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책을 읽기 전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모양처였다고 100%인정을 하면서도 또 다른 면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다 예전에 신문 만평인가에서 신사임당을 말하면서 남편 이원수와 그 시어머니 홍씨부인의쪽에 서서 다시 바라본 관점에서 풀어놓은 글이 있었다.
그 글에서의 신사임당은 모든면에서 앞서고 알려진대로 대단한 분이셨지만 결혼생활의 일부를 친정에서 살았고 신사임당의 모든 능력에 가려져서 남편은 힘없고 무능한 사람으로 비추어졌고 그 어머니 홍씨부인은 조선시대이면서도 아들가진자의 풍요를 누리지 못한 편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높은 부잣집 며느리를 들여서 기죽어 산 모자였다고 표현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 말에 반박이 나오지 않았다 그럴수도 있겠단 일부 긍정마저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때 나는 위인이라고 완전 할 수는 없지 우리나라는 나쁜건 좋게 좋은 건 더 좋게 쓰는나라이니 와전된 부분도 있을꺼야 하고 어느정도는 수긍하면서 덮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이책은 그런 나의 의문과 부당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단지 그것은 그시대의 풍습이였고 결국엔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한양으로 남편과 일곱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들어갔단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다 홀어머니를 두고 넘는 대관령고개에서의 신사임당의 시는 애절하기 까지 했다.
신사임당은 중국의 주나라 무왕의 어머니인 태임부인을 모델삼아 닮고자 했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던 분이셨다.
어린시절 스스로 호를 사임당으로 지으셔서 그렇게 살아오셨고 부지런하고 영특한 딸로 남편을 거스르지않고 부드럽게 리드하는 보이지 않는 리더였고 지혜롭고 낯출주 아는 며느리였고 아이들에게는 솔선수범하는 준비된 어머니였다.
과연 지금 이시대에 이렇게 살수 있는 이가 있을까? 조선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변했다고 딸과 어머니와 아내와 며느리의 자리가 바뀌는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글과 그림에 능통했고 아이들에게 직접 실천하고 스스로 하기를 기다려주고 가르쳤던 어머니 지혜로왔고 자기를 낯출 줄 알았고 겸손했으며 부지런하고 절약적인 생활인이였다.
아마 나라면 이렇게 출중한 실력에 없는 시댁에서 내가 왜 이런곳에 와서 고생할까? 남편과 시어머니를 보면서 한숨짖고 살았을것같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계발의 소흘하지 않았고 아이들의 교육은 태교부터 존중했으며 남편을 무시하지않고 스스로 함께 할수 있게 이끌었고 아이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어긋나지 않게 만들기도 하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생각나는 말은 빈수례가 요란하다는 말과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생각이났다.
나도 그런실수를 나도 모르게 한적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모임이나 어떤자리에서 너무나도 자기 애기만 하고 목소리 크고 너무 나대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되도록이면 말을 썩지 않을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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