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색이 있는 풍경 '전북 고창' 너른 소금밭이 연상되는 학원농장 메밀꽃밭 너머로 동이 트고 있다. 메밀밭은 한낮보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찾아야 서정성 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동틀녘 하얀 들판, 가을이 온다
초가을 바람에 꽃들이 반짝인다. 아직은 초록의 기운이 엄연한 들녘 위로 하얗고 노란 꽃가루가 휘날린다. 반짝이는 모양새가 어찌나 선명하던지, 높고 찬 겨울 하늘의 별들을 빼닮았다. 전북 고창에서 만난 초가을 풍경이다. 지금 그곳엔 하얀 메밀꽃과 샛노란 해바라기, 그리고 선홍빛 백일홍 등이 절정의 자태를 선보이고 있다.
지금 학원농장은 메밀꽃 세상
이른 새벽. 부지런한 새 삐중대며 날고, 멀리 동녘은 붉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메밀꽃 세상이 열린다. 하얀 소금밭이다. 붉은 황토 위로 굵은 소금이 흩뿌려진 듯하다. 그 위로 옅은 안개가 솜털처럼 덮여 있다. 몽환적인 풍경이다.
지금 여기는 학원농장. 지난봄, 이국적인 청보리밭 풍경으로 무려 6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은 곳이다. 여름내 보리를 수확하고 난 황토 구릉엔 해마다 메밀을 심는다. 그 덕에 초가을이면 들녘은 또 한 번 순백의 세상으로 빛난다. 부드럽게 솟았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구릉 위로 하얀 메밀꽃들이 흐드러졌다. 올해는 메밀밭 초입에 백일홍을 심었다. 얼룩덜룩 색이 입혀졌다. 이건 뭘까. 순백의 메밀로 부족하다는 뜻일까. 순결을 잃어버린 메밀밭을 보는 듯해 안쓰럽다.
메밀밭 사이로 길이 나 있다. 곧은 것은 없다. 휘어지고 돌아가는 곡선의 길.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은근하면서도 여인네의 허리께를 보듯 관능적이다.
“한 번 와서 고창의 가을을 어찌 알것소. 가을에만 적어도 두 번은 와야 ‘고창 여행 제대로 했다’ 소리 듣지 않것소?”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내뱉은 초로의 사내는 새벽녘 메밀꽃밭을 촬영하러 왔다고 했다. 한낮의 메밀꽃도 좋지만, 달이 휘영청 뜬 밤이나, 옅은 안개 낀 새벽의 메밀꽃은 보다 고혹적이다. 사진작가들이 밤낮을 바꿔 메밀꽃밭을 찾는 건 그 때문이다.
가을의 시작은 선홍빛으로부터
고창의 가을은 색으로 말한다. 선운사 꽃무릇이 선홍빛으로 가을을 알리면 학원농장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진다. 여기에 노란 해바라기가 늦여름의 열정을 아낌없이 불태운다. 올여름 유난히 비가 적어 해바라기 꽃이 쪼그라들긴 했지만, 야위었어도 해바라기는 해바라기다. 가을이 본궤도에 오르면 오색의 단풍들이 선운사를 물들이고, 가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 절집 옆 도솔천에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또 한 번 장관을 연출한다. 사내의 말은 바로 이 풍경의 윤회에 대한 은유였던 셈이다.
학원농장은 메밀을 심을 때 여기저기 시차를 둔다. 한 곳의 메밀꽃이 질 무렵, 다른 곳에선 메밀이 꽃을 피운다. 그 덕에 관광객들이 좀 더 오래 메밀밭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텅 빈 황토밭 아래에서는 새로 필 메밀 씨앗들이 지금도 자라고 있다. 학원농장과 주변 농가 메밀밭을 합치면 전체 면적은 100만㎡ 가까이 된다. 광활한 메밀밭에 들면 천천히, 그리고 속속들이 살펴볼 일이다. 마실가듯 천천히 돌아봐도 2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작가 이효석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흐벅진 달빛 아래 굵은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하다”고 썼다. 한낮도 좋지만 달빛 쏟아지는 보름 밤에 찾아야 제격이란 뜻이겠다. 물론 옅은 안개가 부드럽게 능선을 감싸는 새벽 무렵도 더할 나위 없이 서정적이다.
여행자의 눈길 멈춰 세운 해바라기
메밀꽃이 거대한 들판의 위용으로 여행자의 눈을 가득 채운다면, 해바라기는 강렬한 빛깔로 여행자의 눈길을 멈춰 세운다. 메밀꽃밭이 이 계절 학원농장의 ‘메인 디시’, 해바라기꽃밭은 ‘사이드 디시’쯤 되겠다. 해바라기꽃밭은 학원농장의 구릉이 이웃 마을과 맞닿는 자리, 그러니까 농장의 끝자락에 조성돼 있다. 면적이 예전보다 현격하게 줄긴 했지만 사진 찍는 데는 무리가 없다. 해바라기꽃밭 또한 이른 아침에 찾아야 좋다. 나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해바라기들을 하나하나 비추는데, 여간 인상적이지 않다.
학원농장은 원래 청보리밭으로 유명세를 얻은 곳이다. 1980년대 국무총리를 지낸 진의종 씨가 1960년대 초 호남평야 끝자락의 넓은 구릉지대를 개발해 조성했다. 시골 한 귀퉁이에 불과한 곳인데도 초봄의 파란 청보리밭을 찾아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몇 년 전부터는 아예 경관 농업으로 방향을 틀어 메밀과 해바라기 등을 계절에 맞춰 번갈아 심고 있다.
산적을 선화시킨 선운사 전설
이 계절, 고창까지 가서 선운사를 찾지 않을 수 없다. 9월 말이면 꽃무릇이 무리 지어 피고, 10월 중순이면 절정의 단풍을 선보이는 명찰이다. 선운사는 보은염(報恩鹽)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선운사길을 보은길 혹은 소금길로도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엔 사연이 있다. 백제 위덕왕 24년(577)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할 당시 선운산 주변엔 산적들이 들끓었다. 검단선사는 이들에게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 도적질을 그만두게 했다. 양민이 된 산적들은 해마다 봄, 가을 두 차례 검단선사에게 보은염을 보냈다. 그때 소금을 운반했던 길이 바로 선운사길이라는 거다. 지금도 선운사 일대에선 이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산적들은 소금을 어디서 만들었을까. 퍼뜩 꼽히는 곳이 심원면 하전마을의 광활한 갯벌(사진)이다. 볼 것이라고는 소금전시관 하나지만, 저물녘 풍경만큼은 빼어나다. 날물 때에 맞춰 가면 정말 ‘끝내주는’ 해넘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손원천 서울신문기자
부처님 배꼽엔 무엇이 들었을까
고창의 명소 선운산 중턱, 도솔암이 깃든 칠송대의 남쪽 벼랑에 거대한 여래상(보물 제1200호·사진)이 새겨져 있다. 고려 초 지방 호족들이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절벽 한 면을 통째 조각한 이 거대한 마애불은 여느 불상처럼 인자하거나 부드러운 모습이 아니다. 우람하고 도발적이며, 심지어 젊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불상이 ‘능력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건 지방 호족들이 스스로의 이미지를 반영하려는 의지 때문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오래전, 도솔암 마애불은 배꼽 부위에 조각된 네모난 서랍 형태의 감실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마애불 감실에 신비한 비결이 하나 숨겨져 있는데, 그 비결이 세상에 나오는 날 한양이 망한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동학군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오지영이 ‘동학사’에 기록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도솔암 뒤에 50여 척 높이의 층암절벽에 미륵이 하나 새겨져 있다. 그 미륵의 배꼽에는 신비스런 비결이 숨겨져 있는데, 비결과 함께 벼락 살을 동봉해 놨기 때문에 누구든 그 비결을 꺼내기 위해 손을 대면 벼락에 맞아 죽는다고 했다. 지금부터 130년 전(1820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서구가 배꼽을 떼고 비결을 꺼내려 했으나 때마침 뇌성벽력이 일어 비결을 제대로 못 보고 도로 봉해두었다. 그때 이서구가 본 것은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글자뿐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뒤로 세상 사람들은 그 비결을 꺼내보고 싶어도 벼락이 무서워 꺼내보지 못했다.”
훗날 이 마애불의 배꼽을 뗀 이들은 무장 접주 손화중, 오지영 등 동학의 지도자들이었다. 1892년 8월,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도끼로 석불의 배꼽을 부수고 감실 안에 있던 것을 꺼냈다.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기 1년 반 전의 일이다. 이 사건으로 오지영 등 주모자들이 역적죄로 사형을 당하고 100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여러 형태로 고초를 받았다. 그들이 부처님 배꼽에서 꺼낸 것은 과연 비결이었을까, 아니면 불경 같은 복장유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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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고창 나들목→15번 지방도→무장면→796번 지방도→학원농장 순으로 간다. 선운사는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 나들목으로 나가 선운사 방면으로 좌회전하고 다시 삼인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곧장 가면 된다.
◆ 맛집 : 선운사 초입에 40여 곳의 장어구이집이 몰려 있다. 할매집(562-1542), 용궁회관(562-6464) 등이 갯벌 풍천장어 집으로 알려져 있다. 조양식당(508-8381) 한정식도 일품이다. 학원농장에선 보리비빔밥, 메밀국수를 맛볼 수 있다. 하전마을 수궁회관(564-5035)은 꽃게정식, 바지락정식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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