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이 기독교의 문제를 거론할 때 항상 떠들어 대는 레파토리가 있다.
바로 기복신앙과 유교의 영향이다. 그들은 기독교가 비난받을 만한 문제가 발생하면, 기독교 내부에서 원인을 찾기보다 외부에서 찾는다.
교회에서 갖가지 명목으로 헌금을 강요하고 부흥회를 열어서 굿판을 벌여 돈을 끌어 모으는 작태를 두고 이를 걱정하는 기독교인들은 그 원인을 하나같이 우리 고유의 무속신앙과 샤머니즘, 기복신앙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가 믿는 야훼신은 바로 유대 민족의 종족신이자 유대인들만의 기복적 종교가 아니었던가. (안티바이블의 "▶샤머니즘 으로서의 여호와", "▶유대인의 토템신으로서의 여호와" 참조)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과 시오니즘 등은 모두 야훼신에게 복을 구하는 것이다. 예수도 생전에 무당짓거리를 자주해왔다.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러운 악령이 어떤 사람 안에 들어 있다가 거기서 나오면 물 없는 광야에서 쉼터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찾지 못하면 '전에 있던 집으로 되돌아 가야지' 하면서 돌아 간다. 그리고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흉악한 악령 일곱을 데리고 들어 가 자리잡고 살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형편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 (누가11:24~26)
또한 김용옥씨는 예수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침을 탁탁 뱉아 흙을 이겨서 소경 눈에 발러주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하는 예수(요한 9:6∼7)의 모습은 바로 이 무의(巫醫)의 모습이다"
원래 기복신앙은 자연스러운 종교 현상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걱정하고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듯이, 기복신앙 자체는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목사들이 신자들을 끌어모으고 헌금을 강요하며, 교세 확장을 하는 위한 가장 좋은 수단으로 기복신앙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기복신앙은 기독교를 퍼뜨리고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장본인이다. 기복신앙이야말로 우리나라 기독교의 성공 요인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고유의 기복신앙, 무속신앙이 마치 우리나라 무속신앙에서 온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처럼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예는 또 있다. 바로 유교의 영향인데, 기독교인들은 대형교회의 세습과 목사들의 카리스마적 권위 같은 것들을 모두 유교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교회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목사나 장로 ‘직분’을 ‘벼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목사나 장로는 자신들의 직책을 ‘자리’가 아닌 ‘기능’으로 생각한다. ...."(미국 애틀랜타 연합교회 정인수(丁仁秀·47) 담임목사)
"한국교회의 근본주의는 유교의 체면주의와 가족주의,샤머니즘의 기복신앙,통속불교의 내세사상과 혼합되면서 신도 사이에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신을 부리려는 신앙행태를 낳고 있다”(기독교사회윤리학자 강원돈)
"체면과 권위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에 물들어 한국교회 목회자들이나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정신인 이 섬김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중표 한신교회 목사)
이들은 하나같이 기독교에서 터져나오는 문제점의 원인을 유교의 영향이라고 매도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이 왜 유교의 영향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유교에 과연 체면주의라는 것이 있을까? 목사의 권위주의를 왜 유교의 권위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일까? 기독교의 권위주의와 특유의 엄숙주의는 기독교의 본고장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심하다. 기독교인들은 원래 마치 도덕과 윤리가 기독교에서 유래한 것인 양 착각하고 있고 기독교에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이에 대해서는 버틀런드 러셀의 말을 들어보자.
"절대적 진리가 어떤 특정인의 설교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면, 그의 설교를 해설하는 전문가가 생기고, 이 전문가들은 그 진리에 대한 열쇠를 가지게 되므로 반드시 권력을 장약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특권계급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점에 있어서 다른 특권 계층보다 더 질이 나쁘다. 즉 그들의 임무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단 한 번으로 완벽하게 계시되어 버린 불변의 진리를 해설하는 일이며, 그래서 그들은 필연적으로 모든 지적·도덕적 진보의 저해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교회는 갈릴레오와 다윈을 반대하였고, 바로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프로이드를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레고리 교황은 어느 사교(司敎)에게 보내는 편지의 서두에서 '보고에 의하면, 귀하는 친구들에게 문법을 해설해 주고 있다니 얼굴이 붉어짐을 금할 수 없소'라고 썼다. 이 사교는 교황청으로부터 이 부정한 일에서 손을 떼도록 강요당하게 되었고, 라틴어의 사용은 르네상스기에야 비로소 부활하였다.
종교가 해로운 것은 지적으로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해롭다. 이것은 종교가 인간의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 도덕 규범을 가르치고 있음을 뜻한다. 수년 전에 독일에서는 폐위된 왕가(王家)들이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찬반의 국민투표가 있었는데, 그 때 독일 교회들은 그들에게서 사유재산을 몰수함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누구나 알다시피 교회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노예제도 폐지를 반대해 왔고, 오늘날 널리 선전된 약간의 예외를 가지고 경제적 정의를 위한 모든 운동을 반대하고 있다. 교황이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를 비난한 바도 있었다." (버틀런드 러셀)
종교 개혁가라는 칼뱅은 사람들이 춤을 추거나 교회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사형당할 만한 중죄로 보고 이러한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 세르베투스를 화형장으로 몬 장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