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타조를 읽는 저녁/ 나온 동희
은하수 추천 0 조회 22 14.03.16 01: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타조를 읽는 저녁/ 나온 동희

 

 

루페를 펴고 들여다보던 신문

아프리카 소식란에서

푸른 석면 같은 초원이 불쑥 자란다

마른 덤불 속 모딜리아니 같은 목을 내밀며

사파리 파클 끌고 튀어나오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새

바래고 갈라진 석회벽 사이에

그림자를 만들던 태양은

모래언덕에 내딛는 그의 발자국들을 뒤쫓아간다

한때 구름 위로 날아오르던 날개를 몸속 깊은 곳에

유적처럼 깃들게 한 것은

거칠고 못생긴 발굽 때문임을

단단해 질수록 두 가락의 발톱으로

눈부시게 질주하는 지상의 슬픈 비행이

타조의 유일한 진화임을 문득 알겠다

안으로만 자라는 내 발톱은 어느 선사시대에 퇴화된

날개의 슬픈 진화일까

발자국 소리 자욱이 날리는 초원을 접자

타조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나는

겨드랑이쪽 날개의 흔적을 만져본다

 

- 동인지푸른시제15호 (아르코, 2014)

..........................................................

 

 다른 동물과 똑같았던 인간은 언제 인간이란 특별한 존재로 바뀌었을까. 신이 개입함으로써 사람은 동물과 구별되었던 것은 아닐까. 단군신화를 비롯한 거의 모든 문명에서의 인류 탄생기는 공통적으로 신과 동물이 함께 등장한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영웅들은 모두 신과 인간의 혼혈이었다. 따지고 보면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도 신과 인간의 혼혈이며,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도 천신의 아들과 곰 사이의 혼혈이었다. 인간이 전지전능에 가까우면 영웅이 되는 것이고 타락하면 동물로 추락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동물화가 바로 타락이고 동물적 습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사람다움인가. 과연 사람과 동물은 얼마나 다른가. 하지만 실체적 진실은 인간과 동물이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수백 년간 인간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펼쳐진 뒤 찰스 다윈 등에 의해 인간은 ‘진보된 동물’임을 확인하게 된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동물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다. 다윈은 인간도 동물이며, 인간의 본성은 동물의 본성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진화의 동력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등의 경쟁이고, 동물의 진화는 사회 진화의 원리와 같다는 주장이 먹힌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새’ 타조는 시속 90km까지 달리지만 날지 못한다. 하지만 날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날개를 퇴화된 흔적기관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한때 구름 위로 날아오르던 날개'를 단지 '유적'이라고만 볼 수 없는 용도가 지금도 있는 것이다. 타조의 날개는 짝짓기 과시나 새끼 돌보기에 쓰이며, 체온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어쨌든 타조가 날지 않은 것은 굳이 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날기를 포기하는 대신 '눈부시게 질주하는 지상의 슬픈 비행'을 선택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발달한 것이 발굽이었다면 그 또한 선택적 진화이리라. 빨리 달리는 동물일수록 발가락은 단순해진다. 발가락을 낱낱이 이용하여 땅을 짚으며 걷는다면 속도를 내지 못한다. 단순화한 발로 재빨리 땅을 밀쳐야 포식자를 피해서 겅중겅중 뛸 수 있고 먹이를 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새의 발가락은 대개 넷이지만 타조는 브이(V)자로 갈라진 굵은 발가락 두개만 남아 땅을 차며 뛴다. 말발굽을 봐도 그렇다. 진화란 어떠한 환경에 대하여 거기에 적합하도록 발전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펭귄과 닭이나 타조가 날지 못하는 것은 퇴화가 아니라 진화라고 보아야 온당할 것이다.

 

 퇴화란 사람의 꼬리뼈, 비단뱀의 발톱, 고래의 손가락뼈와 같은 부분을 의미라는 것으로, 진화도중 별 볼일 없는 것들이 점점 사라져 버리는 부분인데, 그렇다면 퇴화도 진화의 일부분이지 않겠는가. 나뭇잎을 먹는 다른 동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긴 맹장을 갖고 있는데 이들의 맹장은 효소 박스처럼 기능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의 맹장은 잎사귀를 먹었던 선조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었겠지만 지금은 큰 소용없이 맹장염이란 잠재적 불이익만 유발시키는 유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간의 진화를 증명하는 흔적 기관이다. 시인은 '겨드랑이쪽 날개의 흔적을 만져보'면서 '슬픈 진화'를 아쉬워 하지만,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진화의 역사를 되돌리려고 한다면 매우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므로.

 

 

권순진

 

Imaliyam (아프리카 민속음악)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