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선교하는 그리스도인 간혹 어떤 가게에 들어가면 잘 보이는 벽면에 걸어둔 십자고상이나 ‘평화를 빕니다.’ 같은 성경 문구가 적힌 판이 있다. 우리 교우가 운영하는 가게다. 모르는 교우지만 괜히 반갑고 그것 자체로 마음 한쪽에서는 벌써 앞으로 있을 거래에 대한 신뢰가 생겨난다. 그곳은 작은 선교의 장이 된다.
신앙은 아주 작은 겨자씨 같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과 행동이 그 보이지 않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 알려 준다. 신앙은 무엇보다도 우선 양심적이고 윤리적이다. 그리고 가끔은 상거래에 관한 국가법과 규범을 뛰어넘는다. 손님이 처한 곤란한 사정을 알게 됐을 때 주인은 그렇게 행동한다. 그것은 사회법에는 없지만 주님이 주신 사랑법에는 있다. 그때 교우 주인은 창조주 하느님을 따라 창조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지만 살아 계신다. 그분은 오늘도 여전히 세상 안에서 일하신다. 특별히 당신 자녀이고 제자인 우리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더 적극적으로 일하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당신 마음을 더 잘 안다고 믿으시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그분에 대한 믿음은 성당 안에 있는 유물이 아니고 기도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생활 속에서 교우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믿음은 현실이 된다. 참 좋으신 하느님이 살아 계신다고 증언되는 거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교회 교우들에게 이렇게 감사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나고 저마다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 모두의 사랑이 더욱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2테살 1,3).” 양심적이고 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때론 예수님이 주신 사랑법에 따라 행동하는 당신 자녀들에게 하느님은 고마워하실 거다. 그보다 더 확실한 선교는 없을 거다.
예수님, 아버지 하느님을 아는 분은 주님 한 분뿐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주님 말씀이 곧 하느님 말씀이고, 주님이 남기신 삶의 모범이 하느님께 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양심적이고 윤리적으로 살게 도와주시고, 언제 사회법을 뛰어넘어야 하는지도 알려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