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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음( A Beautiful Mind ) 김수영 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육백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가스실에서 처형되어 죽어 갔지만, 그중에 살아남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살아 남아 유대민족의 전통을 이어 나가게 되었는지 참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있다. "독일군이 유대인을 학살할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독일군에게 있는 인간의 양심이었다. 그 양심을 없애려고 독일 군부는 유대인들을 짐승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3만 명이 넘는 수용소에 화장실을 몇 개만 만들었다. 할 수 없이 유대인들은 아무 데나 배설했고, 배설물과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을 보며 독일군의 양심은 점점 사라져갔다. 수용소 생존자들은 대개 인간다움을 잊지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매일 4시 반이 되면 수용소에서 한 사람마다 따뜻한 물 한 컵씩을 제공 받았다. 어떤 사람은 그 물을 받아 조금 먹고 나머지 물을 아껴 세수했다. 그리고 최후의 남은 물을 조금 사용해 옷 조각으로 이빨을 닦고 수용소에서 발견한 유리조각으로 깨끗하게 면도를 했다. 내일 죽어도 인간다움을 잊지않겠다는 인간 존재의 몸부림이었다. 독일군에게 가장 무서운 항거는 그런 인간다움의 몸부림이었다. ‘짐승 죽이기’는 쉽지만 ‘인간 죽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군은 유대인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이 되기를 원했지만, 끝없이 인간다움을 위해 몸부림친 사람들은 죽더라도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죽기를 원했다. 인간다움의 선언이 있는 곳에 생명의 길이 있다. 매일 일정시간이 되면 독일군은 처형 자들을 골라냈다. 그때 잘 면도 된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더럽지만, 분명히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들은 처형 자로 선택되지 않았다. 무자비한 나치도 짐승은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인간은 쉽게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에 글에서 언급했둣이 우리 인간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정반대로 엄청나게 달라 질수가 있다. 네덜란드 출생의 포르트갈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란 말은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의 말이 되는지 모른다. 특히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여유와 희망을 주는 말이다. 사람 대부분은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죽음이 오기도 전에 절망 가운데 스스로 먼저 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해도 한 예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라 하겠다. 엘비스 프레슬리, 말린 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악물 중독으로 인한 자살과 총으로 자살한 예라 할 수 있겠다. 참으로 귀한 생명을 이렇게 허무하게 마감할 수 있을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유대인들의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 가운데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 참 많다. 아인슈타인 박사, 헨리 키신저 박사., 엘렌 그린스펀, 할리우드 영화계를 주름잡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 많은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후손들이 미국에 와서 기라성같이 미국의 경제계 언론계 방송계를 주름잡고 있다. 그 유명한 후손들 가운데 나는 스티븐 스필버그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스필버그의 어머니 리아 아덜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영하는 식당에 미국기자가 찾아가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까 그녀의 아들 스필버그는 어릴 때 매우 소심했고 내성적인 성격이 되어 학교도 잘 안 가고 집구석에 처박혀 그림이나 그리고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이나 찍고 놀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가면 급우들이 항상 ‘더러운 유대인’ 하고 놀려 대고 왕따를 당하고 말할 수 없는 모욕감과 수치심에서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학교 안 간다고 절대로 야단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격려해 주고 장려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할머니는 ‘너는 둘도 없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야,’ 하며 그의 잠재능력을 바라보고 앞으로 대성할 것을 기대하면서 그를 위로 했다고 한다. 스필버그의 부모님은 우리 한국 부모님과 무척 다르다는 것을 보고 유대인 교육이 얼마나 잘되어 있나 살펴보았더니 다른 민족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는 매우 놀랐다. 그래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됨을 알았다. 한국 부모님 같으면 자녀가 학교를 무단결석하면 E育?치고 야단법석을 떨고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자녀를 학교 가라고 강요를 했을 것인데,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자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개발시켜 나가도록 뒷받침을 해준 사실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필버그는 영화감독의 괴재가 되어 영화계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다. 쉰들러 리스트로 아카데미 영화 감독상과 오스카 영화 감독상을 받는 데 드디어 성공하게 된다. 인디아나 존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영화의 많은 수작을 만들었지만, 쉰들러 리스트는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민족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자기가 어릴 때 격은 그 아픔을 쉰들러 리스트에 반영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영화 아름다운 마음(A Beautiful Mind)은 실제 살았던 인물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탄 John Forbe Nash의 일생을 그린 영화이다. 1998년 풀리쳐상을 탄 Sylvia Nasar 의 소설 '아름다운 마음'은 그 당시 bestseller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2002년에 4개의 아카데미상 -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각본상, 최우수 여우 조연상을 받았다. 그 외에도 많은 상을 휩쓸었는데 BAFTAs 에서 수여한 최우수 남우 주연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Best Film 상, Best Screenplay 상, Best Featured Female Actor 상, Movie of the year, Actor of the year(Russell Crowe), Screen writer of the year 등 상을 탄 작품이다. 죤 내쉬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수재로서 곧 MIT 대학교 교수가 되지만 어느 날 윌리엄 파쳐라는 사람이 찾아와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라며 적국 러시아가 대중잡지 속에 감춰둔 암호를 해독하라는 부탁 아닌 명령을 내린다. 그는 모든 일을 제치고 그 일에만 몰두하여 일이 진전되는 대로 보고서를 만들어 비밀건물의 우편함에 넣곤 하다가 아내 알리사가 수상히 여겨 정신병원에 알렸고 내려진 진단은 심한 환각증세를 동반한 정신분열증이었다. 환상 가운데 보고 지시대로 움직인 정신병의 행동임이 판명이 된 것이다. 아내의 극진한 보살핌과 간호로 회복된 그는 다시 프린스턴 대학으로 돌아와 학과장이 되고 연구를 계속 거듭한 결과 199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받게 된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아내의 희생적인 사랑과 헌신이 아니었으면 회복이 불가능한 체 일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냈어야 했을 텐데 아내의 그 아름다운 마음 때문에 재기의 꿈이 이루지게 된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자기 죽음을 앞두고도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친 결과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자기 자신이든 제 삼자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때 기적을 낳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할머니나 어머니의 아름다운 마음 때문에 우울증으로 시달릴 뻔 했던 그가 미국영화계 아니 세계영화계를 주름잡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마이클 잭슨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아내나 주위 가족들이 있어서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면 그가 약물에만 의지 안 했을 것이고 록펠러나 빌 게이츠나 버핏처럼 좀 더 베푸는 삶을 살았다면 주위에 더 많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약물중독으로 심장마비를 일으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수록 가정이 밝아지고 사회가 밝아 지고 국가가 밝아지리라 기대해 보면서 나부터 아름다운 마음 갖기를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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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화 'A Beatiful Mind'를 저희 부부는 후배 이성기부부와 함께 극장에서 보았습니다. 수학을 너무 사랑해 미친 남자.. 그러나 그 사랑도 아내의 사랑을 이기지는 못했지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주인공 죤 내쉬가 노밸경제학상을 받을 땐 깊은 감동을 받았었지요. '아름다운 마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 수영선배님의 글, 호평을 받으실만 합니다. 늦었지만 큰 축하드립니다.
동문님 감사합니다. 동문님도 이 영화를 보셨군요. 너무 감동적이였지요.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였습니다.
600만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는 것은 유대계 미국인과 영국인(승전국)들의 일방적인 선전이라고 합니다. 전후에 소련이 점령군으로서 재조사한 바에 의하면 28만4천명정도라고 합니다. 아우슈비츠의 기념동판에 새긴 학살자 숫자도 정정해서 교체했구요. 지금까지 우리는 유대인들의 일방적인 선전 선동에 의해 진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또 하나, 왜 유대인들이 그렇게 죽임을 당했는지에 대한 분석도 해 봐야 할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만약에 아랍이 강해진다면 중동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유대인중에도 "이제는 홀로코스트 산업을 더 이상 왜곡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왜 유대인들이 대량 학살을 당해야만 했던가'를 제가 파헤친 수필이 '말의 위력'입니다. 동문님은 저의 수필을 안 읽어 보신 것 같군요. 제가 다시 답글에 올려 볼테니 읽어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태인들의 학살당한 숫자는 역사에 600만명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서 그런줄 알았는데 사실이 왜곡 되었군요. 요는 숫자가 중요한 것아 아니고 역사적인 사실이 중요 하겠지요. 동문님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숫자가 중요하지요. 6백만이라는 터무니 없는 허구의 숫자는 유태인 역사학자들 조차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고 얘기할 정도의 과장된 말도 안 되는 숫자구요. 유대인 대량학살의 증거가 전혀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 허무맹랑한 일방적인 연합국 측의 증언들 뿐이라는 건데요. 그것도 모두 최근에 뒤집히고 있습니다. 따로 글 올렸으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유태인 대량학살을 증명할만한 역사적 기록물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독일의 나치에 협력한 유대인들도 아주 많습니다. 동족을 팔아먹은 이들. 일제에 협력한 조선인들을 닮은 무리들이지요. 독일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어간 유대인들 중에는 연합군의 폭격과 또 그 폭격으로 인해 끊어진 배송시스템으로 식량의 공급이 끊겨 굶어죽은 이들도 아주 많다고 합니다. 화장장은 그 시체들을 소각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구요. 그건 독일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요. 독일이 직접 죽인 유대인들이 더 많은지, 연합군에 의해 간접적으로 죽은 유대인들이 더 많은지 그 진실을 어찌 알겠습니까? 어차피 역사는 승자의 몫이니까요. 미국의 영화산업은 유대인들이 독점하고 있지요.
어느 시대나 역사를 막론하고 간신배는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이 투철해서 자기들 끼리만 돌돌 뭉쳐있었는 줄 알았는데 배신자들이 있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2차대전에 참전하여 히틀러에게 충성한 유대인 출신 독일군의 숫자가 무려 15만명이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쉰들러 리스트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게토나 노동수용소에서 나치에 협력한 유대인들의 숫자는 부지기 수입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왈제네거 부친도 유대인으로 나치 유니폼을 입고있는 사진이 엘에이 타임지에 실렸었죠
전뉴욕시장 쥴리아니 도 이태리언 쥬 후손이구요 대통령 후보 죤 케리도 아이리쉬 쥬의 후손입니다
신문지상에 지금도 가끔 유대인 학살자로 남미에 숨어있다가 잡혀오는 범죄자들도 거의 당시 유대인 앞잡이들입니다
지금은 거의 모두들 개종해서 크리스챤이 되었지만요
일본 앞잡이들이 모두 일본인으로 귀화한거나 다름이없지요 특히 미국은 전 세계에 흩어져있던 그들 민족이 모여 아브라함이 내려준 기름진 땅 아메리카로 모여
일구어 독일에서 귀화한 유대인 과학자들이 무기를 만들어 팔아 부자가된 나라입니다
애초에 메이플라워 호에 승선하여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모두 영국에서 쫓겨나 네델란드로 이주했던 유대인들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이 거대한 군산복합체(군대와 무기를 파는 무기상들의 야합체) 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