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2006년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블랙달리아]는 1947년 LA에서 일어난 무명 여배우의 엽기적 살인사건을 소재로 제임스 얼로이가 쓴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다. 고전적 형식의 스릴러에 충실한 이 작품은, 흥미 있는 소재와 좋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무게중심을 잃지 않고 사건을 펼쳐나가는 안정적인 연출의 힘으로 재미를 준다. 그러나 같은 원작자인 제임스 얼로이의 [LA컨피덴셜]보다는 속도감이 느리고 각본의 짜임새가 엉성하다.
1947년 LA 할리우드 근교에서 여자의 사체가 발견된다. 입이 삐에로처럼 양 귀쪽으로 찢겨져 있었고, 허리 아래가 예리하게 잘려져 있었으며 내장이 모두 밖으로 적출된 상태였다. 더 엽기적인 것은, 사체가 한방울 남아있지 않게 모두 깨끗하게 씻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블랙달리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살해된 무명의 여배우가 생전에 출연했던 작품이 [The Blue Dahlia]라는 영화였으며 그녀는 검은 머리에 꽃을 꽂고 출연했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촤대 규모인 500명의 수사관이 투입되었고 3천여명의 용의자가 체포되었으며 100여건의 모방 유사범죄가 일어났지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하고 영구 미제 사건으로 끝난 블랙달리아 사건에, 제임스 얼로이는 상상력을 줄어 넣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넣었다. [블랙달리아]가 [LA 컨피던셜]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것은 전적으로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의 유사함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제임스 얼로이의 원작을 영화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커티스 핸슨 감독의 [LA컨피던셜]이 튼튼한 각본을 바탕으로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데 비해 [블랙달리아]의 전개는 느릿하다.
제임스 얼로이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소설은 매우 복잡한 이야기가 서로 얽혀 들어가면서 전개되기 때문에 각색 과정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똑같은 원작자의 소설이며 스타일도 비슷한 작품이지만, [블랙달리아]는 [LA컨피덴셜]에 비해 각본의 짜임새가 헐거롭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서사구조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래서 복잡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뼈대가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으면서 펼쳐나간다.
먼저 두 명의 라이벌 LA 경찰을 등장시키는데, 그들은 모두 전직 권투선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벅키(조쉬 하트넷 분)와 리(아론 에크하트 분)는 언론의 우호적 관심을 끌기 위해 마련된 경찰청 내 권투시합에서 주목을 받게 되고 최고의 수사기관인 수사대로 들어갔다가 블랙달리아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특별수사팀에 투입된다. [블랙달리아]의 도입부는 CSI나 최근 젊은 감독들의 작품처럼 속도감 있는 편집으로 정신없이 전개되지 않는다. 고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빛 바랜 화면, 하나씩 차근차근 전개되는 이야기, 그러나 결코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며 사건의 얼개와 캐릭터의 선명성을 강조해 나간다.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벅키와 리 앞에 두 명의 여인이 나타난다. 원래 마약 범죄자 보스의 애인이었던 케이(스칼렛 요한슨 분)는 리의 애인이 되고, 살해된 무명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쇼트와 너무나 흡사하게 닮은 매들린(힐러리 스윙크 분)에게 벅키는 매혹된다. 케이는 리가 없을 때 수시로 벅키를 유혹하지만 벅키는 친구와의 우정을 져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사건에 몰입해서 수사를 하던 리는 케이의 전 애인이 출옥한 후 다시 마약 거래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현장에 갔다가 살해당한다. 리를 잃었다는 공통적 상실감에 빠진 벅키와 케이는 연인관계로 발전하지만, 사건의 핵심은 다른 데 있었다.
[패컬티]로 시선을 모은 뒤 [진주만]과 [블랙호크다운]을 거쳐 오랫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조쉬 하트넷의 매력적인 모습과, 광적으로 사건 수사에 집착하는 경찰관 리 역을 맡은 아론 에크하트, 그리고 팜므 파탈로 등장하는 두 명의 여배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받은 스칼렛 요한슨과 [소년은 울지 않는다]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두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힐러리 스윙크의 빼어난 연기는, [블랙달리아]를 끌고 가는 4명의 중심 인물들이 각자의 개성적인 캐릭터를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며 힘의 균형을 맞춰나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