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승을 부린다. 이 사기범죄의 특성상 핵심조직원보다 돈을 전달하는 인출책이 잡히는 경우가 많아, 피해를 배상받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공단은 이런 상황에 처한 의뢰인의 서건을 해결하여 그의 마음까지 치료했다.
◈ 15년간 모은 아파트 보증금, 보이스피싱으로 한순간에 사라져
과거에 우리 법원은 보이스피싱 인출책에 대해서 보이스피싱 범죄의 핵심 조직원을 도와 사기범죄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사기' 혹은 '사기방조' 등의 혐의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 이러한 인출책에게 사기범죄를 실현하려는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고액 아르바이트를 하는 줄만 알고 가담한 인출책에게 만연히 '사기' 범죄를 인정하는 것도 문제이니 법원의 판단을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이로 인해 보이스피싱의 피해자들은 최악의 경우 아무런 배상을 받을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치, 우리 의뢰인처럼 말이지요.
의뢰인은 2016년 8월경 보이스피싱을 당해 3,700만 원을 잃었습니다.
이 돈은 의뢰인의 결혼생활 15년 동안 세 아이를 열심히 키우며 월세살이를 하다 처음으로 임대아파트 청약을 하기 위해 보증금으로 마련한, 정말 소중한 돈 이었습니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이미 통장의 돈은 빠져나간 상태였고, 핵심 조직원들은 그 정체조차 알아 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통장에 입금된 피해자의 돈을 찾아 전달한 인출책을 붙잡았을 뿐이었습니다.
붙잡힌 인출책, 즉 가해자는 35세의 주부였습니다.
'조세회피를 위한 것이니 통장의 돈을 인출해 건네주면 그 돈의 1%를 주겠다' 는 말을 듣고 범죄에 가담한 사람이었습니다.
곧바로 가해자에 대한 형사재판이 시작되었고, 가해자는 의뢰인에게 피해배상 및 합의금 명목으로 2,000만 원을 형사공탁 하였습니다.
피해액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의뢰인은 이 돈을 가지고 다시 새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에 공탁금을 수령하였습니다.
이 들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가해자에게 '사기 범죄임을 알면서 가담했다는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형사 무죄판결이 선고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무죄판결이 나오자 다른 욕심이 생겼던 걸까요?
가해자는 의뢰인에게 공탁한 2,000만 원을 다시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따라서 형사공탁은 그 원인이 소멸하였으므로, 의뢰인이 수령한 공탁금은 그 원인이 소멸하였으므로, 의뢰인이 수령한 공탁금을 반환하라는 부당이득반환 청구였습니다.
◈ 공단의 구조대상자 확대로 희망을 찾은 의뢰인
의뢰인은 절망을 안고 곧바로 공단을 찾아왔습니다.
의뢰인은 차상위계층으로 2018년부터 공단의 무료법률구조대상자에 해당되었습니다.
따라서 의뢰인은 변호사 보수, 인지대·송달료 등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공단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뢰인을 무료로 변호할 수 있다는 건 공단에게도 기쁜 일이었지만, 소송에서 이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피고인이 형사공탁을 하는 이유는 추후 유죄가 선고될 경우 공탁을 이유로 보다 가벼운 형량을 받기 위함인데,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공탁한 돈을 도려달라는 것이 마냥 이유 없는 주장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뢰인의 억울한 심정을 떠올리며 공단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형사재판에서의 무죄판결은 그 사람에게 유죄를 확신할 정도의 증거가 없다는 의미일 뿐 아무런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주장 등 법리적 쟁점을 다투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의뢰인으로 하여금 일정 부분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가해자에게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것은 사회 형평에 반한다는 주장 등 현실적 쟁점을 제기하며, 재판부의 마음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다행히 재판부에서는 공단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해자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는 편결을 내렸습니다.
가해자는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얼마 후 항소를 취하하여 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이제 의뢰인은 더 이상 마음 졸이지 않고 다시 한 번 희망을 찾아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기술이 아닌 인술로 다가가겠습니다
이번 사건의 의뢰인은, 자신이 어리석어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죄책감과, 공탁금을 수령하며 겨우 찾은 희망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 있다는 좌절감으로 마음을 심하게 다친 상황이었습니다.
소송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기술이나, 소송으로 다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건 인술이라 생각합니다.
'의술은 인술이다' 라는 문구처럼 우리 공단은 '법률구조도 인술' 이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감사합니다, 이제야 발 뼏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라는 말과 함께 환한 미소를 보여준 이번 사건의 의뢰인처럼, 공단을 찾아주는 분들의 마음까지 치유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도 이러한 공단의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기술이 아닌 인술로 다가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의뢰인은 기준 중위소득 50%이하인 차상위계층(2인 가족 기준 월소득 142만 원 이하)으로 공단에서 무료로 소송지원을 받았습니다.
안현선 / 공익법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