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법관은 오직 정의의 변호자 돼야”
을사오적 이완용·이지용·이근택·권중현·박제순의 공통점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사실 이외에 오늘날로 말하면 교육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외교부, 농축산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모두 판사 출신이다. 이완용은 국비로 미국 유학을 시켜준 대가가 매국으로 돌아왔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인 서민호 의원은 자신을 살해하려던 군인을 사살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정당방위’라며 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격노한 이 대통령은 김병로 대법원장에게 “현역장교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는데 무죄라니, 될 말인가”라며 반발했다. 이에 김 대법원장은 “판사가 내린 판결은 대법원장인 나도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무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맞받았다.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며,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1887~1964) 선생이 사법부 독립을 지켜낸 유명한 일화다.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일본 메이지대학 등에서 법학을 배우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대학 강의를 하면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조선총독부는 그를 판사로 임용했으나, 그는 변호사 자격이 주어지는 판사 1년 경력만 채우고 일제의 박해를 받는 동포를 변호하기 위해 변호사로 나섰다.
김 선생이 독립운동 탄압의 본거지였던 서울 종로경찰서를 폭파한 대한광복단의 김상옥 의사를 변호하며 법정에서 “조선 독립을 희망하는 사상은 조선인 전체가 가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정치 변혁을 도모했다고 하여 처벌한다면 양민을 억지로 법의 그물에다가 잡아넣는 것”이라고 말한 장면이 당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거리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아호 가인(街人) 역시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고 거처할 곳 없는 현실을 개탄하고 독립을 바랐던 김 선생이 직접 붙였다.
김 선생은 광복 뒤 미군정에서 사법부장을 지내고 건국 이후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민법과 형법, 형사소송법 등 우리 사법의 근간이 되는 법률의 기초를 닦고 사법부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의 청렴하고 강직한 삶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대법원장 시절 결재 도장이 반토막 날 때까지 바꾸지 않고 사용했다. 박봉에 시달리던 판사가 사표를 들고 찾아오자 “나도 죽을 먹으며 산다. 함께 참고 고생해 보자.”고 만류해 그 판사가 사표를 거두기도 했다. 판사 회의에서는 “사법관들은 오직 정의의 변호자가 됨으로써 사법의 권위를 세우는 데 휴식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로 전 대법원장의 일생을 살펴보면, '대법원장'이라는 자리를 뛰어넘는 그의 인간됨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는 법률 전문 지식이 풍부한 '관료'에 머무르지 않았다. 1900년대 항일 의병 활동에 참여하고, 일제하에서 신간회 활동을 주도했다. 또 1921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뒤 안창호, 여운형, 이재유, 박헌영 등 좌우를 가리지 않고 항일 독립 투사들에 대한 변론을 도맡았다. 그는 식민지 법정에서 "조선독립을 희망하는 사상은 2000만 조선인 전체가 가졌다"는 주장을 거침없이 펼쳤고, 이런 사실이 당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보도되면서 일제의 폭정에 신음하는 조선 민중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끝까지 이승만 대통령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 교수는 "가인 선생은 스스로 '이승만 정권의 대법원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법원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발췌개헌, 4사5입 개헌, 특조령에 대한 위헌 결정 등 이승만 정권의 헌법 파괴 행위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그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1957년 말 그의 퇴임 이후 일어난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고 <경향신문>을 폐간하더니, 야당 지도자 조봉암을 사형시키고 진보당을 해체시켰다. 결국 3.15 부정선거를 통해 영구집권을 획책하다 몰락했다.
스스로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거리의 사람에 불과하다며 '가인(街人)'이라는 호를 썼던, '선공후사'를 넘어서 '지공무사'를 공직자의 자세로 여기며 평생을 강직하게 살아온 그의 삶을 우리의 삶에 그대로 투영시키기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돌아보는 '사표(師表)'로 삼을 만 하다.
지공무사(至公無私). 공익을 우선하고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던 꼿꼿한 선비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근래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 소중한 깨달음을 나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던져주고 있다. 저자는 “공사 생활을 대쪽같이 쪼개어 구분”한 분이셨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도 법관들과 공직자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는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가인 김병로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