 배였던 로드 애머스트호가 정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이 매우 아쉬웠다.
선바위에서 되돌아나와 가운데말 안길로 들어섰다
청룡초등학교 장고분교 고대학습장이 나타났다
고대분교는 폐교되었는데 이 생소한 이름은 무엇일까?
고대분교 터에는 칼 귀츨라프 해양역사전시관이 들어섰다
고대도에서 가장 멋지고 우아한 건물이다
아직 미개관상태인데 선교센터가 이곳으로 옮겨질 것이라 한다
현대화된 특이한 건물이 보인다.
십자가만 아니라면 무슨 시설물처럼 보인다.
바로 고대도교회인데 섬의 교회치고는 상당히 세련된 건물이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예쁜 건물이다.
고대도교회는 귀츨라프 선교사가 고대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지 150년이 지난 1982년 설립됐다
교회 앞에는 한글을 영어로 번역한 그림이 있었다
귀츨라프가 한자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한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일부이지만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최초 시도로 알려져 있다
주기도문이 칼 귀츨라프를 통하여 고대도에 최초로 전파되었던 것이다.
당너머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옆에 각시당이 있는 당산이 있다.
당산 표지판 뒤로 황토흙으로 된 기와를 얹고 담장을 둘렀다
제단에는 '각시당'이라는 검은 대리석으로 된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1999년에 당집에 불이 나 전소하는 바람에 다시 지은 것이 지금의 제단이다.
또랑산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였으나 그냥 내려왔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은 숲속으로 난 나무데크로 이어졌다.
새로 지은 매표소가 아주 멋지다
'돛방굴'이란 이름이 궁금했는데 주민에게 물어서 해소하였다
이곳은 매립한 곳인데, 매립 전의 옛날 지명이 '돛방굴'이라 한다.
매표소 2층에는 '퓌리츠'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퓌리츠(Pyritz)'는 칼 귀츨라프가 태어난 독일의 고향마을이라고 한다.
지금의 퓌리츠(Pyritz)는 폴란드 땅에 속해 있다.
고대도는 귀츨라프의 스토리로 가득 차있는데....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요인이다.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근심 걱정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부분
고대도는 귀츨라프의 스토리를 잘 활용하는 느낌이다
최초로 개신교 선교를 시도한 지역이란 타이틀이 매력적이다
하루에 두개의 섬을 둘러보고, 오후 4시 25분에 출항하는 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