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하기 위해서 병원에 갔었습니다. 대기실에 있는 동안 이른 아침부터 참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가 제일 젊은 환자려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보다 나이가 적은 분들도 꾀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심장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삶의 역동성에 많은 제약을 가져옵니다. 마음껏 뛰지도, 높은 곳에 오르지도 못합니다. 일상의 피로도 많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시한폭탄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기에 늘 긴장과 주의를 기울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좀 더 나아지길 기도합니다.
검사실에 들어갔을 때 저는 조금 새로운 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평상시대로 성직자 복장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검사실에서는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제 옷을 벗고 의료진의 복장과 거의 비슷한 디자인과 재질로 된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서로가 서로에게 ‘존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의료진은 환자에게, 나이 여든이 가까운 할머니는 의료진에게 극존칭의 존댓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속옷 하나 걸치지 않고 모두 비슷한 옷에 서로가 서로에게 존칭을 사용하고 있는 심장 초음파 검사실! 환자는 의료진에게 자신의 가슴을 열어 보여줍니다. 그리고 의료진은 환자의 심장을 20분 넘게 주의를 기울여 관찰합니다. 환자는 의료진을 믿고 의료진은 환자를 돌봅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말이죠.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하며 가장 편하고 좋은 말을 나눕니다. 여기가 하느님 나라?
사실 환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병원에 오지는 않습니다. 병원의 진료실, 검사실, 수술실은 치유라는 하나의 희망을 품고 오는 것이지 그곳이 즐겁고 마음에 들어 방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료진들도 아픈 사람, 병든 사람, 치유가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돌봐야 할 사람들을 매일 만나야 하기에 결코 기쁘고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이것입니다. 모두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고자 하고 그래서 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밀밭을 지나가다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배고파서!(마태 12,1)’ 실제로 육신의 배고픔도 있었겠지만 오늘 복음의 전말을 묵상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자비’에 몹시 굶주리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엄격한 율법 조항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 단죄와 심판만 많아졌으니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자애(慈愛)를 배고파했을 것입니다.
병원은 가능한 가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그곳은 치유와 회복을 위한 돌봄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이유와 장소는 안 좋더라도, 잠시지만 기도의 은총과 더불어 인간적인 사랑과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영과 육으로 상처입고 병들어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돌봐줄 이들과 장소가 마땅하지가 않습니다. 교회는 어느 순간부터 ‘법원’이나 ‘은총 마트’, ‘편리한 문화센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교회를 ‘야전 병원, 응급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아파하고 상처 입은 이들을 살려내는 병원-응급실이 되어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고 그분의 가르침으로 살려내야 할 교회의 본질적인 소명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미사 때 보면 겉으로는 재물과 학력과 출신, 성격과 품성이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그들의 옷을 벗겨 놓고 보면 어느 부분에서 모두 굶주리고 목말라하며 아파하고 지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8)”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 속에는 하느님과 사람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이 있는 곳, 하느님과 사람이 함께 있는 곳, 그곳이 교회이고 천국입니다. 의사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돌봄을 받고 있는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이 교회와 천국의 주인입니다. 그곳에서 모든 이들은 자기 속옷은 벗고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과 존엄함을 위한 헌신과 사랑의 돌봄을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이루고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시편 2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