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멸망해 가는 사람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큰일일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 삼위 하나님의 제2위이신 성자께서 사람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일의 무게를 상상할 수 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사람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야 했던 것이다. 이는 삼위일체에 버금가는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유대인 역사에서 가장 희한한 일 중 하나가 유대인 중에 사람을 신으로 경배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상에 등장했다는 점일 것이다. 유일신 신앙이 뼛속까지 스며 있는 유대인들이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경배했다면 이건 큰일도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보면, 연배도 비슷했고, 갈릴리 동향 출신들이었다. 만나서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함께 다니는 것을 본 사람들은 아마 갈릴리 사투리를 쓰는 친구들 한 무리가 다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어떤 특이한 점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유대 사회에 때때로 등장하는 훌륭한 랍비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도 예수님을 처음에는 랍비라고 불렀다. 예수님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지면서 혹시 이 인물이 선지자가 아닐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다가 거기서 더 나아가 혹시 구약에서 말한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그들이 당시에 생각하던 그리스도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동시대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대했는데, 어떤 문서에 보면 메시아가 두 명이 등장하고 어떤 문서에는 네 명이 등장한다. 당시 그들이 생각하던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이방 압제에서 건져내어,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풍요하며 도덕적으로 우수한 나라를 세울 인물이었다. 그런 일을 여러 명이 할 수도 있었으므로 메시아가 여럿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그런 메시아로 알고 따랐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에서 누가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로 수시로 다퉜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관찰해보니, 예수님은 그 이상인 분이셨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목격하고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마침내 예수님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다. 특별히 요한복음의 서두에 그것이 잘 표현돼 있다. 이렇게 돼 마침내 유일신 사상이 뼛속까지 스며 있던 일군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속에 예수님 신성에 대한 깨달음을 넣어준 것은 이론이나 관념이 아니라 능력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하셨다. 또한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비록 완곡했지만, 당시에 그들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자신이 신성을 가진 존재 곧 하나님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봤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내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 안에 있다, ……. 이런 말씀들은 한편으로는 제자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것들이 그들 마음속에 하나씩 쌓이면서 마침내 예수님을 영원한 하나님으로 알고 믿게 했던 것이다. 물론 최후의 계기는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다.
신학자라는 자들 가운데 이 진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고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자들도 있다. 순진한 신자들은 신학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놀라지만, 신학자 중에 불신자가 얼마든지 있다. 그들은 참된 구원의 신앙이 없이 신학이라는 학문으로 먹고 사는 것 뿐이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신자가 그런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안다.”고 말씀하셨다. 복잡한 신학적 이론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예수님의 양들은 “저 사람의 말은 뭔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감을 가진다. 만약 신학을 전공한 사람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다면, 많은 신자는 그냥 속아 넘어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거짓 가르침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다. 어쨌든 그런 신학자들에게는 구원의 신앙이 없으니 어떻게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정죄와 죽음을 당하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영원하신 성 삼위의 제2위이신 하나님께서 사람 몸을 입고 역사 속에 들어와 살고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고 승천하시는 신성하고 신비한 일을 필요로 할 만큼 큰일이다. 죄의 문제가 그렇게도 크고 심각한 문제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구약 역사의 연장 선상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세우지 못한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 세우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 사역의 제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였다. 천국과 하나님 나라가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이라는 점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보스 같은 신학자는 이 두 표현의 미묘한 뉘앙스를 지적하기도 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가까이 임했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전한 이는 세례 요한이었고,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는 예수님께서 동일한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천국이 이미 이 땅에 임해 있다고도 가르치셨다. 동시에 그 천국은 인간 역사 속에서 한동안 계속된다는 것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갈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회개하라!”는 요구는 예수님이 선포하고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의 도덕적 성격을 가장 압축된 말로 요약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왜 회개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그 나라는 죄를 용인하지 않는 나라인 까닭이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셨을 때, “천국은 뭐며 회개는 또 뭐요?”라고 묻는 자가 없었다. 적어도 유대인 가운데는 없었다.
유대인에게서 하나님 나라는 지금 자기네가 이방인에게 빼앗긴 상태에서 회복해야 할 나라이므로 그걸 모르는 유대인은 없었다. 회개에 대해서도 그렇다. 회개란 죄를 버리는 것이다. 죄가 뭔가? 무엇이 죄고 무엇이 죄가 아닌지 판단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유대인에게 그 기준은 너무나 선명했다. 바로 모세를 통해서 내려 주신 율법이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회개를 요구했을 때 거기에 율법의 기능이 전제돼있다. 율법에 비춰서 어그러진 것을 고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율법에 비춰 어그러진 것을 가지고는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이다. 그러니까 죄를 버리고 고쳐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이는 그 나라가 율법이 완전히 이뤄지는 나라인 까닭이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 심정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율법이 완전히 이뤄지기를 원해야 한다. 따라서 자기는 율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고 율법대로 살기를 원해야 한다. 여기서 벌써 하나님 나라의 성격이 드러난다. 하나님 나라는 죄가 용인되지 않는 나라다. 다시 말하면 율법이 완전히 이뤄지는 나라이다. 그 나라 백성은 모든 죄를 미워해야 하고, 율법의 한 점 한 획이라도 어기지 않고 지켜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 최후의 관건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두 가지 일을 해주신다. 하나는 그들이 율법을 어긴 결과 그들 빚으로 남아있는 형벌을 없이 해주셔야 하고, 다른 하나는 그들 마음속에 율법을 기록해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야 한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와 고난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을 보내심을 통해서 예수님은 죄인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신다.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은혜로.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내리신 장면은 드라마틱하다.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 앞으로 나아왔고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을 베푸셨다. 그 장면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음성으로 친히 선언하시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은 친히 불러 주셨지만, 율법의 세부 사항은 모세를 통해서 전달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다른 계명을 내리신 것이 아니다. 사람들 오류를 고치기 위해 구약의 모세 율법의 큰 정신을 가르치심으로 앞으로 지상에 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법으로 통치될 것임을 선언하셨다. 그래서 <산상보훈>을 “천국 헌장”이라고도 부른다. <산상보훈>의 마지막 단락은, 예수님이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는 <산상보훈>을 실천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나라임을 못 박는다. 율법을 행하지 않고는 그 나라 백성으로 살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하나님 나라 건설을 시작하시고 제자들에게 그 일을 계속할 것을 명하시고 승천하셨다. 승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복음 전도자는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율법이 이뤄지는 나라를 유지해 나가라는 것이다.
이제 항구가 보인다. 성령 이야기를 하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