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성구씨 4세 구예 묘역(당진 송악읍 가교리)
능성구씨 4세는 7형제(구의,구원개,구백전,구성연,구이,
구천룡,구예)로 구예(具藝)는 일곱째 막내이며,구예 계열은
5세손 구영검, 6세손 구위 외 3인, 7세손 구홍 외 9인으로 이어진다
맏이 구홍은 좌정승파, 둘째 아우 구성량은 판안동파 파조이다.
능성구씨 문중 사찰인 신암사(4세 구예 묘역 입구)
구예(具藝)는 고려 충숙왕 때(1317년) 장원급제하여 판전의시사에
이르고 면천(당진)을 식읍으로 하사받았으며, 면성(沔城)부원군에 봉해졌다.
당진 가교리에 정착하여 입향조가 되었으며, 구예가 사망하자 부인 신씨가
미리 정해 둔 송악읍 가교리 신암산 아래에 묘소를 조성하였다.
당진 신암사(申庵寺) 극락전
부인 아주신씨는 묘소옆에 수호사찰인 신암사를 창건하고
인도에서 금동불상을 들여와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신암사 극락전의 능성구씨 위패 봉안
구예와 아주신씨 등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국내유일의 문중사찰이다.
신암사 극락전에는 보물 제987호인 금동여래좌상도 봉안되어 있다.
보물 제987호인 당진 신암사 금동여래좌상
구예는 3세인 문하좌정승 면성부원군 구연(具珚)의 일곱째 아들이다.
구예는 1317년(충숙왕 17) 구재삭시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관직은
중대광판전의시사(重大匡判典儀寺事)에 이르렀으며, 면주(면천)를 식읍으로
하사받고 면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이때부터 가교리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신암사 7층석탑
전하는바에 의하면 구예(具藝)가 원나라 사신으로 가는 길에
노부부를 구해주었더니 이들이 보답으로 묘자리를 잡아주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청년이 공금을 횡령한 죄로 처벌받게 되는 것을 보고 사비를 들여
구해주었더니 귀국시에 그 청년이 따라와서,
구예의 재실인 영광재(永光齋)
9대 정승이 나올 천혈(天穴), 자손이 화목하게 살 지혈(地穴),
부귀를 하지만 자손간에 암투가 있을 인혈(人穴)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하라고 하여. 구예는 자손이 화목할 지혈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구예의 후손인 엘지(LG) 그룹의 구씨들은
서로 재산다툼을 하지 않고 화목하다고 한다.
영광재와 관리동
구예(具藝)의 묘역과 5세. 6세 망제단비(아래)
구예(具藝)의 묘(아래)와 부인 아주신씨 묘(위)
구예(具藝)의 묘
고려 중대광판전의사(高麗 重大匡判典儀事)
면승부원군(沔城府院君) 능성구공 휘예지묘(綾城具公 諱藝之墓)
배 아주신씨 부후(配 鵝洲申氏 祔後)
아주신씨의 묘
묘소 뒤에서(안산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