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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뜻 ? 》
(아래의 본문 내용을 이해하시기 좋게 미리 설명을 하고 진행해 보겠습니다.^^)
오늘 내용은 제가 제일로 하기 싫은 내용이기도 한데요.^^
왜냐하면 제사나 천도재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도 정말이지 불교 쪽 어른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기가 싫은데요.
제가 무슨 스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절에 극성스러운 사람도 아닌데 갑자기 이상한 놈이 나타나서 불법이 어떻고 천도재가 어떻고 제사가 어떻고 하면서 큰 스님들을 향해서 떠들어대고 있으니 당연히 언짢아하는 분들이 많을 수 박에 없는데요.
기독교 쪽으로도 최근 들어 부쩍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떠들어 대고 있으니 당연히 이런 저의 얘기에 언짢아하는 분들이 있을 줄 아는데요?
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이 법을 잘 알게 된 한 사람으로서 안 좋은 내용들이 나온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돌려서 이야기할 수도 없고 그래서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솔직하게 쓰자가 제 마음이고 방침인데요.
초기에는 제가 천도재나 제사는 절대로 안 된다 하면서 큰스님들을 맹 비난들을 하면서 자기들 밥줄 끊어지는 글들을 쓰니까 초기에는 저를 죽이겠다고 하는 분들도 쾌 있으셨는데요?
요즘은 지치셨는지 조용들 하시답니다?^^
그래서 저도 이런 내용들이 나오면 난감한 것인데요.
저라고 욕을 먹어가면서 이런 글을 쓰고 싶겠어요?
그러나 옛 선지식인들과 선지자들이 남기신 특히 부처님과 예수님도 이 힘든 길을 가셨는데 저라고 이 길을 못 가겠느냐 하는 마음이 저도 들어서 고집스럽게 이 길을 8년째 가고 있는 것인데요.
제 경우는 제 성향으로 봐서 죽을 때까지 이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알리다가 죽을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는데요.
사람으로 한번 태어나서 이 맛을 못 보고 죽는 사람들이 태산처럼 많은데 저야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복을 받고 태어났다 할 수가 있는데 뭐가 손해겠습니까?
흔히 불교 경전에서 "사자자리에 앉아" 또는 성경에서 "보좌에 앉으신"이라는 표현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딱 이런 느낌을 받게 된다는 뜻이랍니다.
왜냐하면 자기 혼자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자기 혼자 세상을 보는 느낌으로 자기 혼자 우뚝 선 그런 느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허선사도
"문득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들으니, 온 우주가 다 내 집인 것을 깨달았네."
했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자기 혼자만 우뚝 서 있는 그런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진실)
아무튼 제사에 대해서는 오늘 경허스님의 이야기가 아주 적절하다고 저는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제사 문화가 어차피 생겼으니 하더라도 조용하게 적당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다가
[병들어 죽는 사람이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니 만일 그러한 이들을 전부 구제하자면 ~ 한 번 오고 감도 그 세력이 미치지 못하고 한 번 가고 옴도 공부에 방해도 되려니와 산에 사는 사람이 무슨 돈과 재물이 있어서 먼 지방의 사람을 구제하겠는가?]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 말씀은 제 마음과 일치한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느 나라나 섭섭한 마음에 예를 표하는 문화가 있지요?
종교 적으로도 그렇고요.
사람이 죽으면 기독교 같은 경우는 기도를 하는 문화가 있고 불교 같은 경우는 제를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록에도 보면 구약성경에도 하늘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 제사장이라는 직분도 있었고 제사장이라는 직분은 최고 권력 중에 하나이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직분이니까요.
그리고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은 구약뿐만이 아니라 요하문명에서도 선행했던 일이기도 하고 고조선을 거쳐 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신라와 백제에서도 항상 왕 옆에는 신녀나 제사장이 같이 했었답니다.
고조선 같은 경우는 단군처럼 깨달은 사람들이 직접 왕이 되기도 했고요.
그리고 이것이 점차 점차 쇠퇴를 하면서 무속화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직분은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직분이기도 하답니다.
왜냐하면 깨달은 사람들만이 하늘(본성/불성/성령/마음)과 소통이 가능하니까요.
불교와 같답니다.
불교는 제사장이라는 직분은 없지만 부처님도 늘 하늘(우주)을 살피셨답니다.
수행이란 것은 이렇게 살피는 것이랍니다.
처음에는 내가 나를 살피다가 ~ 마음을 살피다가 ~ 몸(오온)을 살피다가 보면 풍선 안에서 존재하는 본래 성품(불성/성령/마음)을 깨닫고 종국에는 증득(영접)을 하게 되는데요.(진실)
기독교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도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 불교 쪽은 알고는 있지만 입으로만 알고 있고 직접 증득하려고 노력들을 전혀 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말씀 올리자면?^^
기독교 쪽 분들은 혹시 기독교(基督敎)라는 뜻이 뭔지 아시나요?
만약에 모르고 기독교를 믿고 계시다면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들을 하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내가 뭘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지는도 모르면서 교회나 성당을 다니고 있으니까요?
제 경우는 간혹 기독교 쪽 분들이 강하게 나오면 기독교식 선문답으로 대응을 할 때가 있는요?^^
왜냐하면 예수님도 부처님처럼 제자들과 또는 외도들과 수많은 문답들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분교식으로 말하면 기독교식 선문답인 것이고요.
제 경우는 신부님이나 목사님이나 또는 전도사들과 많은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이 법을 전하고 있기도 하는데요.
대부분은 처음에는 거시기한 눈빛으로 저를 대하다가 끝에는 대부분 엄지 척(👍🏻)을 해 주시는 편인데요.
이것이 이런 것이랍니다.
아무튼 불교 쪽이든 기독교 쪽이든 비중이 있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이 강하게 나오면 저도 맞대응으로 질문을 던지는 편인데요?
그러면 제 질문에 답변을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답니다.
그중에 하나가 기독교 쪽으로는?
"저.. 혹시 신부님, 또는 목사님~" 하면서 " 혹시 기독교라는 뜻이 뭔지 아시나요?"
하고 묻는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대답을 제대로 하는 분들이 없었고요?
왜냐하면 이분들은 머리로만 공부를 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마음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질문에는 답변을 못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대답을 못하면 제가 이렇게 대답을 해준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基督敎]란 말 그대로 기(基/터, 기초, 근본, 토대)를 독(督/감독하고 살피다) 하는 교(敎/가르치다)라는 뜻이랍니다."
라고요.
그러나 한문식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신부님이나 목사님들은 이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이 있답니다.
그러면 제가 풀어서 설명을 해주고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근본을 살핀다]라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독교(基督敎)란 불교 식으로 말하면 근본(基)이 되는 본성(불성/참나/마음)을 살피고 감독(督)하는 종교라는 뜻입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근본이 되는 나의 주(主/자신) 하나님(성령/마음)을 살피고 감독하는 종교라는 뜻이고요.
쉽게 말해서 내 마음을 살핀다는 뜻입니다.
불교 쪽 수행자분들은 이 정도 말은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일 것인데요.
그러나 기독교 쪽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해줘도 못 알아듣는 것이 현실이랍니다.
깨닫고 못 깨다고는 두 번째 문제이고 성령을 영접하고 못하고도 두 번째 문제이고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진리 자체를 이분들은 모르고 있답니다.
불교 쪽 분들도 수행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 외에는 매한가지로 모르고 있고요.
오늘 본문 내용인 경허스님 제자들의 결사(結社/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단체를 조직함)도 여기에 속하는 것이랍니다.
기독(基督)을 하기 위함이랍니다.
내 안에 있는 토대인 근본(불성/성령)이 되는 것을 살피기 위함이랍니다.
불교 식으로 말하면 조사선(祖師禪)을 하기 위함이랍니다.
지금 이 내용은 불교 쪽이든 기독교 쪽이든 꼭 내 마음에 간직하고 꼭 믿고 내 마음을 살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나의 몸과 마음(불성/본성/성령)을 살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마음을 살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주(主/자신) 안에 성령이 있고 불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는 이것을 풍선으로 비유를 하고 있는데요.
여러 모양의 풍선들이 내 눈앞에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사람 모양도 있고, 개 모양도 있고, 고양이 모양도 있고, 개미나 지렁이 모양의 풍선들도 있습니다.
각각의 풍선들을 살아있는 몸이라고 가정해 보고 풍선 안에 있는 공기를 본성(불성/성령/마음)이라고 비유해 보는 겁니다?
그런데 이때에 풍선 안에 있는 공기와 풍선 밖에 있는 공기는 같은 종류일까요 아니면 다른 종류의 공기일까요?
물론 같은 종류의 공기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풍선 안에 있는 공기도 밖에서 온 것이니까요.
그런데 풍선이 터졌습니다.
생명을 다하고 몸(풍선)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풍선(몸) 안에 있던 공기(불성/성령)는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겠지요.
그래서 옛 어른들은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습니다" 그랬던 거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불교에서는 "불이(不二)다" "둘이 아니다" 했던 것이고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우리는 하나라고 가르치고 있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공기(불성/성령)는 풍선(몸) 안에 같혀이다 보니까 내가 있고 네가 있을 뿐이지..
본래 풍선 안에 있는 공기나 다른 풍선 안에 있는 공기나 풍선 밖에 있는 공기들은 모두가 본래 하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풍선들은 다르게 보이지만 풍선 속에 있는 근본(基/불성/성령)은 모두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도 그 근본을 잘 살피고 감독(督)을 하셔야 한답니다.
그래서 기독교(基督敎)랍니다.
근본(基)이 되는 내 안에 주(主/자신) 님을 살피(督)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해가 가시나요?
만약에 이해가 안 가신다면 언제든 꼭 문자를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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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늘과 소통하는 역사 자료 중에 가장 오래된 자료는 요하문명 안에 홍산 문화에서 많이 출도되고 있답니다.
경전이나 역사는 기록을 하는 사람들이 왜곡을 할 수가 있지만 그 당시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왜곡을 할 수가 없답니다?
제 경우는 지금 목마르게 확인해 보고 싶은 경전이 있다면 가죽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는 성경 원본인데요?
왜냐하면 지금 신약성경 구절에는 읽다 보면 중요한 부분에서 내용이 갑자기 끊기는 경우도 있었고 돌려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부분도 있었고 무엇보다 예수님도 분명히 부처님처럼 성령 영접하는 방법들을 제자들에게 많이 전해 주셨을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해서는 머리 부분만 있지 몸과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처럼 여러 가지의 과정들이 있어야 하는데 달랑 "늘 깨어있으라" 와 "주께 맡기라"라는 내용 박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루마리 성경 원본 안에는 분명히 이러한 내용들을 뒷받침 할만한 내용들이 비유로 많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을 하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기록에 보면 예수님처럼 똑똑하고 총명한 분이 없었다고 전해지니까요.
이런 분이 그런 부분들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두루마기 속에 있는 성서 기록들을 깨닫지도 못한 일반 학자들이 해석을 하다 보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한 부분들이 많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 두루마기 성서를 해석한 성경 책만 해도 천여 가지 가까이가 된다고 들었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성경 책을 골라서 지금 보고 있는 성경 책이 그중에 하나이고요.
이것 자체가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내용은 하나인데 해석한 사람에 따라 종류가 천여 가지라니요?
그래서 저는 두루마리로 되어 있는 그 성경 원문을 어느 학자가 설명해 주면 통역하는 사람의 설명을 듣고 무슨 뜻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 알아차릴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불교와 기독교도 그 뿌리는 하나라는 것인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두 종교다 언성을 높이시겠지만 예전에는 이런 자료들이 없었기 때문에 묻어두고 갈 수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과학과 장비가 발달하면서 아주 먼 옛날 무덤에 묻어 두었던 유물들이 동북 삼성 지역에서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답니다.
이런 유물들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전쟁의 신으로 불렸던 동이족들과 선비족들이 탁록대전(기원전 2700년 전)에서 홍수 때문에 딱 하번 한족들에게 크게 패한 후 중원을 한족들에게 내어 준 후 지금의 중국 중심에 있던 당시에 한족들 보다 훨씬 더 인구가 많았던 선비족들과 동이족들이 지금의 인도나 티베트 베트남 미얀마 등지로 대거 피난을 하면서 수행 문화도 같이 전해졌다고 보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인데요.
왜냐하면 가르침의 표현만 약간씩 다를 뿐이지 큰 골격은 모두 같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탁록대전 이후 인도로 피난간 사람들로 부터 수행을 전수 받고 인도에서도 드디어 1200년 후쯤인 기원전 1500년 경에 드디어 인도에서도 단군 할아버지처럼 크게 깨달은 사람이 나와서 베다(산스크리트어: वेद 베다흐, 영어: vedas) 성전이 지어졌고 이것이 브라만교로 이어지면서..
베다 성전이 나온 지 900년 후쯤에 드디어 깨달은 부처님이 나오고 그러다가 600년 후쯤에 드디어 깨달은 예수님이 나왔다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분들의 교리는 표현력과 대상만 다를 뿐 큰 줄기는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고요.
무엇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가 수행자들의 이야기랍니다.
곰과 호랑이가 토굴에 들어가서 마늘과 쑥만 먹고 진득한 곰은 사람이 되었고 성질이 급하고 과격한 호랑이는 수행을 못 견디고 뛰쳐나왔다는 이야기가 딱 오늘날의 선방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고요.
<<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1)
http://ynculture.kr/m/content/view.html?§ion=107&no=2279&category=222
(2)
https://m.blog.naver.com/trueyears/222115732726
(3)
https://youtube.com/watch?v=bca30GjzQI4&si=CWlw7iFcGjeIm6hm
그리고 종교 쪽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도 역사는 역사학자들에게 배워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종교도 역사의 일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흔히들 우리 역사를 오천 년 역사이라고 하잖아요?
사실은 아니랍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요하문명이 발견되기 이전에 이야기입니다.
단군 할아버지보다 1000년이나 앞서는 문명이 발견되었는데도 아직까지도 우리는 5천 년 역사라고 하시면 안 된답니다.
요하문명이 발견된 후로는 우리 역사는 6천 년 역사라고 해야 맞는 답이랍니다.
중국의 황하문명은 고작해야 5천 년이고요.
문제는 우리 민족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 관념들이 아주 부족한 것이 문제랍니다.
돈 벌기에만 바쁘지 우리의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답니다.
단군신화도 조작된 설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의 역사관은 아주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교과서에 나오는 김부식이 만든 그것도 정확도가 의심되는 삼국사기 정도가 전부로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중국은 저렇게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도 그것은 우리 역사다 아니다 하면서 우리 것도 못 챙기면서 화만 내면서 투덜대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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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제사장에 대한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기록은 고조선 이전부터 지금은 중국 땅이 되었지만 산동성에 있는 태산에 올라가 왕이 제사장과 함게 하늘에 제를 올리는 문화가 바로 그것인데요.
아브라함이 기원전 2166~ 1991로 추정되는 사람이니까 대략 단군할아버지 시대와 맞물려 있답니다.
굳이 따지자면 단군 할아버지가 아브라함 보다 2~300년 앞서는 사람이고요.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것은?
특히 불교 쪽 스님들이 아셔야 할 것은?
어느 기록이나 어느 유물을 찾아보아도 왕이 하늘에 제를 올리는 기록과 증거자료는 있었어도..
개인인 일반 백성들이 가족이나 부모에게 제를 올리는 기록은 유교가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제사라는 것 자체가 없었답니다.
기껏해야 절에 가서 돌아가신 부모를 위로하면서 절을 올리는 것이지요.
마치 지금의 기독교처럼 기도로 대신한 것이랍니다.
옛날 사람들은 부모들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줄 형편도 못 될뿐더러 당시에 제사란 왕이나 큰 귀족들만의 행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공자의 유교가 탄생하면서 일반 사람들도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고요.
왜냐하면 유교의 근간(根幹)이 다들 아시다 싶이 조상 숭배와 제사와 덕치(德治)가 그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소중히 여겼던 유교는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는 문화는 유교가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 교리에서는 하늘이든 개인이든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은 아직 저는 경전에서 보지를 못했고요?
예수님의 신약 성서에도 제사에 대한 기록을 없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부처님처럼 제사를 엄청 싫어하셨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아직 보지를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 경전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 중에 불교 팔만대장경 중에서 부처님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을 보신 분들이 있다면 저에게도 한번 보내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불교 경전에도 구약 성경처럼 하늘에 제사를 지냈든 개인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면 저는 바로 불교를 하등 종교라고 여길 것이고 곧바로 불교 경전들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고 두 번 다시는 불교 경전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제사에 대해 곱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부처님이나 예수님 가르침은 내가 곧 부처요 하나님의 자식인데 누가 누구에게 제사를 올린다고 하겠습니까?
자기가 자기에게 제사를 지내는 법도 있답니까?
물론 죽은 사람들에 대한 예(禮)는 얼마든지 좋은 문화라 할 수 있답니다.
죽은 이에 대한 마음을 표시하는 거야 뭐가 문제겠습니까?
같이 살다가 죽은 강아지만 보아도 슬픈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요.
그러나 몇백만 원 몇천만 원을 들여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그것은 돈 지랄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짓들은 수행을 하고자 출가한 사람들에게도 망치는 일이 되고 제사를 지내달라 하는 본인도 망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처럼 성당이나 교회나 절에 가서 죽은 이에 대한 기도나 절을 올리는 정도에서 예를 갖추면 되는 것이랍니다.
이런 면에서는 기독교 쪽은
아주 잘 하고 있는 쪽이랍니다.
불교 쪽도 앞으로는 죽은 이에게 "관세음보살" 같은 예를 갖추면 충분한 것이랍니다.
절이나 교회나 성당에 가는 김에 여윳돈이 있으면 돈 통에 성의껏 마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고요.
미친놈들처럼 몇천만 원씩 돈 지랄을 할 것이 아니라요?
아무튼 제사는 불교의 예(禮)가 아니랍니다.
유교의 예이지요.
부모에 대한 예(禮)를 그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이 유교라는 것입니다.
불교나 기독교처럼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그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부터는 기독교 쪽은 성령(불성)을 영접하는 쪽으로만 노력하시면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부족하나마 원하신다면 무료로 열심히 돕겠습니다.(진실)
불교 쪽 스님들도 천도재나 제사가 돈벌이가 되다 보니까 무당들이 하던 일들을 중간에서 갈호챈 것인데요.
왜냐하면 무속의 역사는 일만 년 이상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특히 죽은 자와 산자를 가늠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래 죽은 자의 일들은 무당들이 주관을 했던 직업이랍니다.
그런데 이것을 조선이 들어서면서 억불정책(抑佛政策) 또는 배불정책(排佛政策) 을 하다 보니까?
스님들도 살아남으려고 무당들 직업을 은근슬쩍 훔쳐 온 것이고요.
왜냐하면 부처님을 앞에 놓고 제사를 지내주면 무당들보다는 자식들 입장에서는 망자를 더 잘 모시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앞에 놓고 제사를 지내준다 하니까 중생들도 선호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큰 절에서 죽은 부모들을 모셔준다고 하니까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세종대왕 때부터 억불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니까..
세종이 즉위한 1418년 9월 18일부터 지금까지 불교는 천도재나 제사 등으로 스님들이 배는 굶지 않고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신 불교 교리는 그동안 땅에 처박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좋은 시절에 앞으로는 불교 쪽에서의 천도재는 절대로 안 된답니다.
왜냐하면 천도재는 부처님을 앞에 앉혀놓고 사기를 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처님도 못하는 천도를 일반 중생들이 어떻게 천도를 해준답니까?
그래서 사기라는 것입니다.
마치 이는 천주교에서 예전에 면죄부(免罪符)를 돈 주고 파는 것과 같답니다.
그러나 적은 비용으로 또는 무료로 제사 정도는 절에서 지주내주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좋던 싫던 제사도 이제는 한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고 부모나 가족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중생들 마음을 계율에 얽매여서 어루만져 주지 못한다면 이 또한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기도를 해주던 제사를 지내주던 망자들의 가족들 마음을 위해서 공짜로 위로해 준다면 왜 절간으로 사람들이 안 모이겠습니까?
조선시대 때야 억불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 하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요?
아무튼 저는 제사에 관해서는 오늘 경허 스님의 이 말씀이 정답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한 번 가고 옴도 즉 죽고 사는 것도 공부에 방해가 되려니와 산에 사는 사람들이 무슨 돈과 재물이 있어서 먼 지방의 사람을 구제하겠는가?]
라는 내용들이 바로 그것이랍니다.
쉽게 말해 내가 먼저 살고자(증득/영접) 공부를 하는 것이 우선인데 산에 사는 사람들 즉 출가 스님들이 무슨 능력이 있어 먼 데 있는 사람들을 구제(천도) 하겠느냐 이겁니다?
아무튼 불교 쪽에서 가장 큰 문제는?
비유를 하면 자기 집에 강도(유교)가 들어와서 아버지(부처)를 죽이고 아녀자들은 강간을 하고 어린 자식들(비구 비구니)은 성 밖으로 내 쫓고 안방은 강도(유교)들이 독차지를 하고 앉아서 지금까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데에도..?
그 어린 자식 후손들(스님들)은 자기 조상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내 쫓은 강도들이 뿌려놓은 문화를 떠받들면서 철없이 천도재다 제사다 하면서 좋다고 거기서 놀고 있으니 이것이 화택 이야기보다 못할 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 이겁니다?
저의 글을 몇몇 큰 스님들도 보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큰 스님들도 한번 아래의 역사 자료들을 한번 직접 보십시오?
제 말이 맞는지 그른지를 말입니다?
저는 정말이지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는데요?
스님들 대부분이 힘들게 출가들을 하셔 가지고 이렇게 좋은 부처님 가르침들을 잘 배울 생각들은 안 하시고 그런 천도재나 제사 등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경우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요즘처럼 이렇게 좋은 세상에 죽은 사람들 천도재나 제사나 지내줄 일이나 할 것 같으면 인생이 아깝지 않으냐 이겁니다?
그렇잖아요?
부처님도 이미 2500년 전에 돌아가신 분인데 부처님이 내가 죽으면 조석(朝夕)으로 밥(공양) 올려 달라 한 적도 없는데?
나도 부처 되겠다고 출가한 사람들이 부처 될 생각은 아예 없고?
죽은 사람들 뒷치닥거리나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고 허망한 일이겠느냐 이겁니다?
오늘 경허스님 말씀 안에도 이런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스님네들은 아래의 내용을 끝까지 잘 보시고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발 부탁이지만 하루속히 본연의 부처님 제자들로 돌아오셔서 우리 같은 하와 중생들을 잘 제도해 주시기 바랍니다.😮💨🙏🏻(진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저목 ; 조선 사람들은 언제부터 제사를 지냈나?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
https://youtube.com/watch?v=43c0h_sBaQI&si=Q5jkv43zUGeE1w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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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점을 감안하시고 아래 본문 내용을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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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61) ]
20251215
육십 한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 같은 노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자주자주 비교해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의 것들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기독교 쪽 분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 마음에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믿고 맡겨버리십시오. 하나님께 던져 버리십시오.]
※ 불교 쪽이든 기독교 쪽이든 내 마음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절대로 들고 있어서는 안 된답니다. 들고 있으면 큰일 납니다. ※
왜냐하면 모든 고통과 괴로움과 번뇌는 그 들고 있는 것들 때문에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가 되는 근원(깃대/찰간)을 없애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火宅)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수행(수도)이란 내 [몸(오온)과 마음]을 보는 것부터가 시작이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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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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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이번 한문 글도 너무 길어서 만해 한용운 스님이 번역한 한글로 대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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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제목 : 정혜 계사 규례
1. 결사한 사람들이 그때그때 각각 여러 곳에 모이되 많거나 적거나 그곳에서 공부를 하되 서로 모여서 할 일이지 혼자서 산속에 들어가서 하지 말라.
만약 고통을 당하다가 혹시 죽게 된다면 도력도 성취하지 못 못하고 죽은 뒤에 도반의 인도가 없으면 전에 닦은 공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큰일을 그르칠까 염려함이다.
또한 불가불 결사한 이들끼리 서로 도와주어야 된다.
두려운 것은 표연히 한 납승이 뜻에 따라 남북으로 돌아다니다가 병들어 죽는 사람이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니 만일 그러한 이들을 전부 구제하자면 남으로 장강을 건너고 북으로 만첩첩 산을 올라서는 길거리의 고통이 없지 않으리니 한 번 오고 감도 그 세력이 미치지 못하고 한 번 가고 옴도 공부에 방해도 되려니와 산에 사는 사람이 무슨 돈과 재물이 있어서 먼 지방의 사람을 구제하겠는가.
만일 구제하지 못한다면 결사 동맹한 뜻에 어긋나며 또한 여러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많으나 적으나 한 곳에 모여 공부할 일이다.
이 조항을 자세히 하는 것은 크게 관계되는 일이 있으니 반드시 준수할 것이며 만일 혼자 살 마음이 있는 이는 이 결사에 들지 말라.
1. 사람의 수명이 다함은 피할 수가 없으니 병들어 운명하는 이가 곁에 있거든 계원은 마땅히 성의껏 간호하면서 그를 위해 무상 법을 설해 주며 위로할 것이며 정혜의 이치를 설해 줄 것이며 도솔천에 상생하는 원을 설해 줄 것이며 죽는 이로 하여금 정 신과 도력이 어둡지 않게 하여 도솔천에 상생하는 원력을 어둡지 않게 해야 한다.
1. 사망하는 곳에 결사한 도반이 있다면 미륵여래와 시방 삼보께 공양 올리고 명복을 빌되 정성껏 할 일이지 힘들여서 재를 크게 배설하려 하지 말라.
(死亡之處在傍禊伴件辦供禱祝彌勒如來與十方三寶而止於至誠而已幸勿勞力大其設辦事)
1. 사망한 사유와 날자를 분명히 적어 결사소에 보내면 결사소에서는 모든 계원에게 통보하고 또한 오로지 이 일만을 위하여 먼 길을 오고 가지 말 일이며 만일 계원가운데 이 소식을 들은 이는 비록 천리밖에 있더라도 2~3인이 모이거나 혹 10~20인이 모이거나 혹 백여인이 모이거나 스스로 그 모임은 동맹의 서약을 생각하여 정성껏 망인을 위하여 풍부하고 검소함을 따라 다소의 공양구를 베풀고 미륵여래와 시방 삼보께 공양을 올릴 것이요 비록 함께 회합한 대중이 백여명이 될지라도 각각 사람의 이름을 열거하여 쓸 것이며 또한 각각 동참하여 예배하고 축원하여 망인으로 하여금 도솔천 내원궁에 상생하게 할 것이며 다음에 망령을 위해 시식을 하며 대소상에도 이것을 준행하여야 한다.
1. 묻기를 “지금 정혜결사를 맺고 겸하여 도솔천에 상생하기를 발원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답하되 "그 정혜의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시설한 것이나 힘을 얻은 이는 뜻대로 자재하거니와 어찌 원력에 의지하여 오고 가겠는가.
그러나 큰 힘을 갖춘 보살도 또한 서원이 있거늘 힘을 얻은 이라도 원을 세우는 것이 무엇이 방해롭겠는가. 그러므로 도솔천 내원궁에 상생하기를 발원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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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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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내용도 정혜계사규례(定慧禊社規例) 에 관한 내용인데요.^^
[정혜계사규례]에 대해서는 앞전에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내용은 사람이 죽었을 때 특히 산이나 절 선원에서 수행을 하다가 수행자가 죽었을 때 이렇게 하라는 내용인데요.
이때만 해도 수행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던가 봅니다.
그리고 자료를 찾아보면 중국이나 여기나 산에 있는 토굴에서 수행을 하다가 호랑이나 짐승들에게 잡혀 먹는 수행자들도 많았다고 하고
낙상이나 병을 얻어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당시에는 혼자 토굴에 들어가 수행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위험한 경우가 많았을 것인데요.
그래서 오늘 경허스님 말씀은 산에서 혼자 수행을 하지 말고 다 같이 모여서 수행을 하라는 뜻입니다.
수행을 하다가 불행히 죽는 사람들이 나오더라도 크게 일을 벌이지 말고 조용하고 간단하게 장사를 지내주라는 뜻이고요.
왜냐하면 무엇보다 수행자들에게 있어서는 공부에 방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하다가 수행자가 병을 얻어 죽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수행 공부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스님들은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같이 수행을 하던 도반들이 죽더라도 이러할진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왜 스님들이 그 자리에 끼어드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불교는 절대로 죽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도(濟度) 하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제도하는 종교라 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경허스님도 지금 결사(結社)라는 용어까지 써 가면서 열심히 공부하라 하는 것이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스님들보다는 일반 재가자들이 훨씬 더 많이 수행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이래서는 안 된답니다.
이는 마치 무슨 일이 있어 변호사를 찾아갔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일반 사람들 보다 더 법을 모르는 경우와 같답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물론 열심히 하시는 스님들도 있습니다만 그 수가 극소수라 그렇지요.
예전에는 다들 못 배우고 무식했기 때문에 스님들이 적당히 공(空)이 어떻고 무(無)가 어떻고 하면
"아..! 저 스님은 도통한 스님이다"
할 수 있지만 지금 시대에는 어디 그런가요?
학식으로 보나 경륜으로 보나 스님들과는 잽이 안 될 정도로 유식하고 박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는 기독교 쪽도 마찬가지랍니다.
신부님이나 목사님들도 세상을 모르고 세상 공부를 안 하면 어떻게 고해성사를 상담해 주고 어떻게 신도들 마음을 인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특히 스님들이나 신부님들은 결혼 생활도 안 해보고 사회생활도 안 해본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인생 상담을 할 수가 있겠어요?
그렇다고 깨달아서 지혜가 충만한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지금 경허스님 말씀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에서 같이 수행을 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나오더라도 방해만 될 뿐이니 일을 크게 벌이지 말고 공부에만 힘을 쏟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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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기를 “지금 정혜결사를 맺고 겸하여 도솔천에 상생하기를 발원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이 말은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열심히 수도를 하면서 천국에 가는 것을 소망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뜻인데요.)
그랬더니?
★
[답하되 "그 정혜의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시설한 것이나 힘을 얻은 이는 뜻대로 자재하거니와 어찌 원력에 의지하여 오고 가겠는가.]
(쉽게 말해 이 말도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정혜의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즉 성령(불성)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신설한 것이나
"힘을 얻은 이는 뜻대로 자재 하거니" 즉 성령(불성)을 영접한 사람은 자재(自在) 즉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데 무슨 소망하는 것이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정말로 사실이랍니다.
왜냐하면 불법을 증득하든 성령을 영접하든 한 사람들은 어떤 소원이나 소망이나 기원 따위에 속박을 받지 않는답니다.
불교 식으로 말하면 불성을 증득한 사람들은 그 어떠한 것에도 걸림이 없다는 뜻이고요.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진실)
(일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듦)
아무튼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지막에 돌아가시면서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19장 30절)]
하신 거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성령뿐만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대승(大乘)까지도 모두 다 이루셨으니까요.
그것도 3년 만에 대승을 이루었답니다.
지금도 보십시오?
기독교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요?
3년 만에 이룬 것치고는 대승(大乘)이 아닙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 열두 제자들 중 유일하게 성령을 영접한 사람은 요한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요한은 자기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냥 불교식으로 만하면 여시아문(如是我聞) 수준이고요.)
★
[그러나 큰 힘을 갖춘 보살도 또한 서원이 있거늘 힘을 얻은 이라도 원을 세우는 것이 무엇이 방해롭겠는가. 그러므로 도솔천 내원궁에 상생하기를 발원함이로다."]
(여기서 말하는 보살이란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천사(天使)를 이르는 말이랍니다.
불교에서도 보살들이 진정한 수행자들을 보호해 주듯이 기독교에서도 진정한 수도사(使徒/사도)들을 천사들이 보호해 준다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랍니다.
저만해도 그랬고요.
제 경우만 해도 어렸을 때에는 몰랐지만 분명한 사실은 영등포에서 4살 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커가면서 자꾸 내 옆에 누가 있다고 말을 하니까 당시에 가장 큰 박수무당 말을 듣고 부모님들이 겁을 먹고 파주로 이사를 간 것인데요.
그리고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항상 내 오른쪽 옆에는 저만 아는 인기척을 느켰었고요.
그리고 신기했던 것은 법화경을 시작으로 이법을 깨닫기까지 뭔지 모르지만 저를 유도하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었답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마치 천사가 저를 인도하듯이..
"다음은 이것을 해봐라.."
"다음은 이것을 확인해 보아라.."
하는 식으로 제 마음은 계속해서 인도하는 그런 느낌을 저는 많이 받았었답니다.(진실)
이런 느낌이 없었다면 저라는 사람은 성격 자체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제가 미쳤습니까?
돈 벌기도 바쁘고 놀기도 바쁜 사람이 이런 것을 하고 있게요?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제 경우는 이 법을 안 만났다면 워낙 잡끼(雜技)가 많았던 경우라
일터 아니면 당구장 아니면 룸살롱 아니면 카바레에서 띵까띵까 하면서 놀고 있을 것이 거의 100% 일 것인데요.
아무튼 깨닫고 증득(영접)을 하게 되면 마음이 180도로 바뀌면서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성령이 충만한 상태(불성)에서 세상 살이를 살게 되고 지혜롭게 살게 된답니다.
(일반 사람들은 재빠르게 눈앞에 이익을 빠르게 취하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지혜란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을 조금 바보처럼 살아간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일반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나를 봐야 한답니다.)
아무튼 깨닫고 증득(영접)을 하게 되면 무엇이 우선인지를 잘 알게 된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예수님도 수많은 선지인이나 선지자들도 같은 길을 갔었던 것이고요.
그런데 선지식인(선지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중생들에게 돈벌이에 열을 올린다면 그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성(성령)의 마음에는 그런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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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제목 : 불교고승열전 04집 한암대종사 01~16 방한암 스님1876~1951 -
https://youtube.com/watch?v=8He7Od6nu0o&si=wyqurEYWXBmVqk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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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열심히 따라 하셔서 꼭 성불(성령 영접)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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