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大 입시 석고 데생(Dessin : French)의 '단골 모델'
서양 미술사를 잘 몰라도
이 남자의 이름은 알 것이다.
곱슬머리에 계란형 얼굴을 가진 전형적 '조각 미남'인 이 남자는
흔히 '줄리앙(Juliano)'이라고 불린다. 프랑스 이름이지만,
사실 그는 이탈리아인이다.
16세기 초 잠시 피렌체의
군주가 되었다가 30대에 요절한 '줄리아노(Juliano) 데 메디치'가 그의 진짜 이름이다. 1520년 줄리아노의 형이자 당시 교황이던
레오
10세가 요절한 동생과 역시 20대에 급사한 조카 로렌초의 무덤 건축을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654)에게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산 로렌초 성당 내부의
메디치 가문 예배당에 건축과
조각을 결합한 웅장한 무덤을 기획했다.
그중 줄리아노의 석관 위에는 각각 밤과 낮을 상징하는 여성과 남성의 누드상이 나른한 듯 비스듬히 누워 있고, 줄리아노는 갑옷을 입은 채 그 위의 권좌에 자연스레 앉아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밤과 낮이
영원히 교차하는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지만, 구원받은 영혼이 죽음 뒤에 도달하는 세계는 이처럼 고요하고 평온할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는 '줄리아노(Juliano)'를 '줄리앙'이라고 부르는 걸까.
줄리앙은 비너스, 아그리파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20세기
초반부터 최근까지 미대 입시의 필수 관문이던 석고 데생의 모델이었다.
이처럼 고전 조각의 석고상을 모사하는 건 19세기 말까지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었고, 따라서 석고 두상 또한 프랑스에서 주로 제작했다.
이것이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파된 이래 큰 변화 없이 유지됐던 것.
그러니 이미 500년 전에 세상을 뜬 남의 나라 사람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줄리앙'을
'줄리아노(Juliano)'라고
불러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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