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산림 대법회 161강 – 3 – c
금강경 처음에 어떻게 됩니까?
1. 法會因由分(법회인유분). 법회가 일어나게 된 인유.
2. 善現起請分(선현기청분). 수보리가 일어나서 법을 청하고요.
3. 大乘正宗分(대승정종분). 大乘正宗은 뭡니까?
바라밀 행을 행하는 것이 大乘正宗입니다. 그 다음에
4. 妙行無住分(묘행무주분). 집착없는 행으로 연꽃처럼 살아가는 無住.
무주바라밀행이 바로 大乘바라밀행의 수행입니다. 그 다음에
5. 如理實見分(여리실견분). 如實이라고 앞에 나왔었잖아요. 그렇지요?
금강경이나 화엄경이나, 지금 똑같이 가고 있습니다. 如理實見이나,
如理! = 이치와 같이 진실되게 본다.
6. 正信希有分(정신희유분).
이것을 믿는 사람은, 바른 믿음을 일으키기는 굉장히 힘이든다.
발심이 안 되어있고,
자비심이 없으니까 발심이 안 되고,
발심이 없으니까 선지식을 안 찾아가고,
선지식을 안 찾아가니까 청정한 마음이 없고 원력이 없고,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정각심은, 깨달을 수는 없다.’ 이 겁니다.
그 다음에
8. 無得無說分(무득무설분).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바 법이 있느냐? 법을 설하신 바가 있느냐?
여래께서 유소설법부아. 설하신 바도 없고, 얻은 바도 없느니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뭡니까? 依法出生分(의법출생분)인가요?
야~~ 신기하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여기 화엄 종장님 들이 지금 몇 명이나...
“법에 의거해서 부처님이 탄생하신다. 그 법이라고 하는 것이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다. 一相無相分이다.”
一相無相 莊嚴淨土. ←이렇게 쭉~~ 나가잖아요. 그렇지요?
장엄정토쯤 되면 원행지쯤 되겠지요.
“없는 줄 알지만, 다 깨닫고 난 뒤에 뭘 해야 되느냐?
보현행원을 해야 된다.”
그러니까 깨닫기 전에도 보현행원을 해야 되고,
깨달아 가면서도 보현행원을 해야 되고,
깨달은 후에도 보현행원을 해야 되고요.
그러니까 깨닫기 전에 지금 우리가 10주하고 있고,
10행ㆍ10회향 이득 법문은 뭡니까? “전 보현”이라 그럽니다.
정확하게 3현 보살의 “전위보현!” 범부중생. 좀 모자라는 사람들이
보살행하는 것도 “전위보현!”
그러니까 청량국사가 10지 보살이 보현행원을 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되니까 “당위보현이라.” ←여기에 해당되는 보현보살이 5온 개공을 깨
닫고, 10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당위보현이라.” 하지요. 그리고
다 깨닫고 등각 넘어가서, 금강유정 넘어가서 묘각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보현행원이 또 이루어지는, 부처님의 보현행원은 “후위보현”이라고 합니
다. 제가 억지로 지어낸 것이 아니고요. 화엄경소초에 다 나오는 얘기들
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일리가 있습니다.
자~~ 여기서 “一切法이 一相인줄 알고,” 또
知一切法無量相하며, 일체법이 무량상인줄도 알며, 또
知一切法在一念하며, 일체법이 한 생각에 있는 것도 알며, ←이런 것은
전부 다 念到念窮無念處(염도염궁무념처)ㆍ
無名無相絶一切(무명무상절일체). ←이런 대목하고 다 해당이 됩니다.
그 다음에
知一切衆生의 心行이 無碍하고,
일체중생의 마음의 행이 걸림이 없음을 알고,
왜 그렇습니까?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일체유위법여몽환포영).”
선이든 악이든 꿈속의 일인데요뭘...
그러니까 본심에ㆍ1심에서는 선악이 없습니다.
생멸에서는 선악이 확연합니다. 그런데 이 뒤에서 얘기해야 되는데,
이것은 얘기가 길어지니까 그냥 끝내겠습니다.
知一切衆生의 諸根이 平等하다.
일체중생의 여러 근기가 평등함을 알고,
知一切衆生의 煩惱習氣行(번뇌습기행)을 알고,
일체중생의 번뇌 습기 행을 알고, 6조스님은 아예 그래 버렸지요.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요
明鏡亦非臺 명경역비대)라.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인데, ”
‘없는데, 법신이 어디있고 육신이 어디 있느냐? 몸뚱이가 어디 있고
마음이 어디 있느냐?
“ 何處에 惹塵埃(하처야진애)냐?”
‘어디에 번뇌가 일어난 적이 있더냐? ←이랬습니다.
번뇌를 가지고 다양하게 얘기하는, 한 번해서 말 안 들으니까요.
번뇌ㆍ습기. “번뇌”라고 하는 것은 분별사식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번뇌”라고 그러지요.
그리고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아주 습관이 돼서 꾹~~ 눌러 붙어있는
누룽지 같은 번뇌를 “습기”라고 그러지요.
습관이 반복되면 뭐가 됩니까? 업이 되는 겁니다.
업식이 되어서 눌러붙어서 그것이 빠지지를 않습니다.
그건 완전 견성성불 해야... 참선이 아니면...
결국 확연하게 알지 못하면 없앨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바깥으로 나와 있는 것은 조절이 되지만,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건
조절이 안 되거든요.
제가 오죽 했으면 서울말 한 번 써보려고, 서울에서 인플란트 했지만
안 되잖아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스켈링하면 돼요? 스켈링하면 말은 좀 매끄럽게 할 수 있겠지요.
知一切衆生의 心使行(심사행)이라.
心使行,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고, 남의 고용인이 되어서
사용되는 것. 맺을 結(결)자나, 使자나 번뇌를 뜻하는 말씀이지요.
心使行. 마음이 그냥 노예처럼 사는 그런 옹졸한 행을 使라고 합니다.
知一切衆生의 善 不善行하며,
일체중생의 선악 행. 잘났다 못났다고 하는 행을 다 알고, 또
**知一切菩薩의 願 行自在라.
일체 보살의 원과 행은, 대지도론에 보면 용수보살은 그래 해놨지요.
“菩薩의 願行은, 如鳥兩翼(여조양익)이라.”
초발심자경문에도 그렇게 나오잖아요.
자비보시는 如鳥兩翼이라고 원효스님께서 하셨지만,
원문은, 대지도론에 보면 용수보살이 그렇게 해놨습니다.
“願이라고 하는 것은, 저 깊은 강을 건너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러시면서,
“배를 준비하지 않으면 깊은 강을 건너갈 수 있겠느냐?
반드시 행으로 옮겨야 된다. 그것은 如鳥兩 翼이라.
새의 양 날개와 같다. 안에 마음을 품고 바깥으로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 동일시 돼야 된다.”
그래서
知一切菩薩의 願行이 自在하야 住持變化(주지변화)하며,
행과 원이 자재하게, 住持라고 하는 것은,
見一切處住地(견일체처주지)도 있고,
욕계 중생은 欲愛住地(욕애주지).
색계 중생은 色愛住地(색애주지).
무색계 중생은 有愛住地(유애주지). 그리고 일체 중생들은 어디에
주지하고 삽니까?
無明住地(무명주지).
‘無明이 모든 번뇌의 근본 할아버지다.’ 이 말입니다.
그렇지요? 5住地를 얘기할 때, 일체 중생은 無明住地라고 얘기하지요.
知一切如來의 具足十力하야
일체 보살의 열 가지의 힘을 구족하고, 부처님께서 10력.
완벽한ㆍ완전한 구경 열반이겠지요. 10력을 구족하고,
成等正覺이 是爲十이니,
정등정각을 이루는 것이 열 가지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만약에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한다면,
則得一切法善巧方便이니라.
즉득 그 자리에서 일체법의 선교방편을 얻을 수 있다.
모든 법의 교묘한 방편을 얻을 수 있다.
부지런히 궁리하고 움직이면 방편이 나오게 되지요.
선교 방편!
그러니까 “교묘하다.”고 우리가 번역할 때 일반적으로,
바깥의 일반화 오류 때문에 좀 잘못된 것으로 쓰지만, 불교에서는
교묘하다는 것은 뭡니까? “아주 솜씨 좋다.”
잔머리 굴리며 잔꾀부리는 것은 교묘하다가 아니고,
“교활하다.”고 이럽니다. 뺀지그리한 것. 매끄리하게 숫돌 뱀장어처럼
잘 빠져나가는 것은 교활하다고 그럽니다.
그 다음에 “구족방편주”
(5) 具足方便住
* 菩薩의 十種力 *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力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入一切法自性力과 入一切法如化力과
入一切法如幻力과 入一切法皆是佛法力과
於一切法에 無染着力과 於一切法에 甚明解力과
於一切善知識에 恒不捨離尊重心力과
令一切善根으로 順至無上智王力과
於一切佛法에 深信不謗力과
令一切智心으로 不退善巧力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具如來無上諸力이니라
具足方便住(구족방편주)
* 菩薩의 十種力(보살10종력) *
지금 보십시오. 발심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치지주에 갔습니다.
치지주에 가서 어디로 넘어갑니까? 수행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렇지요?
수행을 하다 보니까 귀한데 태어나는 생귀주로 왔습니다.
생귀주로 왔으니까 귀한데 태어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신통력이 와지고, 신통력은 삼매의 힘으로부터 와지는 것이지요.
방편력이 생겨집니다. 그러니까 경전이 그냥 순서대로 써놨습니다.
다 순서대로 딱 써놨습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力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이,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힘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냐?
所謂入一切法의 自性力에.
소위 일체 법의 제 성품에 들어가는 힘.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요지일체법이자성무소유).
어디에 나옵니까? 수미정상게찬품의 누구 보살요?
勝慧(승혜)보살! 자장스님도 이 게송을 중국 오대산 태화지에서 문수
보살을 친견하면서 꿈 속에서 봤던 게송이 그것이지요.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
如是解法性(여시해법성)
卽見盧舍那(즉견노사나).
이와 같이 자성이 본래 무소유인줄 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부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佛性은 無性이다.’ ←이 얘기입니다. “佛性은 無性이다!!!”
원효스님은 뭐라고 했지요?
“無理之가 至理(무리지지리)다!!!!!!”
入一切法如化力과, 모든 법이 변화와 같은 데 들어가는 힘과,
入一切法如幻力과, 일체 법이 여환과 같음에,
요술 같은데 들어가는 힘과, “여몽환포영” 하잖아요?
지금 이것은 유식을 얘기하는 겁니다.
이것을 참고하려면 화엄경 10인품을 참고하시면 이런 대목의 이해가
잘 될 것 같습니다.
入一切法皆是佛法力과, 일체 모두 법이 불법인 데 들어가는 힘과,
이 “들어간다.”는 것은 확실히 증입해서 “깨닫는다.” ←이런 말씀이
지요? 또
於一切法에 無染着力과, 일체 법에 물들지 않는 힘과,
於一切法에 甚明解力과,
일체 법에 매우 밝게 明解. 환하게 아는 힘과,
於一切善知識에 恒不捨離尊重心力과,
일체 선지식에게 항상 불사리. 버리지 않는 존중하는 마음의 힘과, 또
令一切善根으로 順至無上智王力과,
일체 선근으로 하여금 무상 지혜왕에 순수하게 이르게 하는 힘과,
於一切佛法에 深信不謗力과,
일체 불법을 심신. 깊이 믿고 비방하지 않는 힘과,
끓지도 않고 넘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요.
令一切智心이라. 일체 지혜의 마음으로
不退善巧力이 是爲十이니,
선교에 물러나지 않는 힘이 열 가지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具如來無上諸力이니라
만약에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하면 그 자리에서 여래의 무상제력.
여러 가지 모든 힘을 갖추게 된다.
그 다음에 “정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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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습니다♬♪♩ 환희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수성찬입니다♬♪♩ 감미롭습니다♬♪♩ 꿀맛입니다♬♪♩
대♩ 방♩ 광♩ 불♩ 화♩~~ 엄♩~~ 경♩~~
보살님 즐거우신 가요
뵙는 저도 미소가 활짝 핍니다
감사드립니다-()()()-
항상 즐겁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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