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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5일에 6월 25일 이후 한달 간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은 친강(秦剛) 외교부장이 마침내 면직되고,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당 중앙 외사 판공식 주임 겸 정치국원이 다시 외교부장에 임명되었다. 공식적으로 지난 7월 25일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가 제4차 상무위원회를 개최해 친강 외교부장 경질을 결의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동안 홍콩과 대만 등 서방 매체들이 건강 이상설, 불륜설, 파별 투쟁설, 간첩설 등을 제기하며 친강 외교부장의 부재를 추측하였으나, 지난 7월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 왕이 중국 공산당 당 중앙 외사 판공식 주임 겸 정치국원이 참가함으로써 친강 외교부장의 해직은 중국 전문가들 간에 기정 사실화(fait accompli)되었다.
현재까지 중국 정부가 친강 외교부장을 왜 해임하였으며, 언제까지 왕이 중국 공산당 당 중앙 외사 판공식 주임 겸 정치국원이 외교부장 임무를 수행할런지에 대해 구체적 설명이 없어 각종 전망들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이에 저자는 그동안 중국을 살펴본 경험을 바탕과 최근 홍콩과 중국 내 매체들을 중심으로 친강 외교부장의 면직을 1) 중국 지도부의 이념 논쟁의 희생양이었고, 2)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실권을 장악하기 이전에 즈음하여 2013년 보시라이(薄熙來) 충칭 당서기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도전이 내환(內患)었다면, 이번 친강 외교부장 해임은 외환(外患) 사례로 보며, 3) 시 주석 3연임 리더십을 구사할 과도기에 나타난 측근인사 문제로서 4) 내부 결속을 위해 당군(黨軍)의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재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여기에는 지난 7월 19일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SCMP)』의 핸리 키신저 방중이 리상푸 국방장관에 대한 미국 제재 해제가 주요 이슈였다는 기사, 7월 20일 중국의 1972년 ‘키신저 스타일 해법’ 필요성 강조 기사, 지난 7월 21일 『중국 차이나 데일리(China Daily)』의 시진핑 주석이 키신저 박사를 접견하면서 미중 간 새로운 과도기(new crossroad)를 언급한 기사, 지난 7월 23일 SCMP가 중국군 고위급 간부들에 대한 7월 20일부터 21일 간 베이징에서의 대대적인 반부패운동 회의 개최를 보도한 기사 등이 핵심 근거이며 그 외는 저자의 개인적 반향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평가를 한다.
우선 시 주석 지도부는 여전히 이념 논쟁 중이며 이 과정에서의 희생양으로 친강 외교부장을 제거하였다. 이에 저자는 중국에 공산주의 사상이 접목되면서 친미, 친러, 중국 독자형의 3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고 평가하였으며,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신중국을 건국하면서 중국 독자형으로 정리되었다고 본다.
글로벌화 시대에 편승한 중국을 2012년에 이어받은 시 주석은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사상’을 중국 공산당 강령으로 강조하며 친서방과 독자형 성향 간 균형적 접근을 국가발전 이념으로 하고 이를 중국 민족 부응과 중국꿈으로 하여 미국에 도전하였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12월 주영국 중국대사를 지내고 미국과의 관계와 전혀 근무 경험이 없는 친강을 주미국 중국 대사에서 외교부장으로 임명받은 사례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 친서방적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며 이는 홍콩 봉황방송 유명 앵커와의 불륜설, 지난해 10월 미 국방부의 중국 미사일 관련 정보판단서에서의 민감한 정보가 포함된 것 등에 따른 미 정보당국과의 협력설 등으로 확산되었을 것이다.
특히 2012년 집권한 시 주석은 미국에 대한 강력한 도전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표시하면서 이전 지도자들과 차별화하면서 집단지도체제 후유증과 미국 주도의 글로벌 추세에 따른 중국 정체성에 대한 보호막을 세우는 성향을 보였으며, 그 보호막에 친강 외교부장이 걸림돌로 나타난 것이었다.
친서방은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과 내전을 거치면서 미국이 중국에 뿌리를 내린 후유증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이에 의지한 국민당은 부패하여 결국 내전에서 패배한 것을 시 주석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친러시아는 1949년 신중국 건설 이후 구소련과의 이념 논쟁과 국경분쟁을 거치면서 잠적하였고 1972년 미국과의 화해 모드에 들어가면서 친미국/일본 인맥들이 재활용되는 국면을 보였다. 이는 덩샤오핑(鄧小平)의 4대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친서방적 개혁파가 득세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1989년 뎬안먼(天安門) 사건으로 미국 등 유럽연합으로부터 무기 수출금지 제재를 받으면서 친러시아 성향으로 전환되는 모습도 보였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하 시 주석이 그동안 글로벌화 추세에 탄 미중 관계에서의 친서방적 외교정책에서 『늑대 전사 외교(戰狼外交: Wolf Warrior Diplomat)』를 보인 중국 대외정책 수장을 여러 가지 이유로 제거한 것으로 평가한다. 대만 일부 언론들은 친러시아 성향 인사들이 친강 외교부장의 친서방적 행보와 성향을 문제로 제기하여 시 주석이 해임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다음으로 이번 친강 외교부장의 경질은 외환(外患)이었다. 2012년 11월 3일 제18차 당대회에서의 시 주석의 당 서기와 당 중앙군사위원회(CMC) 주석을 장악하기 이전 2012년에 보시라이는 스스로 정치국원에서 상무위원을 자임하고 창홍(唱紅) 운동의 충칭모델(Chongqing model)을 주창하면서 정권장악 의도를 과시하였고, 아버지 바이보(薄一波)가 창설한 제14 집단군을 마치 개인 군사집단으로 간주하며, 당 중앙군사위원회 류원(劉源) 상장과 저우융강(周永康) 제17차 정법위원회 서기와 밀접한 관계를 과시하였으며, 이는 시진핑 주석의 실권 장악에 대한 내환(內患)이었다.
시 주석은 친강 주미 중국 대사를 지난해 10월 제20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 선출, 12월 제13차 전인대 제38차 상무위원회에서 외교부장에 임명, 지난 3월에 국무위원 선출 등 초고속 승진시켰으나, 지난해 12월 외교부장 임명 이후 불과 7개월만의 낙마시킴으로써 지금까지의 『늑대 전사 외교』 기조를 변화시킬 것을 창홍(唱紅) 운동의 충칭모델(Chongqing model)을 주창한 보시라이 숙청과 유사한 사례로 만들며 향후 시 주석의 3연임에 따른 외교정책의 변화를 암시하였다.
이에 대만 일부 언론들은 시 주석 주변에서 주미 중국 대사 시절 무례한 ‘늑대 외교(Wolf Warrior Diplomat: 戰狼外交)’ 문제를 제기하면서 향후 외교정책에서의 걸림돌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중국 외교정책은 당정 일체화로 대부분 시진핑 주석을 보좌하는 왕이 중국 공산당 당 중앙 외사 판공식 주임 겸 정치국원이 큰 밑그림을 정립하면서 이를 외교부장이 집행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시주석의 측근으로 알려진 외교정책 집행 수장인 친강 외교부장이 해임 설명없이 경질된 것은 향후 시 주석의 중국 외교정책 집행에 있어 큰 변화를 의미하지만 한편,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향후 시 주석의 외교정책에 손상을 주는 외환이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이번 친강 외교부장 해임은 시진핑 주석의 3연임과 미중 간 해빙 분위기 도래에 따른 과도기(crossroad)에서의 측근 인사 변화였다. 우선 시 주석의 측근으로 알려진 친강 외교부장의 7개월만에 파격적 낙마는 중국 공산당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 주석직을 10년 2번 연임에서 3연임으로의 과도기에서 발생한 시 주석의 측근 인사 혼란이었다.
이는 지난 6월 중순 5년만에 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7월 초 지넷 옐런 재무장관, 7월 중순 핸리 키신저 박사, 7월 말 지나 러몬드 상무장관 방중으로 미중 간 해빙 분위기가 나타나는 가운데 향후 미중 간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하에서 걸림돌 제거 또는 측근인사에 대한 변화로 볼 수 있었다.
특히 지난해 12월 시 주석이 지난해 12월 56세의 파격적인 나이인 친강 주미 중국대사를 외교부장으로 지명한 시기는 매우 혼란스런 과도기였으며, 이 과정에서 시 주석 측근 인물로 알려진 친강의 외교부장 임명에 측근 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었으며, 이는 지난 3월 양회에서 최연소 국무위원으로 임명되는 등의 사례에서 회자되었다.
하지만 이후 친강 외교부장이 외교부장 첫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헌법서를 윤독하는 등의 매우 경직된 행보를 보이고, 이후 불륜설과 시 주석 부인에 대한 뇌물설 등의 각종 소문 등이 뒤따라 나타면서 시 주석 3연임에 즈음하여 미중 간 해빙이 리상푸(李尙福) 국방부장에 대한 미국의 제재 해제 거부로 국방장관 회담이 결열되는 등의 과도기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친강 외교부장을 정리한 것으로 본다.
이번 친강 외교부장의 낙마로 형후 시 주석의 주요 당 지도부(指導部) 또는 영도(領導) 인사에 대한 인사검증을 쇄신할 것으로 본다. 저자는 향후 시 주석이 향후 친강 외교부장과 같은 파격적 측근 인사보다 왕이 중국 공산당 당 중앙 외사 판공식 주임 겸 정치국원과 같이 경륜과 안정성에 무게를 둔 측근 인사로 변화시킬 것으로 본다.
결국 이러한 친강 외교부장의 낙마는 이념 논쟁, 시 주석의 3연임 집권에 즈음한 과도기 도래 그리고 시 주석 측근 인사 문제 등으로 확산되면서 시 주석은 중국군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충성 강화로 국내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하였다.
지난 7월 23일 홍콩 『SCMP』는 “시 주석이 이례적으로 7월 20일에서 21일 간 베이징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을 비롯한 각군 사령관 등 군 주요 고위층 장성과 핵심 간부들에 대한 반부패 운동의 중요성과 당군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약속하는 회의를 이틀 간 개최하였다”고 보도한 것이 대표적 사례였다.
아직 중국 매체들로부터의 공개된 기사와 자료가 없으나, 『SCMP』는 8월 1일 중국군 창군 96주년 기념일과 친강 외교부장 경질이 과거 1971년 린빠오(林彪) 사건, 2012년 보시라이(博熙來) 충칭성 당서기 사건과 같이 국내 정치에 의해 당군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특히 이번 『SCMP』는 이번 대대적인 반부패 운동 회의가 2013년, 2018년에 이어 3번째로서 매우 이례적이고 보도하였다.
저자는 이를 2012년 보시라이 당서기 측근 왕리쥔의 청두(城都) 미국 총영사관으로의 기밀문건을 들고 망명하려다 실패한 사건과 이에 위기에 몰린 보시라이 당서기가 아버지 보이보(博一波) 당 기율위원회 서기가 창설한 청두군구(城都軍區) 소속의 제14 집단군을 방문하여 중국군 군부와 개인적 관계를 과시하고 심지어 후진다오 주석 측근 조우융캉(周永康)과 일부 군부 인사와 군부 쿠테타까지 시도하였던 사례를 교훈 삼은 사전 중국군에 대한 공산당 충성심 강화 작업이라고 본다.
실제 시 주석은 보시라이 사건 이후 보시라이를 조우융캉, 링지화(令計劃), 쉬카이호우(徐才厚) 상장을 신4인방으로 지목하여 모두 숙청하였으며, 군부 궈보슝(郭伯雄), 쉬카이호우, 팡펑휘(房峰輝), 장양(張陽) 상장 모두를 부패와 뇌물 수수로 모두 숙청해 정치와 군부 기강을 장악하였다.
또한, 시 주석은 2015년 11월 공개된 시진핑 주석의 『국방 및 군대 개혁(關爲國防與軍隊改革)』에 따라 중국군에 대한 대대적 조직을 개편하였다. 2016년 2월 1일부로 그동안 중국군의 부패 주요 원인 군구(軍區) 체계를 전구(戰區) 체계로 개편하였고, 남중국해를 담당하는 남부 전구 사령관에는 중국군 최초로 비육군(非陸軍)인 해군 상장을 임명하였으며, 특히 개편안에서 2015년 1월 25일 시진핑 주석이 신년 첫 방문부대였던 보시라이 충칭 당서기와 관계가 있었던 제14 집단군을 해제하였다. 현재 당 중앙군사위원회 중앙위원 구성도 정치장교 병과 상장 2명을 배치하여 군부의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을 관리하고 있다.
지난 7월 23일 『SCMP』는 시 주석이 지난 2일 간 군부의 반부패운동에서 2014년 시 주석이 방문한 ‘구텐(古田) 정신’을 상기시켰다면서 과거 마오쩌둥이 정치장교 제도를 만든 곳에서 결의 한 중국군의 당에 대한 충성 맹세를 군부가 잊지 말 것을 암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보도하였다.
특히 지난 7월 22일 『해방군보(PLA Daily)』 보도를 근거로 지난 7월 21일 마지막 세션에는 지난해에 파격적으로 중국군 동부 전구 사령관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발탁된 허웨이둥(何衛東) 상장이 “중국군의 당에 대한 충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군이 중국 공산당의 발전과 혁신에 기여해야 한다”고 훈시하였다면서, 향후 당 기율위원회와 별도의 ‘특별 기율팀’이 중국군에 대한 권력 남용, 뇌물 수수 등의 부패행위에 대한 대대적인 ‘사전예방 감찰활동(early-warning system to halt corruption risks)’을 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동안 미중 간 악화된 경쟁 구도에서 중국군은 미국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으며 이는 J-20형 제5세대 스텔스 전투기, Type 003형 민대머리형 항모 진수, 중러 연합군사훈련 강화 등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이런 상황하에 중국 정부가 지난 7월 중순 핸리 키신저 박사의 방중에서 양국 간 관계가 과거 1972년의 ‘키신저 스타일 해법’을 재현하려 하고, 양국 관계를 새로운 과도기로 발전시키려는 과도기에 있다고 보며, 시 주석이 이번 친강 외교부장 낙마 사건을 계기로 중국군의 미군에 대한 정체성을 재강화하고 일부 국민군(Nation-Army) 주장을 와화시키고 당군(Party Army)을 강화하여 중국 공산당에 대한 충성 경쟁으로 전환하려는 의도를 보였다고 본다.
지난 7월 19일 『SCMP』가 이례적으로 “리상푸 국방장관이 키신저 박사와 대담을 하였다면서 자신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해제하지 않은 것은 상호 공존과 균형적 미중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고 보도한 것이 실질적 증거였다. 이는 중국은 미중 간 해빙에 대비하여 그동안 대만해협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미국의 중국군에 대한 제재 등을 교호로 맞바꾸면서 중국군의 정체성을 우려하면서 이번 친강 외교부장 낙마를 계기로 다시 반부패 운동을 전개하면서 시 주석의 중국군 통제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본다.
궁극적으로 이번 친강 외교부장 낙마는 단순한 개인적 문제에서 지도부 내 이념 논쟁, 측근 인사 문제, 시 주석의 3연임을 추진하는 과도기에서의 외환이자, 미중 해빙 분위기에 즈음한 중국군의 정체성을 재정비하는 등의 복합적 후유증을 유발시킨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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