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과 단식투쟁,
🙏🎋幸福한 삶🎋🎎🎋梁南石印🎋🙏
삭 : 삭(削)풍 같은 세상 앞에 분노를 밀어내고
발 : 발(髮)가벗겨진 머리로 양심을 해부한다.
과 : 과(果)욕이 농익어 過信(과신)하는 자가 있다.
단 : 단(斷)칼에 지른 결심으로 밥숟갈을 내려놓는다.
식 : 식(食)음을 전폐하고 몸으로 세상에 절규한다.
투 : 투(鬪)쟁은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 되었다.
쟁 : 쟁(爭)의의 끝에는 눈물 젖은 흔적만 남았구나.
머리카락은 잘려 나가 민둥산이 되었지만
억울함까지 잘려 나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돈 없는 죄로, 거리로 내몰리고,
어떤 이는 권력의 그늘 앞에 죄를 지운다.
법의 잣대는 저울의 추와 바늘로 잰다고 했건만
그 저울추 끝엔 늘 돈의 무게가 먼저 올라앉는다.
삭발은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세상 앞에 던지는 행위다.
더는 들어주지 않는 사회를 향해
몸으로 쓰는 침묵의 상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비리의 그림자가 드리우면
반성보다 먼저 머리부터 민다.
참회의 삭발과 전혀 무관한
동정을 구걸하는 쇼 걸의 가까운 웃픈 현실.
지금 대한민국의 거리에는
진짜 절망과 가짜의 결기가 뒤엉켜
절박함과 계산된 연출이 뒤섞인 시대,
삭발한 머리 위로 비치는 것은
한 인간의 결연함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얄팍한 꼼수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는 굶어야만 들리는 목소리들이 있다.
누군가는 해고 통지서를 붙든 채
고공 철골 위에서 단식을 이어간다.
평생 일터였던 매장은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되었고,
기업은 알짜 자산만 팔아넘긴 뒤
노동자들의 삶을 폐기물처럼 남겨두고 떠난다.
또 어딘가에서 번지르르한 귀족 노동자는
상상 불가한 천문학적인 성과금을 외치며
더 큰 몫을 내놓으라 일사불란 대동단결로 외친다.
누구는 생존을 위한 단식이나 한쪽은 탐욕의 투쟁이
한 거리에서 같은 깃발처럼 펄럭이는 기이한 시대다.
정치권 역시 다르지 않다.
국민은 책임을 묻는데
정치인은 굶는 모습을 앞세워
진실보다 연민을 얻으려 한다.
언제부턴가 단식은
신념보다 가리고 지키는 전략이 되었고
양심보다 카메라를 먼저 의식하게 되었다.
셔터 불빛 속에 참회는 분장으로 위장했다.
그러나 끝내 잊지 말아야 한다.
진짜 단식은 픽션도 쇼도 아니다.
그것은 벼랑 끝에 선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마지막 절규로서 질문이다.
끝내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회는
가장 약한 사람부터 무너지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