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때가 차면 오래전 요즘처럼 더운 토요일 오전 미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마당에 주보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깨끗한 마당에서 바람에 굴러다니는 주보가 눈에 뜨이지 않을 수 없었다. 주웠는데 교구 알림난 쪽이었다. 그중 관상기도에 대한 세미나가 눈에 들어왔고, 뭔가에 홀린 듯이 바로 전화해서 신청했다. 그 세미나 이후 나의 기도와 영성 생활에 완전히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그 당시 기도는 늘 메마르고, 성경은 관심 없는 신문 기사 내용만큼이나 무미건조했다. 그런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거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이십 년이나 지난 그날 그 주보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누군가 흘리고 간 것이겠지만 나에는 하늘에서 주님의 천사가 내려와서 내 발 앞에 두고 간 거다. 때가 차니 주님이 나를 부르시며 말씀하신 거다. 천사가 내게 직접 말한들 내가 그걸 알아들을 리 없고 내 앞에 나타난다면 놀라 기절해 버릴 테니 그런 식으로 나에게 전해주신 거다.
신앙은 물려받고 전해 받고 전해주는 거다. 내가 열심히 찾고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연한 만남이나 어떤 사건을 통해서 말씀을 건네오시는 경우가 훨씬 많은 거 같다. 어떤 선배 형제가 하느님은 장난꾸러기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열심히 찾는 곳에는 안 계시고, 엉뚱한 곳,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 계시니 말이다. 오늘 기념하는 바르톨로메오 또는 나타나엘 사도는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율법을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이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 보통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율법을 연구해서 이런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 필립보가 전한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무시했다. 율법에 따르면 나자렛에서는 구세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예수님은 나자렛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아버지 요셉 성인이 예수님 어렸을 때 예수님을 죽이려는 헤로데 대왕을 피해 이집트로 이민 갔다가 그가 죽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는데,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서 다스린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서 나자렛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마태 2,22-23). 예수님 말씀대로 나타나엘은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 거짓이 없는 사람이다(요한 1,47).
하느님을 찾는 사람, 하느님이 부르신 사람은 그분 손안에 있다.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거 같지만 그분은 언제나 일하신다. 때가 차면 천사를 보내 말씀을 전하신다. 어쩌면 늘 말씀하셨는데 아직 때가 되지 않아 그 말씀을 못 알아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의 수호천사는 친구로, 땅에 떨어진 주보로, 만남과 이별, 크고 작은 사건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 때가 차기를 기다리고, 그때까지 인내하고 견딤이 믿음인 거 같다. 그러는 사이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깊어지고, 순수해진다. 누가 뭐래도, 세상은 알아듣지 못해도, 신앙은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목자는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먹을 것이 넘쳐나는 푸른 초원으로 데려간다.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요한 15,3-4).
예수님,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습니다(요한 15,15). 너무 큰 사랑이라서 아직은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때가 차고 때가 되면 주님 목소리를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가 직접 제게 나타나시지 않아도, 천사가 말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이 이콘 앞에서 바치는 기도가 저를 아드님께로 인도한다고 믿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