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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3부 기후변화 시대는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2장 걷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위기
시장자본주의의 규모가 너무 거대해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꽤 바뀌어, 금융위기와 지구온난화가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기후를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으나, 실상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기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 자본주의는 기후변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지금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경제적 비용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다. 2017년 미국의 경우, 기후변화가 초래한 비용이 3,060억 달러로 추정된다. 앞으로 훨씬 무거운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 세계 경제는 거의 성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부분 지역에서는 극심한 마이너스 성장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인류에게 재난을 극복할 회복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직 많다. 그러나 경제적 피해가 막대하리라 예측한다.
- 기온이 3.7도 증가하면 피해액이 551조 달러에 달하며 2100년까지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잠재적인 소득은 전 세계적으로 23퍼센트 감소할 것이다. 대공황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충격이며 지금까지 여파를 미치는 대침체보다도 10배 더 심각한 충격이다. 아무리 규모가 거대한 시스템이라도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몰락을 무사히 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 만약 자본주의 시스템이 살아남는다면 대가는 누가 치를까?
이미 미국 법정에는 기후변화를 근거로 손해배상금을 뜯어내려는 소송이 줄을 잇는다.
사례 1) 개혁적인 사법당국에서 석유회사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 : 보통 허위 정보를 퍼뜨리거나 정치적인 압력을 넣는다고 알려진 회사를 상대로 대중의 건강에 미친 악영향에 대해 보상을 청구하는 식이다. 기후변화의 책임이 향하는 첫 번째 대상은 여태까지 이득을 본 기업이다.
사례 2) ‘아이들 대 기후 소송’이라고도 알려진 ‘줄리애나 대 미국 소송’ : 미국 정부가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수십 년치에 달하는 환경비용을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미룬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독창적인 평등 보호 요구 소송이었다. 기후변화의 책임이 향하는 두 번째 대상은 여태까지 이득을 본 이전 세대들이다.
사례 3) 기후변화의 책임이 향하는 세 번째 대상은 바로 화석연료를 태움으로써 여태까지 이득을 본 국가들이다. 몇몇 경우에는 그 대가로 전 세계의 희생을 초래해야 했다. 가장 충격적인 기후 트라우마를 겪어야 할 이들은 바로 그 제국 국민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 그들의 요구는 어떻게 전개될까?
- 과거 착취를 일삼던 제국이 그랬듯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고통에 대해서도 배상, 과실 송금, 진상 조사, 조정 같은 접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서구권의 부유한 국가가 지구온난화의 고통을 가장 심하게 겪을 가난한 국가에게 기후 부채를 지고 있다고 시인한 적은 아직 거의 없다. 게다가 고상한 협력 관계를 맺기는커녕 대부분 문제를 외면하거나 책임을 부인할 것이다.
- 오늘날의 정치적 협의체는 파산법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석유회사, 정부, 국가에 유리한 쪽으로 기후 부채를 제한하기 위해 공모할 것이다. 이 협의체는 정치적 압력에 의해 혹은 심지어 내란에 의해 흔들리고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는 가장 명백한 악당과 후견인을 무대에서 아예 없애 버리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결국 책임을 지우고 보상을 요구할 만한 만만한 표적이 사라질 것이다. 해소되지 않는 분노만 남는 것이다.
- 만약 기온 상승을 2도 혹은 3도에서 멈추는 데 성공하더라도 부채 명목이 아니라 적응 및 완화 명목으로 거대한 비용이 청구될 것이다. 화석연료 없이 돌아가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완벽히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해야 하며 농업 체계를 새롭게 구상해야 하고 심지어 육식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8년 IPCC보고서에서는 그처럼 필수적인 변화를 수행하는 것이 전 지구상에 2차 세계대전 긴급 동원령을 내리는 것에 필적한다고 지적한다.
■ 적응과 완화 명목으로 청구될 엄청난 비용
- 마이너스 배출 :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막는 것을 목표로 하는 400개의 IPCC탄소 배출 모델 가운데 344개가 마이너스 배출을 전제하며 대다수가 마이너스 배출을 핵심적인 요소로 내세운다. 안타깝게도 마이너스 배출 역시 지금으로서는 이론에 불과하다. 효과가 증명된 바가 없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자연적인 접근법이 성과를 거두는데 전 세계 경작지의 3분의 1이 요구된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어떤 식으로 시스템이 설계되고 활용되는지에 따라 의도와는 정반대의 효과, 즉 공기 중에 탄소를 더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탄소포집 :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일단 지금도 기술을 가지고 있다. 탄소포집 장치는 자동차와 유사한 기계적 복잡성을 가지며 비용도 한 대당 약 3만 달러로 비슷하다. 브뢰커가 추산하기로는 현재 대기 중에 배출되는 탄소량 만큼을 빨아들이는 데만 탄소포집 장치가 1억 대 요구된다. 인류에게 시간만 조금 벌어다 줄 뿐인데 전 세계 GDP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30조 달러가 들어간다. 대기 중 탄소 농도를 고작 몇 ppm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탄소포집 장치가 5억 대 요구된다. 더 나아가 탄소 농도를 1년당 20ppm씩줄이려면 10억 대가 필요하다. 이 경우 탄소 농도를 즉시 한계선 아래로 낮출 수 있으며, 탄소 기반 성장을 할 시간을 조금 더 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는 전 세계 GDP의 약 4배에 해당하는 300조 달러가 필요하다. 탄소포집 장치에 드는 비용은 앞으로 떨어지겠지만 문제는 그동안 탄소배출량과 대기 중 탄소 농도 역시 계속 증가한다..
3장 기술이 종교처럼 되었을 때
■ 문제 해결에 요구되는 기술 혁신의 규모
- 우리는 기후변화가 느리게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불안할 만큼 빠르게 나아간다. 기후변화를 막아 줄 혁신이 빠르게 다가온다고 생각하지만 믿기 힘들 만큼 느리게 다가온다.
- 전 지구상에서 탄소 배출을 완전히 제거하기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0~30년에 불과하다. IPCC 보고에 따르면 불과 12년 내에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엘 고어가 대통령 당선에 실패했던 2000년부터 인류가 세계적인 탈탄소화를 추진했다면 탄소배출량을 1년에 약 3퍼센트씩만 줄여도 기온상승을 무난히 2도 이하로 억제했을 것이다. 지금부터 탈탄소화를 추진한다면 탄소배출량을 반드시 1년에 10퍼센트씩 줄여야 한다. 10년을 더 지체하면 요구치는 1년에 30퍼센트로 늘어날 것이다.
- 모든 기술에 이산화탄소가 전제되기 때문에 하나하나 뿌리째 새로운 기술로 대체해야 한다. 비행기를 전부 교체하고 토지 이용 계획을 다시 세우며 콘크리트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등 모든 종류의 인간 활동을 모든 차원에서 완전히 새롭게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달리 필수적인 기술 혁신은 기존 기술에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기술을 대체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대안을 도입할 때마다 기존에 자리잡고 있던 기업체는 물론 이전 생활양식에 만족하던 소비자층의 현상 유지 편향과도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판타지
- 카네기과학연구소 소속인 켄 칼데이라의 2003년 연구에 따르면 재난 수준의 기후변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2000년부터 2050년까지 매일 핵발전소 한 기 총용량에 맞먹는 청정에너지원을 추가로 생산해야 한다.
- 2018년, <MIT테크놀로지리뷰>에서 지금까지의 진척 상황을 조사한 결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30년인데 반해 세계가 현재 추세대로 나아간다면 에너지 혁명은 400년 뒤에나 완수된다.
-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마이너스 배출 정도로 시간을 벌겠다는 건 마법이 펼쳐지길 바라는 생각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탄소포집은 최후의, 최선의 희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탄소포집 기술이 실효를 거둔다면 산업사회는 결국 면죄부를 얻을 것이다.
- 원전 반대 운동가 대부분은 방사능이 미친 실제 영향이 과소평가됐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식적인 기록에서는 건강에 아무런 악영향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권위 있는 연구에서는 사고 16킬로미터 반경 내에 발암 위험이 0.1퍼센트 이하 증가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 수는 47명이다. 물론 그 보다 높게(심지어 4000명이라고) 추산하는 보고도 존재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유엔에서 ‘방사능에 노출된 시민과 그 후손에게서 방사능과 관련된 건강상의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이 식별 가능할 만큼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망자 수치를 보면 전부 비극 수준은 아니다.
- 하지만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미세 입자 오염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는 매일 세계적으로 1만명이 넘는다. 2018년 트럼프 정부의 환경보호청은 석탄 생산 회사의 오염 기준 완화를 제안했으며 이는 환경보호청 측에서도 시인했듯이 매년 미국인 1400명을 추가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2017년 기준 대기오염으로 사망하는 사람수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900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 현재 값싼 원자력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원전을 새로 건설하는 비용은 거대한 편이다. 따라서 풍력에너지나 태양에너지보다 원자력에너지에 더 많은 ‘녹색’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워 보인다.
4장 소비할 것인가, 정치할 것인가
- 사람들은 정치라는 북극성을 기준으로 어떤 식단을 고르고 어떤 친구를 사귀며 어떤 대중문화를 소비할지 까지 결정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명분이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명분에 대해서는 의미 있다고 할 만한 정치적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
- 자유주의자의 집단 이기주의- 2018년 당시 진보 성향이 강한 워싱턴 주에서는 시민이 정작 투표함 앞에서는 탄소세를 반대했으며 프랑스에서는 휘발유에 세금을 붙이려 하자 1968년의 유사 혁명 이래 최악의 시위가 발발했다.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소비 선택을 하는지, 얼마나 부유한지, 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고 있는지 사실상 아무 상관이 없다.
- 이산화탄소를 가장 두드러지게 배출하는 상위 10퍼센트가 탄소배출량을 유럽연합 평균 수준으로만 낮춰도 전 세계 탄소배출량은 35퍼센트나 떨어진다. 개인이 식단을 바꾸는 정도로는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없지만 정책을 바꾼다면 가능하다. 유기농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진정으로 염원하는 목표가 기후를 구제하는 일이라면 투표가 훨씬 더 중요하다. 병든 세상을 인식하더라도 정치적 참여로 마무리 짓지 않는다면 웰니스(웰빙, 피트니스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트렌드)를 얻는 데서 그치고 만다.
■ 책임 회피에 불과한 선택적 소비
- 언뜻 보기에는 ‘웰니스’를 진지한 사회운동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설령 웰니스가 마케팅적인 속임수에 불과하고 정말로 건강에 기여하는지 의구심이 들지라도 한가지 확실하게 드러나는 사실이 있다. 바로 기후변화의 초기 공격을 차단할 만큼 충분히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오늘날 세상이 건강에 해로운 상태며 그런 세상에서 인내하고 번성하려면 차원 다른 수준의 자기 관리와 정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 하지만 선택적 소비와 웰니스 추구는 둘 다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이런 태도의 근원에는 신자유주의 정신에 의해 다시금 보장된 기본적인 약속이 깔려 있다. 바로 소비자가 정치적 참여 행위 대신 소비 행위를 통해 정치적인 성향은 물론 미덕까지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다는 약속이다. 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책의 결정을 이념적인 논쟁 대신 시장의 합의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시장 세력과 정치 세력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여야 한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동안에 소비자는 슈퍼마켓과 백화점 진열대에서 상품을 잘 고르기만 하면 괜찮다는 약속이다.
■ 온난화의 충격 속에서 나타날 정치권력
- 제프 만과 조엘 웨인라이트의 책 <기후 리바이어던 : 미래 지구의 정치 이론>
우리가 의지할 확률이 가장 높은 군주 신자유주의가 애초에 우리에게 기후변화를 부추긴 존재라는 사실에 유감을 표한다. 신자유주의는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피해와 퇴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겠지만 권위에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을 것이다.
- 러시아는 산유국인 동시에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더라도 지리적 이점 덕에 이득을 보는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다. 때문에 사령관인 푸틴 입장에서는 러시아 내외로 탄소배출량을 억제하거나 경제 시스템을 친환경적으로 바꾸기 위해 애쓸 유인이 사실상 전혀 없다.
- 중국 시진핑은 지속적인 경제적 번영과 국민의 건강 및 안전을 동시에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영향 때문인지 중국은 훨씬 더 단호한 녹색에너지 선두주자가가 됐다. 그러나 약속을 받드시 이행할 것 같지는 않다.
- 인도는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 비중에 비해 4배 더 큰 경제적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정확히 정반대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적 피해에 비해 책임 비중이 4배 더 크다. 중국이 녹색에너지 혁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이유다.
- 미국은 기후변화로 입을 경제적 피해가 전 세계 탄소배출량에 기여하는 비중과 거의 일치한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심각한 피해를 입으리라 예측된다.
- ‘탄소 아웃소싱’이라는 표현처럼 지금 중국 탄소배출량의 상당 부분이 미국인과 유럽인이 소비할 상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처럼 어마어마한 탄소배출량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 지금까지 살펴본 시나리오는 그나마 새로운 정치적 균형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미 국지적인 범위 내에서는 기후 위기로 비롯된 정치적 충돌이 꽤 흔한 현상이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자유국제주의, 세계화, 미국의 영향력이 한데 모여 우리가 세계 질서를 향해 한 뼘 나아가도록 만든 것은 사실이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 질서’ 개념은 늘 허상 내지는 열망에 가까웠다.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서는 기후변화가 흐름을 정반대로 뒤집어 높을 것이다.
5장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의 붕괴
-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공포가 쌓여 갈수록 역사가 진보한다는 관점에 대한 반발도 만개할 것이다. 현대인으로 하여금 물질적 진보의 속도를 확신하게 했던 산업화가 경제성장의 역사는 잠깐을 넘어 찰나에 가깝다. 그 찰나 사이에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기후재난의 시대에 다다른 것이다.
■ 역사에서 ‘진보’라는 인식을 벗겨 내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남을까?
- 현 시점에서는 우리 후손 세대가 훨씬 부유하고 평화로웠던 오늘날의 세상을 뒤로 한 채 평생 폐허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 기후 문제가 어느 정도 과거에서 비롯됐지만, 대부분 가까운 과거에 만들어졌다. 지구 생태계가 기후변화로 인한 변천과 혼란을 얼마나 오래 겪을 지는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큰 기후변화를 만들어 낼지에 달렸다. 기후변화를 얼마나 되돌릴 수 있을지에 달리 수도 있다.
6장 절망 끝의 허무주의
문명의 기반을 갉아먹는 종말론(컬트, 기후영지주의자, 다크마운틴…), 세속적인 위안을 찾는 회피와 금욕주의(킹스노스), 이상기후 공포가 만든 새로운 용어들(‘환경허무주의‘, ‘기후허무주의’, ‘기후 집권기’, ‘기후 숙명’, ‘환경적 살해’, ‘인간 무익론’, ‘종족 고독감’)
■ 차라리 ‘체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
- 최근 출간 대중서적 제목 <인류세에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 <우리는 망했다, 이제 어떡하지?>
이런 작품은 우리 삶의 태도가 문학, 문화, 정치, 윤리 등 어떤 면에서든 종말론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또다른 방향, 즉 기후 순응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 기후 순응적인 태도를 가리키는 ‘기후 무관심’ : 우리는 기후라는 것이 원래 이렇다고 납득하거나, 현실적으로 예산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거나, 받아 마땅한 결과라며 기괴한 안락함을 느끼거나, 그냥 현실을 보고도 모른 체함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무감정 상태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지구가 1도 뜨거워진 오늘날의 벼랑 끝에 서서 미래를 내다보면 2도 뜨거워진 지구는 악몽 같아 보인다. 절망 속에서 집단 붕괴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그런 미래를 헤쳐 나가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기후변화를 가속화한 속도에 맞춰 기후재난을 평범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한 가지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과거에 지금 상태를 내다보면서 윤리적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던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오늘을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4부 인류 원리, ‘한 사람’ 처럼 생각하기
- 우리는 다가올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겪을 고통이 정확히 어떤 모습을 취할지 알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숲이 불타고, 거기에 오래도록 쌓여 있던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많이 방출될지, 얼마나 많은 허리케인이 카리브해의 섬을 평평하게 쓸어버릴지, 초장기 가뭄이 어느 곳에서 가장 먼저 초대형 기근 사태를 불러일으킬지,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최초의 대규모 전염병은 무엇이 될지 확실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미 알고 있는 정보만으로도 우리가 들어서는 세계가 아예 다른 행성으로 떠나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현재 살아가는 세계와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내다볼 수 있다.
■ 지금 우리는 집단적으로 지구를 파괴하는 쪽으로 선택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멈출까?
- 우리에게 필요한 원칙은 사람처럼, 한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단지 한 사람의 운명을 모두가 나눠서 짊어지고 있을 뿐이다.
- 기후변화의 공격은 원자폭탄보다 더 전면적이다. 더 구석구석으로 퍼지기도 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4도만 높아져도 수확량이 50퍼센트 떨어질 수 있다고 추정한다.
- 오늘날 우리에게 재난을 멈추는 데 필요한 도구가 모두 주어져 있다. 탄소세를 도입할 수 있고 더러운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몰아내도록 정치적 기구를 활용할 수 있으며 새로운 방식의 농경 기술을 적용할 수 있고 세계인의 식단에서 소고기와 우유를 줄여 나갈 수 있으며 녹색에너지와 탄소포집 기술에 공공 투자를 할 수도 있다.
당신은 당신이 보고 싶은 모습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살고 싶은 행성은 선택할 수 없다. 우리 중 누구도 지구 외에는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