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연중 제21주일) 영원한 생명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세상에 나타난 영원한 생명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영원한 건 없다. 예수님도 때가 차자 지상 삶을 마무리 하시고 당신이 본래 계시던 곳,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그분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덕분에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났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야 할 우리가 그 길을 따라 영원한 나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깊은 감동을 주는 음악을 들으면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만나 보고 싶어진다. 그런 작품을 만드는 그 마음을 알고 싶은 거다. 그 마음을 표현한 게 그 작품이겠지만 예술가나 작가 중에 자신이 만든 작품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작가는 그 마음과 자신이 느낀 것을 온전히 다 표현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 나타나신 영원한 생명인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온전히 다 드러내 보여주지 못하셨을 거다. 예수님이 베푸신 무조건적인 용서와 자비, 죽은 이까지 되살려내신 일도 영원한 생명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지 못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으로 영원한 생명을 전부 다 보여주셨다지만 우리는 거기서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놀라운 기적에 열광하는 그 수준일지 모른다. 그런 분이 이 나라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며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니는 그 사람들 같을 거다(요한 6,15; 22-24). 그들은 그 기적에서 영원한 생명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렇게 열심히 따라다녔던 거다. 한 마디로 세속적인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다 아셨다. 누가 믿고 누가 믿지 않는지, 심지어 누가 당신을 배반할 건지까지 처음부터 다 아셨다(요한 6,64). 지금은 우르르 따라다니고 목숨까지 내놓을 것처럼 열광하지만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 즉 십자가 길이 눈앞에 나타나면 대부분 당신을 버리고 떠나갈 사람들이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겼고 베드로는 그분을 모른다고 했다. 정말이지, 아버지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예수님께 갈 수 없고, 예수님을 구세주요, 이 땅에 나타난 영원한 생명이라고 고백할 수 없다(요한 6,65).
영원한 생명은 아주 오래 사는 게 아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새롭게 사는 인생도 아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한 17,3).”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믿는 이들은 이미 영원히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죽지 않는다. 물론 이 육체는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한 줌 흙으로 되돌아가지만 예수님을 믿고 바라며 사랑한 내 영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고 그러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3).” 예수님께 열광해서 따라온 사람들은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예수님 말씀이 듣기 거북하다고 모두 다 떠나갔다. 어디 이 말씀만 그런가? 원수 사랑은 어떤가?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라는 약속은 어디 믿을만한가? 이보다는 차라리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이 더 수월할지 모른다. 식인종이 되라는 뜻은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표현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작가가 다 표현하지 못하는 거처럼, 예수님도 그러셨을 거고, 우리도 다 알아들을 수 없다. 마음이 이 땅에 붙잡혀 있을수록 더 못 알아들을 거다. 반대로 하늘을 향할수록 그 거북함은 덜해질 거다. 믿으니까. 주님 말씀을 믿음은 내 선택이 아니다. 아버지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더 달라고 하면 더 주신다.
예수님, 저는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저는 아이인 데다가 아직 이 땅에 살고 있어서 아무래도 제 마음은 세상사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속적인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복잡한 세상에 더 초연하게 살게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 계신 곳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저도 그곳에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