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저서《성령세례》에서 고린도교회가 은사 문제로 혼란해진 것을 핑계로, 현대 교회가 성령의 은사 문제를 회피하고 두려워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 책망한다. 즉, 현대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가 맹렬히 발현되어 고린도교회처럼 신령한 걱정을 할 수 있는 교회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를 반문한다.
현대 교회는 은사의 혼란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은사가 나타나지 않음을 염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고린도교회의 혼란은 마치 어린아이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혼란, 성령의 에너지가 넘치는 역동성에서 오는 혼란이라고 했다. 그러나 많은 현대 교회가 성령의 이런 역동성 없이 마치 공동묘지의 적막함과 같은 고요가 지배하고 있다고 마틴 로이드 존스는 탄식한다. 이렇게 ‘조심, 조심’, ‘경건, 경건’이 지나쳐서 ‘죽은 정통’의 신앙이 되는 것을 극히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방언의 은사를 쉬쉬하며 조심만 할 것이 아니라 성경의 지침대로 방언하고 그 영적 자양분을 섭취하여 “자기의 덕을 세우는”(고전 14:4) 유익을 누려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죽은 예수님을 기념하는(고전 11:26)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교회는 ‘죽은 예수님 추모 동호회’가 아니다. 교회는 지금 살아 계신 예수님, 지금 나타나시는 성령님(예수의 영)을 체험하는 공동체이다(행 16:6,7 참조).
바울은 자신의 말과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言)로 하는 것이 아닌 다만 ‘성령의 나타남’으로 전했음을(고전 2:4) 역설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셨다고 말한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고린도전서 12장 10절에서는 ‘성령의 나타남’ 가운데 하나가 방언의 은사임을 지적한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방언은 우리가 홀대하거나 경계심을 발동할 은사가 아니라 바로 성령의 나타남의 확증이다.
오늘 우리가 성령의 나타남을 체험하기를 원하는가? 성령충만을 체험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방언을 사모하고(고전 14:5) 방언을 하라(고전 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