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윤 태운
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고향 집에는 약 6평쯤 되는 다락방이 있다,
대부분 사람이 자기 고향의 다락방에 대한 추억을 한 두 가지쯤 가지고 있을 테지만, 우리 집 그 다락방은 내가 즐겨 올라가서 논과 밭, 산 그리고, 변해가는 자연을 내려다보는 곳이었고 가득 쌓여 있는 묵은 책을 뒤척이는 즐거움이 있던 특별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오래된 나무기둥의 체취도 느낄 수 있었고, 나보다 10살이나 위인 형님이 보시던 책과 누님들의 사진, 노트, 상장, 성적표 등을 뒤져 보는 재미가 쏠쏠하여 나중에는 즐겨 찾는 비밀창고가 되었으며,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 글자를 조금씩 알기 시작했을 때부터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심심하면 올라가던, 지금 생각하면 그곳이 나의 소년시절 꿈을 키워주던 요람이었다.
6.25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의 일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이때 맨 처음이고 가장 어려웠던 수난을 겪었던 것 같다,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2학년 되던 해인 어느 날, 예쁜 여선생님이 나를 반장으로 지목했었는데 나는 공산당 선생이 시키는 반장을 안 한다고 말했다가 교무실에 불려 가 곤욕을 치렀었고,
선친께서는 당시 국민학교 사친 회장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육성회장) 이셨다고 인민군대에 잡혀 공주 감옥으로 끌려가시다가 아군비행기의 사격을 피하는 인민군의 눈을 따돌리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 귀가 하신 일도 있었으며,
형님은 예산 농업고등학교 학생 시절 소위 남들이 말하는 좌익학생들의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매일 숨어다니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학생회 간부를 하였기에 그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들어 알고 있다.
그때의 우리 집 다락방은 형님의 숨어 있던 곳이기도 하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내가 자주 숨어드는 나의 비밀궁전이었으며, 가족 모두에게 지식과 간식거리를 보급해주는 보급창고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락방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란 책도 있었고, 당시 사람들에게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삼국사기, 한국사, 혈의 누, 인현왕후 전, 한글독본, 장화홍련전, 릴케, 셰익스피어와 금광과 석탄에 관련된 전문서적 등 지식인이 즐겨보던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서 나는 그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하면서도 열어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가족들이 나를 찾아다니게 하는 소동을 벌인 일도 있었다.
또 거기에는 누님들이 보던 “노마의 동산”이라는 책도 있었는데 나는 그 만화책 속에 나오는 고아들의 모습과 사과나무에서 아이들이 사과를 따 먹고 놀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나라형편이 너무 어렵고 어두운 시절이었지만, 내 생각에는 그 만화책이 오늘날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어느 책보다도 종이의 질이나 내용에 뒤지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선친께서 한국 전쟁 전에 우리 집 논과 밭의 일부를 국민 학교를 지을 때 학교부지로 희사 하신일이 있었는데, 그 학교가 우리 집에서 약 100메터 쯤 뒤에 있어서 , 전쟁 당시에는 내가 다락방에 올라가 장날마다 학교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민재판 광경과 수많은 지방 인사들이 죽창에 찔려 죽거나 수난을 당하는 모습을 창호지 문틈으로 내려다 볼 수도 있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1,4 후퇴 때에는 우리가족이 계룡산 쪽으로 피난을 가는 길에 충남 부여의 귀암리 라는 동네에서 몇 달간 머물다가 국군이 북쪽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집으로 돌아와 보니, 우리 집은 인민군이 거주하고 사무실로 사용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 소고기와 갈비 식량 등이 광안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며칠이 지난 후에 나는 습관대로 다락방에 올라가서 다시 책들을 열어보기 시작하였는데 위인전이나 철학서적 등에 공산주의와 배치되는 내용과 글자가 있는 곳은 모두 까만 먹물로 지워져 있었고, 찢거나 불태운 것은 없었으니 비교적 유식한 공산당이 머물다 갔다는 생각을 하였다. 국민 학교 저학년이던 내가 어린나이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형님이나 누님들의 책을 훔쳐보면서 쌓은 실력과 환경 덕분이라고 판단된다,
그만큼 다락방은 유년시절 나에게 올바른 생각과 정서를 키워주는 산실이 되었고, 내가 중학교 입학 전에 이미 고전 소설이나 고전 문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이 다락방 이며 특히 중학교 때에는 국사 공부시간에 더 깊고 폭이 넓은 역사를 선생님들이 가르치지 않는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존경하는 스승 정하경(시조시인) 선생님으로부터 시 쓰기공부를 권고 받은 기억과, 세계 명작 소설, 시집 등을 즐겨 읽었던 것도, 내가 다락방에서 키운 독서생활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다락방은 어린 시절의 나를 학문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성장하게 하여주고 사회생활을 이해 할 수 있게 해주던 곳 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다락방의 묵은 나무냄새와 책 냄새가 그리울 때가 있다. 끝
첫댓글 회갑잔치 날에는 다락방에서 과방을 보면서 음식물을 내어 주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붕 바로 아래에 이층처럼 높게 만든 방에
꿀 단지도 있어 몰래 올라가 꿀을 퍼먹던 기억이 새롭네요.
누구나 다락방의 추억이 하나 둘쯤 있는가 봅니다,
휴일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6.25 의 참상을 다락방을 통해 이야기 해 주셨네요.
전 그런 참상을 보지 못한 전후세대지만 공산당의 참상을 선배님으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다락방에 숨겨 놓으신 간식거리를 훔쳐 먹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회장님 감사합니다,
가내 평안하신 가운데 하시는 일 뜻대로 이루고 계시지요?
여러가지 일로 회장님께 감사 인사 드릴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이메일로 보내드린 회원가입 문제는 어찌되었는지요?
안되어도 상관 없으나 그 뒷이야기가 궁금 합니다.
무더위에 건강 챙기시고 늘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