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는 말 오늘 모임에서 발표자는 논의의 서두를 떼는 일을 맡았다. 다른 발표자들도 인문학 일반에 관한 사항을 언급하겠지만, 대체로는 논의의 지평을 인문학 전체로 확대하기보다 인문학에 속하는 각 분야 즉 문학이거나, 역사 또는 철학으로 논의 범위를 한정해 각 분야 나름대로의 현상 진단과 앞으로의 대응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논의의 서두에 해당하는 위치에 맞게 내 글은 주로 인문학 일반에 관해 그 특성이 어떤 것인지를 규명하는 과제를 다루고 있다. 인문학 일반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좀 더 추상적인 수준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건조하고 재미도 떨어지는 것이 되겠는데, 이 이야기를 그냥 건너 뛴다면 왜 우리가 여기 한 자리에 모여 논의를 모아보려 드는지 그 까닭부터 불명한 채로 서로 간에 별 상관 없는 남의 사정이나 좀 들어주다가 파장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서 재미없더라도 꼭 하고 지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실제로 문,사,철을 비롯한 여러 분야를 종개념으로 포괄하는 유개념으로서 인문학은 같은 수준의 개념인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또는 공학 등과 비교해서 상당히 모호한 구석이 많은 문젯거리 개념이다. 분류라는 것에는 항상 경계선의 문제가 따라 다니게 마련인데, 애당초부터 분류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의 내포가 명확하지 못한 인문학의 경우에 경계선의 문제는 일종의 고질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구라도 체계적인 학문 분류를 시도해 본 사람은 깔끔하게 잘 정돈된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하게 될 터인데, 그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인문학의 경계선 상에서 야기되는 것이 틀림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경계선 부근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인문학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왔던 문학, 역사학, 철학의 경우도 기실은 그것들을 꼭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주어야 할 근거가 그렇게 선명하게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인문학이란 개념에 대해 아예 유명론의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인문학이란 어쩌다 생긴 이름에 불과한 것이고 문, 사, 철 분야를 묶어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하등의 객관적인 정당 근거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발표자는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인문대학의 지붕 아래 모인 분야는 대부분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으며 그것이 곧 그 분야들을 인문학이란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부를 수 있는 정당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이 발표자의 생각이다. 그 공통점을 적시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 일반의 특성을 규명해 보여주는 일과 같은 것이다. 발표자는 이 일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우리는 왜 문학, 역사학, 철학 등이 이렇게 왜 한자리 모여 논의를 모으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그 까닭이 자연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발표자는 대체로 역사의 과정을 기술하는 방식을 통해 인문학의 정체를 밝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인문학이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전승 전수를 통해 정체성을 이어온 전통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방식을 달리해서 역사에 조회하지 않고 체계적, 학문이론적 근거에 의거해서 인문학의 정의를 구함으로써 인문학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발표자의 생각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얻어진 정의는 사실상 규정적 주문(prescription)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즉 과거는 어쨌든 앞으로는 이러 저러한 특징을 갖는 분야의 명칭으로 인문학이란 말을 쓰기로 하자, 그래서 이 특징을 기준으로 삼아 인문학으로 불리는 영역을 재편하자는 주문이 정의의 형태로 제안 되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제안을 하는 수고를 할 생각은 없다. 굳이 새판을 짜려 들지 않고 과거에 형성되었던 인문학이란 개념의 본뜻을 계속 이어가도 의의가 충분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단, 역사 속에서 인문학이란 전통을 추적해보는 일 역시 이미 나름대로의 인문학에 대한 선이해가 개입한 해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오직 객관적인 역사의 사실만을 기술한다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겠다. 도대체 인문학이란 전통을 추적한다면서 어떤 것을 유관한 역사적 사실로 선택해서 보느냐, 그리고 그 사실이란 것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조회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에 조회하는 작업에 은연중 이미 어느 정도 규정적 주문을 포함시키는 일이 나도 모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도록 하겠다.
1. 인문학의 대상
우선 보통 사람들이 받아 들이고 있는 학문 분류 방식에 따르면 인문학의 위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출발시키도록 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은 항상 무엇에 대한 앎이기 때문에 앎 자체에 대한 논의 보다 대상 영역에 대한 논의를 선행시켜야 앎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한 적이 있다. 학문 영역을 분류하는 기준이 일차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영역에 대한 구분을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은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서양에서의 학문 분류 방식을 지배해왔다. 대부분의 분과 학문 명칭이 이런 생각을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정치학은 정치라는 현상을 대상으로 생물학은 생물체를 대상으로 하여 성립하는 것이라는 사정이 그 이름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인문학과 같은 수준의 분류인 자연과학의 경우는 대상이 바로 자연이고 사회과학은 사회임은 명백하다. 그런데, 인문학의 경우는 위의 예처럼 그 명칭에서 얼른 전달되는 대상 영역이 없다.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경우에도 물론 자연 또는 사회가 무엇이냐고 그 정의를 묻자면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을 수 있겠지만, 인문학의 경우는 그 이전 단계에서부터 어둡다. 그런 점은 인문학의 한 분야인 철학과 사정이 아주 비슷하다. 한자로 밝을 철자를 써서 만든 명칭은 그 학문이 무엇을 탐구하는지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빛도 던져주지 않는다. 인문이란 대체 무엇인가? 밝을 철과 비교하면 그래도 무언가 조금은 꼬투리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학문 명칭으로 쓰이는 이외에는 다른 용도로 쓰이는 예가 별로 없어서 여전한 오리무중이다. 그 명칭이 실은 외국어의 번역임을 상기하고 그에 해당하는 서양 말을 알아보면 어떨까? 서양에서 인문학에 속하는 여러 분야의 학문 활동은 그 출발점을 적어도 고전 희랍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찾을 수 있지만, 정작 그 여러 분야를 하나로 묶는 인문학이란 단일 명칭이 등장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의 일로서 로마시대에 쓰인 humanitas가 인문학이란 명칭의 원조로 지목되고 있다. “인간임” 또는 “인간다움”을 뜻하는 이 말은 제대로 된 학문 명칭같이 들리지도 않는다. 한참 더 지난 뒤인 르네상스 시대에는 studia humanitatis란 말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요즈음 국제공용어 노릇을 하고 있는 영어로는 humanities로 확정되어 쓰이니까 원조로부터 별로 멀어진 바가 없다고 하겠다. 어쨌든 서양어의 명칭까지 알아본 결과 안개가 한 거플은 걷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나마 인간이라 개념이 인문학에서는 중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시사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시사를 근거로 해서 곧 인문학의 탐구 대상이 인간이라고 확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우선 당장 의학이나 생물학도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물론 이런 학문은 생물체인 한에서 인간을 다룬다는 제한이 있다. 그렇다면 그와는 달리 인간을 정신적인 존재인 한에서 탐구 대상으로 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규정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실제로 독일 사람들은 인문학을 보통 Geisteswissenschaft라고 부른다. 하지만 인문학에 대한 이런 파악은 시비의 소지를 너무 많이 안고 있다. 당장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영육 이원론적 구분의 형이상학을 전제하는 파악방법이란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과연 그와 같은 형이상학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인지 설명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요즈음은 아예 정신이란 말 자체를 미신 시대의 잔재나 되는 것처럼 취급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정신이란 말에 대해 그렇게까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어쨌든 인문학의 대상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 그 말을 끌어들이는 것은 일단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신이란 말을 되도록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명료하게 사용하는 경우는 아마도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과 같은 분야가 다루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때일 것 같다. 물론 심리학이나 정신 병리학은 인문학이 아니다. 인문학이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나누어 그 어느 쪽도 다루는 것이 아니라면 그 둘을 합쳐 전체적으로 다루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도 찾는 답이 아니다. 인문학이 인간의 정신과 육신을 합쳐 다루는 것이라면 인문학의 연구 내용은 결국 의학이나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합쳐 놓은 것이 되겠는데, 인문학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에게는 육신과 정신 이외에 인문학의 고유한 대상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어떤 측면이 있을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인문학의 대상이 될 인간의 또 다른 단면을 떼어내는 일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그런 면이 또 있는지 여부는 차치(且置)하고 인문학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실은 언제나 전체로서의 인간 모습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여기 저기를 뒤져가며 인문학의 연구 대상을 찾는 일은 이쯤에서 중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인문학의 인간에 대한 관심이 도대체 직접적인 탐구 과제로 주어진 대상에 대해 갖는 관심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문학이 만일 인간을 전체이든 한 측면이든 간에 연구 대상으로 놓고 그 성격을 규명하는 것만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다면 인문학이기를 포기하고 개별 과학의 길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애당초 인문학의 명칭에 등장하는 인간이란 개념은 다른 대부분의 과학과는 달리 대상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문학적인 앎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시작된 앎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와는 달리 대상의 성격 규명으로 시종하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정과 관련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문학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진척시키기 위해 일단 대상 영역을 찾는 일은 여기서 멈추고 그 다른 중요한 특성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에 착수하도록 하자. 2. 인문주의의 이념 humanitas란 말을 쓰기 시작한 키케로를 비롯한 로마의 지식인들은 그 말에 포함된 인간이란 개념을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는 객체로 보다는 실천적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점으로 설정했다. 다시 말해 이미 고정된 규정성을 갖춘 존재가 아니라 이제부터 꾸며내야 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로마 때부터 확립된 기준에 따라 판단하자면 인문학의 연구 대상을 기왕에 존재하는 것들의 영역에서 찾는 것은 단적으로 사실과 규범의 구분을 제대로 못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물론 로마인들이 사용한사람이란 말이 사실적 대상을 지칭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키케로와 같은 지식인에게 기왕에 존재하는 즉 꾸미기 이전의 자연 상태 그대로의 인간은 짐승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 존재는 사람이 아닌 짐승과 선명하게 구별이 되지 않아 사람다운 특징이 덜한 것이다. 가령 우리도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 표현인 “저런 사람은 사람도 아니야” 또는 “사람은 역시 사람이야” 등이 단순한 모순이거나 동어 반복이 아닌 까닭을 생각해보면 로마에서도 한 말이 사실 기술적(descriptive)인 차원에서 쓰이며 동시에 규제적(prescriptive) 이념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키케로에게 사람다운 사람은 어떤 존재였을까? 아주 일반적인 대답을 하자면 사람은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고 향유하고 실현함으로써 사람다워 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선진 문화국인 희랍에서 자신들이 숭상하는 많은 것을 수입해온 로마인들에게는 가장 높은 수준의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이 바로 고전 희랍시대에 이룩된 문화적 성취 였다. 그래서 일단 아주 단순화해서 이야기하자면 당시 로마인에게는 실질적으로 희랍 고전에 접하는 것이 사람다움의 표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희랍고전이란 역사의 어떤 특정한 지점에서 창출된 것이기는 하지만 시간을 뛰어 넘는 보편성을 지닌 가치 실현의 전범(典範)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이런 뜻의 고전이란 개념 자체를 주조 해낸 사람들이 바로 로마인였다. 그러니까 humanitas란 개념이 탄생하면서 거의 동시에 고전이란 개념도 탄생한 것이다. 그 뒤 그 둘은 마치 개념적 필연성에 의거하여 연결된 것 인양 하나가 다른 하나의 중심 축에 위치하면서 역사의 길을 내내같이 걸었다. 로마인의 humanitas가 후대의 서구라파로 전승되고 그것이 오늘날 까지 이어지는 인문학의 전통을 만들어 가면서 겪은 변화와 고전이 겪은 변화는 서로 거의 동일한 궤를 그렸던 것이다. 인문학과 고전에 또 하나 긴밀히 연계된 것이 교육이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존재가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수고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 수고가 교육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또 교육 내용 또한 고전이었던 것도 당시 로마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직업이 전통적으로 선생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인문학이 하나의 제도로 지위를 확실히 할 수 있었던 것도 학교라는 장치를 통해서 였다. 이론적으로는 학교 울타리 밖에서도 인문학이 존재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학교는 인문학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주 했던 집이다. 학교를 떠난 홈레스 인문학은 생존이 위태로운 존재다. 인문학, 그리고 고전과 교육 이 셋이 이렇듯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 것은 그것들이 하나의 강력한 이념의 띠에 의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이념의 띠를 우리는 인문주의(humanism)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humanism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지만, 방금 말한 버전 즉 고전(또는 고전과 같은 고급 수준의 문화적 가치를 구현한 작품)을 내용으로 한 교육을 통해 인간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신조가 서양의 역사에서는 가장 길고도 확실한 족적을 남긴 humanism였다. 이 점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체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른 문명사회라면 인간을 자연 상태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바람직한 인간상을 규범적 당위로 설정하고 제도화된 교육을 통해 그 당위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 조 중국 고전인 공맹지도를 담은 문헌의 공부하고 공부시키는 것으로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는 이념이 가졌던 힘을 회상할 수 있는 우리로서는 서양 인문주의의 요체를 이해하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인문학자와 텍스트
이제 인문주의 이념이 실제로 어떤 장치를 동원해서 역사의 현장에서 힘을 발휘했는가를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이념으로서 인문주의는 -이념이란 것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유사 종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제도로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여러 장치를 사용하는데 그 중 중요한 것이 바로 성직자 집단과 경전에 해당하는 두 장치다. 경전에 해당하는 것이 이 경우에는 고전이겠는데, 고전이란 뜻의 폭을 넓게 잡자면 음악이나 회화, 조각, 건축 등 여러 매체를 사용한 작품을 포괄하겠지만 인문주의의 전통에서는 특히 문자매체를 사용한 문헌이 그 중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사람이 될 재목들 즉 학생들이 문헌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문자를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작품 이해를 위한 고급 수준의 해설을 제공해주는 교사 즉 인문학자들의 존재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세상이 발달해서 보통교육의 이념이 보급되자 기본적인 문해(文解)교육 정도는 국민들에게 생필품을 배급해주는 것과 같은 실용적인 차원의 일이 되고 인문교육을 담당하는 인문학자들의 일은 문헌에 담긴 더 깊은 뜻을 찾아 해설해주는 고급 수준의 전문적인 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인문학자들의 일이 전문화되어 가면서 그들의 일에는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승할 전문가의 양성하는 일이 첨가되었다. 이렇게 해서 제법 공고한 단결력을 지닌 인문학 연구의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어 대를 이어가게 되었는데, 이 전문가 집단은 다른 전문가 집단들과는 달리 인간을 만드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기 이해로부터 출발한 배경 때문에 성직자에 버금가는 권위와 자존심을 가진 집단으로 군림했다. 이 권위와 자존심은 인문교육 이외에 전문가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직업 전문교육이 고등 교육 기관 내에 수용되고 또 그 수가 점차 늘어가면서 이것이 현대 대학의 추세인데- 상대적인 축소를 겪게 되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다. 최근의 상황은 또 달리 논의해야 겠고, 여기서는 과거의 역사를 더듬는 일을 더 계속하기로 하자. 인문학자들의 전문가 의식이 커지면서 그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권위와 자존심의 근거가 되는 문헌 형태의 고전을 물신화하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물론 고전의 목록에 변화가 생기고 과거 정전(正典, canon) 노릇을 하던 것의 위엄이 축소되거나 아예 다른 것으로 대치되거나 하는 수는 있다. 그러나 인문학자들은 모두 자신이 연구하는 문헌이 지닌 고전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바꾼 적이 없으며 그 믿음을 제도적으로 더욱 강화하려 든다. 이 점은 고전이란 말을 쓰지 않고 썼다 해도 욕할 때나 쓰는 급진 성향의 인문학자에게도 어김없이 해당된다. 이 사실은 그들이 공언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의 의미를 조금만이라도 사회학적 관찰의 감각을 동원해서 직시해보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문헌에 대한 숭상이 물신화 경향으로 이어지는 실례를 우리는 인문학의 성격에 대한 논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발표자는 앞서 인문학의 연구 대상 영역을 탐색하는 일에 대한 보고를 희망 없는 일이라고 중단했는데, 여기서 그 후속 편을 잠깐 만 이어보도록 하겠다. 문헌 자체가 완성된 존재자의 성격을 갖게 되면 그것 자체가 그렇게 찾기 어려웠던 인문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같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의 대상 영역을 인간이거나 정신으로 특정하기 곤란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문화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로 규정하는 것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제 물신화를 통해 그런 것들이 존재론적으로 확실한 위상을 갖게 되면 그것들로 별도의 대상 영역을 구성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굳이 인문학의 대상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해야 한다면 이런 생각이 가장 구체적이고도 진상에 가까이 접근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비코, 헤르더에서부터 딜타이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수의 사상가들이 이와 같은 생각에서 출발하여 인문학을 조명하는데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접근 방식도 결국은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육신의 구분과 유사한 구분을 도입하게 되면서 곧 한계에 부딪친다. 즉 작품이 지닌 물리적 측면과 비물질적인 측면을 나누지 않으면 모든 인문학을 서지학이나 판본 연구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이 경우 딜타이류의 의미체를 구성원으로 가진 별도의 세계를 상정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문헌 연구 자체를 주업으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많은 철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이 이 현실 세계가 아닌 이런 종류의 별도 세계와 씨름을 하고 있다는 설명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이들을 설득하면서 의미의 세계를 설정하는 것은 그것이 실재 세계와 갖는 관계에 대한 복잡한 형이상학을 구상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의미체에 대한 형이상학이 없어도 문헌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려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의미체의 실재성을 상정하는 형이상학은 물론 기표나 기의의 구별 자체를 폐기하고도 텍스트의 역할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입장을 취하지 않고도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인문학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런 입장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하겠다. 다만 텍스트 유일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텍스트라는 것에 대해 집착하게 된 것이 바로 문헌의 물신화 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것은 인문학 특유의 이념 지향적 성격에 의거해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점만은 말해두고자 한다. 인문학적 활동이 원래 인간다움의 이념을 지향하는 인문주의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발표자는 인간다움이 얼마나 고상한 이념인지를 설파할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인간다움이란 그 자체로서는 아직 내용이 거의 비어있는 말인데다 진부한 것이기도 해서 어차피 교화적 호소력이 빈약한 말이다. 그렇다고 그 반대로 인문학이 학적인 객관성과 엄밀성이 없는 것으로서 항시 이데올로기적 혐의나 받아 마땅한 것이라는 폭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특별히 한 것도 아니다. 폭로하고 말고 할 것이 없다. 인문학이 아니라 과학인들 이데올로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고대 로마의 인문학은 명백히 지배 엘리트를 위한 교육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도 워낙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우리 나라 같은 경우라면 몰라도 대부분 서양 선진국에서는 서가를 차려놓고 살만한 유복한 부르주아가 인문학 저술의 주고객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대목을 문제삼는 것은 대체로 흥미 있는 일이기도 하고 일리가 있는 성과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논의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 비판이 성립하기 이전 단계에서 살펴보아야 할 이념적 성격에 관한 일반론이다. 그리고 그런 수준의 일반론을 상기하는 것도 요즈음 인문학에 관한 많은 논의를 좀더 깊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4. 수사술과 인문학
인문학의 내용은 결국 인간다움이란 개념의 내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인문주의 이념의 큰 틀은 아직도 효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힘이 예전 같지 않은 까닭은 그 핵심에 해당하는 당위적 인간의 모습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그리기가 몹시 어렵게 되었다는 사정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하나로 고정된 인간상을 구체적이고도 명확하게 당위로 제시한다는 것은 독단이 되기 쉽다. 게다가 인문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적인 인식을 과학을 모델로 삼아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화된 것도 당위로서의 조회점 자체를 흐리게 하는 효과를 냈다. 이런 경향은 적지 않은 인문학자들에게 인문주의적 이념의 개입을 학문성에 대한 침해로 보게끔 부추긴다. 특히 아직도 인문학에게는 고정된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무반성적으로 소박실재론적 관점까지 수용하고 있다면, 그들은 틀림 없이 어떤 이념이든 인식 대상과 주체 사이에 끼어 드는 것이 곧 사(邪)가 끼어 드는 것이라고 믿어 마지 않을 것이다. 인문학의 출발점인 로마시대에는 사정이 달라서 당위적인 인간 모습이 상당히 선명하게 그려졌다. 로마인들에게는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은 조선 조의 선비들의 경우와 비슷하게 정치지도자로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바람직한 인간상은 대체로 정치 지도자인 공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설정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정치적인 삶에서는 격식에 맞는 의사소통 역량이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수사술이 인문교육의 중심에 놓였고 다른 분야는 보조 분야 인양 그 주변에 위치하게 되었다. 희랍 고전에 대한 평가에서도 수사술적 관점의 비중이 지배적이었다. 수사술은 그 뒤 인문학의 전통에서도 그 위치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인문주의 이념의 실현에 있어서 가장 큰 책임을 맡았던 것이다. 수사술에게는 다른 분야와 대비되는 특별한 연구 대상 영역이 따로 배당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정치가가 인간 삶에 관한 것이면 모든 것을 다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듯이 수사가도 어떤 것이든 다 말의 내용으로 삼을 수 있어야 했다. 물론 수사술을 배우면 설득력 있는 언변을 구사하기 위해 필요한 형식적 요령 같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유능한 수사가가 될 수는 없다. 말이란 항상 내용을 가지는 것이다. 말을 어떻게 꾸미든 말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말을 잘 한다는 것이 단지 말의 특성을 잘 알고 그 특성을 적절히 이용해 말을 잘 꾸미는 것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말을 잘 꾸미는 요령에 더해서 말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설득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작곡기법을 통달했다고 해서 좋은 곡을 자동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음과 마찬가지 사정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상적인 수사가는 만학을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전지자(全知者,passophoi)처럼 행세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수사술을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수사술이 탄생한 고전 희랍시대부터 수사가의 전지자 행세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아테네에서 있었던 이 시비는 인문학의 역사에 있어서 심대한 의미를 지닌 것이기 때문에 잠깐 만 그 전말을 살펴보자. 우리는 플라톤의 대화편 [골기아스]에서 수사술이 무엇을 주제로 하든 어떤 전문 분야보다도 오히려 그 분야를 더 잘 다룬다는 논지에 대한 격렬한 찬반토론을 발견한다. 이 대화편에서 플라톤의 동시대인으로 수사술의 대가이고 소피스트인 골기아스는 수사술이 의학보다도 더 인간의 건강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축성에 관련해서도 토목 기술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예를 들어가며 수사술이야 말로 모든 기예와 학문의 으뜸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골기아스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가진 소피스트로 알려져 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안다고 하더라도 남에게 그것을 전달할 수 없다. 회의주의 강령과도 같은 이 명제들이 바로 수사술의 으뜸을 받침해주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골기아스에 의해 수사가들의 말은 존재하는 것들의 세계로부터 해방된 셈이다. 다시 말해 말이 소위 객관적인 사태를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함으로써 진리가 되어야 할 속박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해방된 말은 이제부터 자신이 가진 힘만으로 설득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으뜸이랄 것도 없이 유일이라고 해야 할 위치를 갖는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골기아스]편을 쓴 플라톤은 철학과 수사술의 싸움에서 승리를 수사술을 사기술로 여기는 플라톤의 대변자인 소크라테스가 얻도록 이야기를 꾸민다. 그러나 그 승부의 완결편은 그때 다 쓰여진 것이 아니다. 세계를 제패한 로마인들이 설정한 인간다움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에는 진리추구라는 것이 그리 큰 비중을 갖는 것이 아니었다. 로마인에게 희랍 철학을 알리는데 열성적이었던 키케로까지도 바람직한 인간상은 일단 실천적인 정치가로 보았다. 그에게 진리 탐구의 이성적 가치를 실현하는 학문인은 정치가가 여가를 즐기는 모습으로만 의미가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런 그들의 생각을 정당화 하기 위해 특별한 이론적 노력도 하지 않았다. 고전 시대 희랍인들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애당초부터 학문적 진리라는 가치가 정치, 윤리적인 가치와 긴장관계를 가질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수사술은 진리를 숭상하는 철학과의 대결에서 어렵지 않게 승리한다. 그러나 수사술도 그 지배적인 위치를 얼마 안 되어 잃고 만다. 정치 현실에서 말을 통한 설득이 설 자리도 별로 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의 전개는 키케로 같은 로마인에게도 어김 없이 그 점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수사술은 고대 말까지 잔명을 이어가다가 화석화된 형해만 남아 소위 일곱 기예의 한 항목으로 서구라파에 전승되었다. 그 일곱 기예 중에는 플라톤의 아카데미 입구에서부터 학생들에게 필수과목으로 요구했다고 하는 기하학도 같이 들어 있었는데, 역사는 그것에게 장차 수사술과는 비교되지 않을 화려한 역할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진정한 인문학자는 자신이 전지자인 수사가로 부활하는 비밀스러운 염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담는 말이 지닌 힘으로 한때 로마인들이 세계를 제패했듯이 듣는 이 모두를 설득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기에는 너무나 많은 전문적인 지식들이 그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인체의 병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에서 의학자와 겨룰 수 없고 토목공사에 관한 이야기에서 토목공학자와 겨룰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골기아스의 철학을 공식 신조로 삼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신조만으로 자신이 전지자처럼 행세할 권한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학문적 진리의 가치에 대한 로마인들의 태도를 흉내낼 수 없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과학이 학문적 진리의 이름으로 이룩한 성취가 로마시대와는 달리 너무나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사람다움의 이념을 또 한번 강조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사람 노릇 하는 데에는 진리에 관한 지식이 결정적인 몫을 차지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인문학자의 은밀한 꿈이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실현의 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인문학자가 관심을 갖는 세계가 분과과학이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는 바로 그 세계와 같은 것임은 인정해야 한다. 과학이 남겨 놓은 어떤 다른 궁벽한 구석이 있어 그것에 관한 지식을 캐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과학이 대상으로 삼는 그 세계에 관해 실질적인 제한이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원래 인문학인 것이다. 그 점에서는 그러니까 골기아스적인 수사가가 되는 것이다. 단, 과학자들과 지식을 겨루지는 말아야 하며 오히려 그들이 전문적으로 캐낸 지식에 의존할 수 있으면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언어가 세상을 담되 과학적 지식을 어설프게 종합하는 방식으로 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세계에 접근해서 얻은 결과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은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지닌 학문이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 인문학의 대상 접근 방식이 과학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밝혀 인문학의 정체를 조명하는 일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 5. 이해와 사지향(斜志向, intentio obliqua) 많은 학자들이 과학과 대비하여 과학이 설명을 목표로 하는 인식활동 임에 반해 인문학의 인식활동은 이해라는 것을 목표하여 이루어진다고 구분하여 말한다. 이런 견해는 인문학의 활동이 주로 고전과 같은 문헌의 해설 또는 해석에 집중 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제시된 것으로서 앞서 말 한대로 인문학이 실제로 그와 같은 활동을 해온 역사에 의해 정당 근거를 얻고 있다. 발표자도 기본적으로 이 견해를 받아 들이고 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하지만 이해란 말이 워낙 다의적으로 쓰이고 있어서, 그 말을 언급한 것만으로는 얻는 것이 많지 않다.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이해란 개념을 해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일정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여기서 그 성과를 자세히 보고할 수는 없다. 우리의 논의의 맥락에 비추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핵심적인 사항 하나만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발표자가 이해에 관련해서 핵심적인 사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는 다른 어떤 인지활동보다도 인식 주체인 인간의 개입이 두드러진 형태의 앎이란 사실이다. 인지 활동은 보통 대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향적(志向的, intentional)인 것으로 규정되고 있다. 지향은 일단 대상과 주체의 구분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 때 주체가 대상에 대해 갖는 관계는 주체의 개입에 어느 정도의 무게가 실리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로 구별이 될 수 있다. 이런 구분을 J. Searle은 소위 맞춤의 방향(direction of fit)을 기준으로 해서 설명하고 있다. 가령 믿는다는 지향은 경우에는 주체쪽이 대상인 세계에 맞추어야 하며 그와 반대로 바란다는 지향은 대상인 세계쪽이 주체에 맞추어야 한다는 요청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나는 지금 비가 온다고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세계가 맞추어 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만일 그가 자기의 믿음에 맞추어 비가 오지 않는다고 세계를 탓하려 들고 자신의 믿음이 잘못 된 것은 아니라고 고집한다면 그는 믿음이란 말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고 보아야 한다. 믿음이 틀리는 것은 세계쪽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쪽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믿음을 갖는 주체쪽이 맞춤의 의무를 진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바람의 경우는 바람을 가진 주체가 세계에 일방적으로 맞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가 자신의 지향에 맞추어져 있지 않음을 탓하고 원망할 수 있다. 흔히 바람 만큼은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맞춤의 방향에서 주체쪽의 탓이 일차적이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맞춤의 방향에 따른 구분에 의하면 인지활동에 해당하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 볼 수 있다. 넓은 의미로 이해된 앎은 대상 쪽에 주체가 일방적으로 맞춤의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는 그 중 좀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이해라는 말의 다의적인 쓰임새 중에서 대표적인 용례로 가령 “나는 당신의 행동을 이해한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이때 이해는 나의 인지활동 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인지활동과는 달리 이해의 주체는 이해의 대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맞춤 요구를 하고 있다. 만일 문제의 행동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불평을 하는 경우를 분석해보면 책임이 나의 인지 능력 부족에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시인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해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해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가령 선생이 학생의 논문을 심사하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하면 그 때 선생은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는 것이기 보다는 학생을 질책하는 뜻을 전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는 맞춤의 의무가 학생의 글에서 선생의 지능으로 거의 거꾸로 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해는 이렇듯 이해의 주체쪽에서 주문하는 틀에 어느 정도는 맞추어 달라는 요구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 주문의 틀은 주체가 생각하기에 행동이나 말이 따라야 할 규칙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해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그 규칙을 따르는 것을 당위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존재 즉 인간의 말이나 행동이 되는 것이다.) 물론 주문의 틀이 객관적으로 고정된 크기를 가진 것은 아니며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이해의 폭이 넓으니 좁으니 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폭은 어쨌든 일정 정도의 주체 측의 주문이 동반하고 있는 지향이 이해라는 것에 주목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이해가 정말 인문학적 인식활동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라면 인문학적 인식의 대상 접근 방식은 한마디로 사지향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보통 지향이라고 하면 일단 사지향이 아닌 직지향(直志向, intention recta)를 의미한다. 직지향의 예는 가령 내가 오늘 비가 온다는 것을 안다고 할 때 나의 앎에는 그 앎을 가지는 주체인 나에 관련한 사항은 아무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 경우 지향 주체의 의식은 오직 대상을 향해 있으며 대상에 도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사지향은 대상과 만나는 주체의 의식에 자신에 대한 의식도 어떤 방식으로든 끼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직지향과 사지향의 구분에 대해서 발표자는 이미 다른 글에서 비교적 자세히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사지향이 언어적으로는 재귀 동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이란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겠다. 가령 독일어로 “sich die Hände waschen'이라고 하는 표현을 생각해보자. 예의 경우에는 단순히 행위가 손을 대상으로 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행위가 대상인 손에 미쳐 손을 깨끗하게 한다는 결과를 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되돌려져 행위의 주체에게도 미치고 있음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재귀동사는 원래 인도 유럽어계에 속하는 희랍어나 라틴어 같은 고대어의 중간태에서 유래되었다. 중간태는 말 그대로 능동태도 수동태도 아닌 것으로 이해된 동작의 양태다. 능동태에서는 동작 주체에서 대상에게로 동작이 겨냥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고 수동태에서는 그 방향이 거꾸로라면 중간태는 이도 저도 아닌 즉 동작이 대상을 향하면서도 동시에 주체 자신도 동작의 영향 범위 내로 끌어 들이는 것이다. 이 경우 주체가 개입되는 방식은 여러 가지 일 수 있어서 아예 주체 자신이 곧 대상인 것처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또는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것에 머무를 수도 있다. 가령 문이 열린다는 뜻으로 “Die Tür öffnet sich.'라고 하는 것이 전자의 한 예가 되겠고 희랍어나 라틴어에서 중간태로만 쓰이는 “사용한다.' 는 말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무엇을 사용한다는 것은 행위의 방향이 대상을 향하고 끝나는 것만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기에는 무언가 미진한 구석이 있다.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사용한다는 말에는 언제나 행위를 통해 주체가 얻게 되는 이로움의 효과가 의식된다는 사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엇을 사용할 때는 주체가 대상에 대해 일정한 행위를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대상과 더불어 행위의 범위 안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인지활동에도 중간태 또는 재귀동사적 요소를 가진 것이 바로 이해인 것이다. 지금까지 주로 예를 통한 유비적 설명을 했던 것을 이제 직접적인 언어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이해란 방식을 통해 대상에 접근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앎이 주체측의 삶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의미 연관을 의식 속에 끌어 들어 것에 다름 아닌 일이다. 예컨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에 대한 앎은 알다시피 자연 과학적인 앎이다. 그러나 그 앎은 인간의 삶에 심중한 의미를 지녔다. 당장 그 앎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갈릴레오에게는 생명과 인격의 일관성이 걸린 절실한 문제가 그것과 연관하여 발생했다. 그러나 과학은 이런 문제연관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인양 시야밖에 둔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던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진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은 세계관의 변화를 동반하는 엄청난 충격이 되었고 서양 근세의 새로운 사고 방식이 전파되는데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없는 일과 같이 취급된다. 인간이 진리로 인식한 것은 인간 삶의 맥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지만, 과학은 그것을 그 원래의 자리에서부터 떼어낸다. 사실의 성립근거를 캐내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기도 하고, 또 그래야 하는 것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까닭은 갈릴레오가 발견자인 것과는 상관 없는 일이고 그 자체로는 당시 서양인들의 세계관과도 연관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무관한 것으로 사상해버릴 때 과학적 설명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문학은 사실에 대해 그 성립근거보다는 그 사실에 대한 인식이 인식주체인 삶에 관련해서 생성시키는 의미 연관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자가 기술하는 사실에는 인식 주체인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이 말은 물론 인문학자가 앞서 들었든 예인 재귀동사적 요소를 쓰는 문장마다 가미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문학자가 쓰는 글은 전체적으로 볼 때 인간 주체를 개입시키면서 주체와 마주선 사실들이 인간의 삶에 대해 가지는 의미연관을 밝혀주는 것이다. 실제로 인문학자가 하는 일의 상당히 많은 부분은 단순한 사실 정보를 획득하는 것일 수 있다. 가령 김소월의 생년을 정확히 알아내려는 것도 국문학자의 일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아내기 위한 활동을 하는 동안은 그는 인문학 고유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일이 부차적으로라도 인문학의 일이 되는 것은 김소월의 시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가 별난 것이 있기 때문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소월의 생년에 관한 사실을 아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소월 시의 이해에 도움이 되고 그것이 최종적으로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이유가 인문학으로 하여금 그런 사실에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은 과학자들이 담당하는 과학적 사실도 이점에서는 소월의 생년과 같은 위상을 갖는다. 필요하면 소월의 생년에 관한 연구를 과학자가 대신 해주어도 또는 흥신소가 맡아준다고 해도 국문학자의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6. 맺는 말 이제 사지향이란 낯선 개념을 끌어들여 인문학을 조명한 까닭에 대해 한마디를 더하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인문학의 작업을 누군가 인간 종이 쓰는 일기에 비유한 적이 있다. 우리는 보통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그를 통해 스스로를 들여다 보며 반성을 한다고 말한다. 사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적 인식은 반성적인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지향을 설명하면서 재귀동사의 용법과 비교한 것에서 이미 사지향이 반성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시사되었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발표자가 반성이란 익숙한 말을 쓰지 않고 굳이 낯선 말인 사지향이란 개념을 끌어 들인 것은 반성이란 개념이 한가지 점에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성적인 앎이라고 하면 대상을 향한 앎의 방향을 주체쪽으로 되돌린다는 뜻이 될 터인데, 바로 이 대목에 좀 문제가 있다. 주체인 인간이 대상을 향할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인식의 방향을 되돌려 자신쪽을 향하게 하면 그것은 그냥 또 하나의 직지향이 된다. 가령 언어를 다루되 언어가 세계의 모든 사정을 내용으로 담을 수 있는 한에서가 아니라 언어 자체를 대상화해서 언어 고유의 법칙성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하는 경우가 그런 직지향의 예가 될 것이다. 그것은 인문학자가 염원하는 전지적 수사술의 행세와는 거리가 멀다. 인간이 쓰는 언어는 지향적 존재인 인간을 닮은 것이다. 인간이나 그가 쓰는 언어는 반복되는 법칙에만 종속되어 있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인간 존재의 내용은 그리고 그의 언어는 그의 주변인 대상 세계와의 관계에 의해 내용이 채워져 있다. 일기장의 경우가 사실은 바로 그러하다. 인간이 쓰는 자신의 이야기인 일기에 오직 자신만 등장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가만히 앉아 공허한 자기 속만 들여보고 있으면 쓸 것이 무엇이 있겠나? 세계 속을 살아가는 인간은 당연히 타존재와의 접촉한 내용으로 스스로의 삶을 채운다. 타자와 접촉이 없으면 인간 존재의 내용도 없다. 그래서 인간이 쓴 일기는 인간을 둘러싼 각가지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궁극적으로는 일기를 쓴 인간인 것도 사실이다. 그의 일기에는 가령 날씨가 맑다거나 비가 온다거나 하는 기상현상에 대한 기록이 등장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기상일지가 아닌 일기장에 쓰여진 한 주인공인 나에게 연관된 배경으로서 의미를 지닌 것이다. 날씨도 없고 또 다른 아무것도 없이는 지향적 존재인 나는 공허한 빈 껍데기 이겠지만, 나의 지향적 활동의 된 것은 내가 있음으로 의미를 부여 받는다고 해도 좋다. 인문학의 앎은 타자를 인식하는 지향적 존재로서 인간이 타자에 대한 것으로 채워져 있으면서 항상 그것들을 자신의 삶과 연관시키는 그런 행위다. 비유 하자면 어떤 사람이 꽃의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을 찍는 포즈를 다시 찍으러 들 수 있다. 그것은 일단 반성에 해당하는 것이 되겠다. 그런데 이 때 그가 사진을 찍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려면 그의 카메라에 잡힌 꽃까지 다시 찍어내야 한다. 이때 카메라에 잡힌 꽃은 꽃이 아니라는 식의 궤변적인 파악을 할 필요는 없다. 카메라에 잡힌 꽃에서 우리는 대상에 대한 사진 찍는 사람의 독특한 개입 방식을 잡아낼 수 있는 것뿐이다. 그것까지 보는 것이 인문학이 하는 일이다. 사정이 이처럼 복잡한 것은 인간이 결국 인간이 지향적 존재라는 사실에 그 까닭이 있다. 만일 인간이 고정된 실체로 즉자적인 완결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사정을 그리 복잡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인간에게는 그런 면도 없지는 않다. 가령 생체로서의 인간은 생물학적 법칙에 의해 기술될 수 있는 고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심리 역시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인문학이 관심을 갖는 지향적 존재로서 인간은 흔히 하는 말로 열린 존재다. 대상 세계와 자꾸 새로 만나면서 인간은 끓임 없이 달라지는 존재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던 때의 인간과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의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지향적 존재로서는 꼭 같은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열려있는 존재라는 것은 앞으로도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를 폭 넓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인간을 이렇게 파악하고 보면 인문학이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인문주의의 이념에 묶여 있으면서 고정된 하나의 인간형을 당위로 설정하는 것이 진정한 인문학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을 인간다움의 이념에서 자유롭게 해방시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입장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인간을 충분히 열린 존재로 인정하고 열린 목표지점으로 인간을 설정하기만 한다면 여전히 인간 만들기를 인문학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인문학에게 인간이 문제되는 방식을 이념 지향성을 떠나 달리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