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초반, 갓 배운 기타는 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기타 코드가 적혀있는 가요책 한 권이면 밤새는 줄도 몰랐습니다.
어느 무덥던 여름날, 마당으로 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고물 선풍기 요란하게 탈탈 돌리며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연히 돼지 멱따는 소리는 서너 집 건너 담까지도 쉽게 넘나들었습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이웃집 처녀 방심이라도 흔들릴지...
슬슬 노래 부르기가 싫증이 날 무렵,
포르륵~ 비틀비틀 툭!
새 한 마리 제 방으로 날아들어 툭 떨어졌습니다.
다시 날아보려고 기를 쓰는데 자꾸만 한쪽으로 넘어져 날지를 못합니다.
설마... 내 노래가 이웃집 처녀의 방심을 흔드는 수준을 넘어 새의 방심까지...???
제가 새 보는 눈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 새가 십자매인 줄은 금방 알아보았죠.
한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한쪽 다리를 심하게 다친 데다가 한쪽 눈까지 다쳤더군요.
근데 어째 십자매가 제 방으로 날아들었을까요? 정말 제 노래가 자연의 미물들 방심을 흔들 수준은 분명 아닌데...
동물들은 다쳤을 때 자신을 구해줄 사람을 알아보는 재주가 있다던데, 이왕이면 손길 섬세한 옆집 처녀 방으로 날아들지 하필이면 손길 투박한 제 방으로 날아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입니다.
일단 다친 다리에 빨간 약을 바르고, 성냥개비를 잘게 잘라 부목으로 대고 붕대를 가늘게 잘라 묶어 주었습니다. 십자매는 기력이 쇠진했는지 아니면 짧은 순간 믿음이라도 생겼는지 별로 뻗대지도 않고 얌전히 제 치료를 다 받았습니다. 상처 입은 눈은 제 솜씨로 어찌할 수 없어 그냥 놔두었죠.
'이런 몸으로 뭘 먹기나 했을까...?'
이왕 선심 쓰는 것, 으깬 쌀을 물에 약간 적셔서 손바닥에 올리고 모이로 주어보았습니다.
십자매는 배가 많이 고팠던지 별 의심과 경계 없이 손바닥 위에 놓인 으깬 쌀을 콕콕 몇 번 쪼아 먹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손바닥을 콕콕 찌르는 새 부리의 감촉이 제 가슴에 이상한 동요를 일으키더군요.
뭐랄까... 측은함 같은 것, 지켜주고 싶은 느낌 같은 것이 제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부러워했는데, 그 세상도 꼭 자유롭지만은 않은가 보지...?"
한 손에 새를 감싸 쥐고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지친 새는 제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안 다친 한쪽 눈이 눈동자가 풀리면서 조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쉬고 싶은가보구나...'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새를 편히 누일만한 곳으로 책장이 낙점되었습니다.
낡은 수건을 몇 번 접어 납작하게 깔고 새를 눕히고는, 그 옆에 혹시 깨어나 찾을지도 모르는 약간의 모이와 물을 놓아두었죠. 새는 눕자마자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새의 곤한 잠을 방해할 수는 없잖아요.
그날 제가 잠들 때까지 새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간밤의 어지러운 꿈으로 새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습관처럼 기타를 집어 들다가 전날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아참~ 십자매!
책장을 살펴보니 십자매는 어제 그 자세 그대로 그때까지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들새가 아무리 아파도 이렇게 오래 자진 않을 텐데... 이상하네...
가까이 다가가 가만히 새를 한 손으로 잡아보았습니다. 미동도 없었습니다.
손에는 어제 십자매가 힘겹게 전해주던 약한 온기마저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모를 섬찟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빨간 약이 새에게는 혹시 독인가...?'
'으깬 쌀 큰 알갱이가 목에 걸렸나...?'
'낡은 책에서 나는 습한 곰팡이 냄새가 새에게 해로운가...?'
'미안하구나. 십자매야... 내 속을 보면 너도 알겠지. 나는 정말 널 지키고 싶었어...'
새는 여전히 아무 미동도 없었습니다.
모종삽을 들고 마당 가운데 있는 작은 정원 가에 새를 묻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십자매는 살 곳을 찾아 날아든 게 아니라, 제 죽을 줄을 알고 편히 죽을 곳을 찾아들었는지도 몰라...'
아니... 그런 생각으로라도 지켜주지 못한 제 마음을 위안받고 싶었던가 봅니다.
단 하루의 인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매는 늘 제 기억 속에 한자리를 잡고는 이렇게 노래 부릅니다.
"선한 인연 악한 인연 가리지 마라~ 모름지기 오면 받고 가면 보낼 일이야..."
첫댓글 누구의 노래였던가요 ? "작은새"라는 노래...
김정호 아니면 어니언스가 부른것 같고...
그 노래가 연상되는 글이네요.
품으로 날아 들어온 그 십자매의 눈을 보면서
인간의 선한 감성이 몽실몽실 피어났을 것
같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_^)
요즘 원행으로 시간이 많다보니 예전에 즐겨듣던 노래를 다시 듣는데, 김정호와 어니언스 양희은 등등 예전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가 대부분입니다.
새를 길러보고 싶은 마음에 참새라도 잡아보려고, 마당에 쌀 조금 뿌려놓고 소쿠리에 고무줄 묶어 잡고 기다리다가 허탕진 날이 떠오릅니다.
@마음자리
"소년과 십자매"라는 소재로 조만간 저도
글 하나 올려보겠습니다.
십자매.잉꼬.참새.앵무새..등등 키워본
그 추억이 떠오르니...
한 편의 독립영화를 감상한 느낌입니다..
어린 소년과 새 한 마리
무심한듯 오고 가고, 생명을 다한 새 한마리와의 짧았던 인연 .
무어라 콕 찝어 말 할 수없는 연민의 시간을 노인이 되어가는 소년의 가슴에서 다시 꺼집어내는 계절 .
이 가을에 더 가슴 저리게 울려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 인연은 너무 예기치 않는 인연이라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마음자리 ^^*~ 가슴에서 그 여린 심장의 고동을 울리고 있으니 ~^^
새벽에 어디 갈 일이 있어서 다 읽지 못했습니다.
다녀와서 다 읽고 댓글 드리겠습니다 ㅎㅎ
네.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동화같은 글속에서 마음자리님의
따스한 마음 한 자리를 옅보게 됩니다 .
작은딸이 경비 아저씨에게 얻어 온
새를 몇년간 키우다 그 새가 죽은 뒤
마음이 한동안 불편했습니다 .
거기까지가 인연이었다 는 마음자리님과
비슷한 생각으로 벗어날 수 있었던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저에게 찾아온 새 인연은 단 하루의 인연이라 큰 아픔은 없었는데 몇년간 키우다 보낸 인연은 그 아픔이 많이 컸겠지요. 회자정리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긴 하지만 헤어짐에 따른 마음 정리는 늘 참 힘이 듭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린 마음이 마음자리님 글에서
보입니다.
아마도 그런 자상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고 여린 선한 심성으로
살고 계실것 같습니다.
착한 끝은 있다는데
탄탄한 인성이 마음자리님 하시는
일들에 축복으로 채워지면서
화평한 날들 되시겠구나 싶습니다.
어제 이웃 아우가 차려준 근사한 저녁식사
막걸리 몇 잔이 아침 유쾌하게 시작을 하게 합니다.
오늘도 호탕하게 웃고
멋스런 하루 살아야지요.
제가 마음이 여리지는 않은데 글에서 그렇게 느껴지나 봅니다. ㅎㅎ. 이번 주 일찍 푹 쉬고 다음 주는 또 열심히 달려볼 작정입니다.
새와의 만남
비극으로 끝나서 안타깝습니다
새를 살리겠다는 마음자리님의 마음씨가 훌륭합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마음은 아팠지만 비극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나는 모르는 이야기네요. 예전에 아마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소현이 생각이 납니다. 학교 갔다오다 나무에서 떨어진 새를 집에 옮겨와서
키우려고 했다가 하루만에 죽어서 땅에 묻고 하루종일 슬퍼하던 일이 있었지요.
세상과 슬프게 헤어진 그 십자매는 그래도 죽음을 슬퍼하는 이가 있으니 편안히 눈을 감았을 듯...
그럴 겁니다. 형이 군에 가있을 때 중동 집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니... 소현이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가슴 따뜻한 아이라 심정이 어땠을지 느껴집니다.
십자매가 어떤 인연으로
마음자리님의 방으로 날아들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네요.
한편의 동화 같습니다.
십자매가 한쪽 눈이 풀린다에서
마음이 조마조마 해 오더군요.
새에게도 영혼이 있었다면
마음자리님의 간호 잊지 않겠지요.
마음 아프게,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가을이 달아날 세라
작은 동산을 오르며, 단풍구경을 하고 왔습니다.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이라도 마음에
오래 남는 인연들이 있더라구요.
가을이 달아날 때가 다 되었네요.
여기는 어제 오늘 가을 보내는 비가
내리니 산책도 못 나가고...
아무래도 다음 주 여정은 가을 보내기
여정이 될듯 합니다.
다녀와서 소쿠리에 담긴 단풍 추억
있으면 나누겠습니다.
어떤 연유였는지는 모르지만 소년의 가슴으로 날아와
마지막 시간을 보낸 십자매.
그 애처로움으로 자기를 틈틈이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 십자매는 행복한 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편의 동화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건강하세요.
인연은 그 의미를 새겨보기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ㅎ
오니 받았고 가니 보냈는데...
제 기억은 보내질 못하고 아직
붙잡고 있네요.
내 품으로 날아든 새....읽으면서 나는 속으로 어니언스의 <작은 새> 노래를 불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 노래 참 좋아합니다.
지난 주 운행 중에 마침 어니언스 노래모음을 찾아 들었는데,
그래서 이 글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네요.^^
역쉬 이야기 꾼은 다릅니다.
단숨에 읽었어요.
부리로 모이를 쪼던 손바닥의
감촉은 잊혀지지 않는 인연으로
자리매김 하신거죠.
작은 새와도 인연이 이럴진데
글 벗의 인연으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수필방 글벗의 인연이 쌓이면
벗 그리움도 점점 짙어질 것 같습니다.
흔치않은 스토리입니다.
보통 어린 새를 잡아다 기른다거나 어디 논둑에서
상처받은 새를 보고 그냥 살려 주었다거나,, 이러는데
십자매가 야생으로도 많은지는 모르지만, 혹시 어느
처녀집에서 기르던 녀석은 아니었을까~~ ㅎㅎ
어릴적 무던히도 새를 잡아 키워보려 애쓰던
저는 무척 흥미있는 글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