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정리하던 자료가 일찌감치 끝을 보이고 날씨도 으슬으슬한 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 했습니다. 오랜만에 일찍 귀가한 제게 핀잔아닌 핀잔으로 어머니의 "어서옵쇼"라는 말씀이 있었지만, 뒤이은 인삼차에 몸도 마음도 봄 눈 녹듯 아스라질 듯 편안함이 찾아오더군요. 내 마음 내 몸 쉴 곳, 꽃피고 새 울지는 않더라도 자그마한 내 집 뿐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오랜만에 뜨끈뜨끈한 안방에 누워서는 텔레비전을 켰더니 마침 '환경스페셜'이 하고 있습니다. 유인촌 형님께서 진행하시던 '역사스페셜'이 끝난 다음에는 '스페셜' 시리즈도 잘 보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보는 텔레비전에서 절 반긴 것은 충북 청원 어딘가의 두꺼비들이었습니다. 뭐 새삼스럽게 개발논리에 묻혀 버리는 야생동물들 이야기를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무의미한 별미소개와 보기싫게 입을 쩌억 벌리는 아저씨 아줌마들의 음식먹는 모습을 보는 것 보다는 낫겠다 싶어 채널을 고정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만 생긴다면 이 복잡한 대구도심을 벗어나(서울에 계신 분들께는 우습겠지만..^ㅡ^;) 살고 싶다는 생각을 꿈처럼 간직하고 있는 저에겐 이런 것들이 정말 감질맛 나지 않을 수 없는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간의 난개발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어 오르더군요.
남녀 두명의 나레이터는 차분하게 하지만 인상적으로 두꺼비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진 초라한 방죽, 아스팔트 길에서 수없이 많은 까만 점으로 짓눌려 버린 두꺼비들의 시체들, 두꺼비야 사랑해 외치며 쇼맨쉽으로 무장된 두꺼비 축제 등등은 인간의 무절제한 난개발이 과연 어디까지 치달을지 고개젓도록 했습니다.
수많은 미래시대를 주제로 한 영화에서 인간은 지구 파괴의 주체로 낙인 찍혀 있습니다. 심지어 숱한 작품에서는 다시 한번 지구의 환경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질병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설정해놓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짤막한 가쉽거리에 불과한 영화와 소설들이 지나가고 나면 여전한 돈의 위력 앞에 인간들은 두 눈이 충혈된 채 주변의 모든 것을 짓밟게 되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것은 과연 인간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희생된 저 엄청난 생명체들에게 인간은 과연 '무자비한 재난' 외의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야기가 너무 외곬수로 파고드는 것 같군요.
생명에 대한 존중, 근원적인 상호공존 따위의 거창한 목적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냉정하게 이야기 한다면 계속해서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환경에 대해 많은 배려를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잘 살고 있는 두꺼비들을 깡그리 쓸어낸 후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닦는다면 뒤늦게 환경보호를 외칠 때는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여 멸종된 두꺼비의 종을 복원해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전화선을 깔기 위해 도로를 파뒤집어 놓고 일년뒤에 하수도 공사한다고 다시 그 자리를 파뒤집는 따위의 도로공사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사실을, 국가는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명을 죽이고, 돈을 버리고, 시간을 낭비하며, 결국은 우리의 힘까지 쏟아부어야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치밀한 안배 없이 세상을 꾸리다가는 너무나도 큰 죄과를 받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