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모셔간 머슴의 아들' 류태영 박사
◆고생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지독한 고통이 되어 좌절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멋진
사람으로 성장케하는 연단이 되기도 한다.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에서 유일하게 국민학교에 입학했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열 여덟 살에 비로소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는 무작정 상경, 구두닦이,
신문팔이, 아이스 케이크 행상 등을 하며 겨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찌들어지게 가난했고 장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었지만,
그는 구두닦이를 하면서도 유학의 꿈을 꾸었고,
이틀을 굶고서도 비관은커녕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3개월 만에 히브리어를 끝내고 3개월만에 대학원 입학 꿈꾸는 청년 류태영에게 그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
농촌이 이렇게 가난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당시 농업선진국으로 알려졌던
덴마크 국왕에게 무작정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꿈에 그리던 덴마크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결국 우리나라에 새마을 운동을 도입하게 된 배경이 된 것이다.
유학이라는 말을 처음 접한지 13년만에 구두닦이 소년 류태영은 당시
우리나라와 덴마크는 수교도 없던 터라 그의 유학,
그것도 편지 한 통 쓰고 그 나라의 초청을 받아 유학가는 경우는 거의 기적이었다. 덴마크 말이라고는 알파벳도 모르던 그가 까막눈으로 시작한 덴마크 유학생활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는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그곳에서 또다시 꿈을 꾼다.
그 나라에서만이 아닌 전 세계를 순회하며 농촌을 비교 연구하겠다는 당찬 꿈을... 무일푼이었지만, 그는 덴마크 정부 특별 예산 약 3만 달러를 지원받아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다시 이스라엘의 농촌개발을 직접 보고 공부하고 싶어서 이스라엘에 갔다.
그 어렵다는 히브리어를 마스터하고 5년 2개월의 최단기간에
최고 우수한 성적으로 히브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결국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해보기도 전에 안 될 것이라고 포기하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화이다.
귀국 후 그는 청와대의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는 핵심에서 일하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감동을 자아냈던 그의 강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철저한 감사생활, 계획생활 실천이 미래를 만든다 1952년 6학년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는 그에게 ‘교육훈련 연구과정의 기록’이었다.
하루하루 큰 목표를 그리는 ‘꿈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수십권의 일기장들. “저는 철저한 계획아래 살았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고,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했죠.
그리고는 미래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철저한 인생설계도를 그렸습니다.
그 결과 덴마크에 유학을 가게 되었고 이스라엘에서 교수생활을 했으며,
건국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게 되었어요.
꿈을 위한 계획을 세워 놓으면 싫든 좋든 따라가게 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한 해, 한 달, 한 주일, 일일 계획서를 작성하여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그러나 실천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럴수록 나는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일 반성하고 새 다짐도 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트레이닝을 시키신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렇게 고생하던 시절에, 옛날에 일기를 하루도 안 빼먹고 썼는데,
그때 일기를 보면 ‘감사하다’는 말이 가득 찼어요. 요즘 읽어도 내가 은혜를 받아요.
그 시절이 뭐가 감사하겠어요?그런데도 기뻐서 감사하고 굶어 쓰러지면서도 감사해.
왜 그랬냐 하면 어렸을 때 받은 신앙 3가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지금 내 앞에 계신다는 걸 확실히 믿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을 서울에 와서 생각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는데 내가 왜 굶고 빈혈이 걸리고 길가에서 자고 이러는가?
일기장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려고 그런다.
호미나 괭이를 만드시려고 녹슬고 쓸데없는 쇳조각 같은
나를 훈련을 시키시니 얼마나 감사해요.”
약력 : 대통령비서실 새마을담당 비서관 이스라엘 벤구리온대 초빙교수 건국대학교 부총장 국무총리실 정책자문위원 교보생명(주) 비상임고문 중국연변과학기술대학 겸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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