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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표류선(漂流船)에 대하여 실정을 물을 때는, 사정은 급하고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니 지체하지 말고 시각을 다투어 달려가야 한다.
표류선에 대하여 정황을 물을 때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 다섯 가지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외국 사람들과의 예의는 마땅히 서로 공경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매양 그들의 깎은 머리와 좁은 옷소매를 보면 마음속으로 업신여겨서, 그들을 대접하고 문답할 때에 체모를 잃게 됨으로써 경박하다는 소문이 세상에 번지게 될 우려가 있으니, 이것이 첫째로 경계할 일이다.
1. 국법에 무릇 표류선 안에 있는 문자는 그것이 인쇄본이거나 필사본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초록(抄錄)하여 이를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왕년에 한 표류선이 서적 몇천 만 권을 가득 싣고 무장(茂長) 외양(外洋)에 정박하였는데, 사문하던 여러 관리들이 의논하기를,
“이를 초록하여 보고하자면, 정위조(精衛鳥)가 나무와 돌을 물어다가 바다를 메우는 것(주1)과 같을 것이요, 만약 그 중 몇 개만 골라서 초록하면 반드시 억울하게 화를 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하고, 드디어 모래사장을 파고 수만 권의 책을 그 속에 파묻으니, 표류인들은 크게 분통히 여겼으나 어찌할 길이 없었다.
나의 친구 이유수(李儒修)(주2)가 그 뒤에 무장 현감이 되어, 모래 속에서 책 몇 질을 얻었는데, 《삼례의소(三禮義疏)(주3)》, 《십대가문초(十大家文鈔)(주4)》 같은 것들로서, 그때도 물에 젖은 흔적이 있었다.
내가 강진(康津)에 도착하여, 《연감유함(淵鑑類函)(주5)》 한 권을 얻었는데, 매우 심하게 썩었기에 묻기를,
“이것이 무장으로부터 온 것이냐.”
하니, 그 사람이 깜짝 놀랐다.
무릇, 세상 일이란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본래 죄가 안 되는 법이다. 산을 끼고 바다를 뛰어넘으라 할 때, 신하로서,
“할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했다고 하여, 조정에서 벌을 주는 그런 이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마땅히 모든 서적을 책 이름만 기록하고, 그 권수를 자세히 조사하고 보고하기를,
“한우충동(汗牛充棟)(주6)할 정도의 서적을 졸지에 초록할 가망이 전연 없으므로 책 이름만을 기록하였다.”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견책을 당하더라도, 오직 웃음을 머금고 순리대로 행해야 하거늘, 이에 강도의 습관으로 보물을 함부로 버린다면, 저들이 우리를 무엇이라 하겠는가?
매양 일을 당할 적마다 오직 순리를 따르도록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벼슬이 떨어질까 겁내는 일이 없으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1. 표류선에 대하여 정황을 묻는 일은 반드시 섬에서 일어난다. 섬사람들은 본래 모두 호소할 곳 없는 불쌍한 사람들인데, 조사하는 일에 따라간 아전들이 조사관의 접대를 빙자하고, 침탈(侵奪)을 자행하여 솥ㆍ항아리 등까지 남은 것이라고는 없게 만들어 놓는다.
표류선이 한번 지나가면 몇 개의 섬은 온통 망해 버리므로, 표류선이 도착하면 섬사람들은 반드시 칼을 빼 들고 활을 겨누어 그들을 살해할 뜻을 보여, 그들로 하여금 도망쳐 버리게 한다.
또 간혹 바람은 급하게 불고 암초는 사나워, 파선 직전에 있는 자들이 울부짖으면서 구원을 청하여도, 섬사람들은 엿보기만 하고 나가 보지 않으며, 침몰하도록 내버려 둔다. 배가 침몰하고 사람이 죽고 나면, 이웃끼리 비밀히 모의하여, 배와 화물을 모조리 태워서 그 흔적을 없애버린다.
10여 년 전에, 나주의 여러 섬에서 자주 이런 일이 있었는데, 타버린 염소 가죽이 수만 벌〔領〕이고, 타버린 감초가 수만 근이었다. 혹 불에 타서 남은 것들이 있어서 내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본래, 어두운 수령이 아전들을 단속하지 못하고, 나쁜 짓을 마음대로 하게 버려두므로, 백성들도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해 버리는 것이다. 해외 여러 나라가 이 소문을 들으면, 우리를 일러 사람의 고기를 포를 뜨고 씹어먹는 나라로 여기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표류선의 정황을 조사하는 관리들은 눈을 밝게 뜨고 엄밀히 살펴서, 아전들의 침해를 엄금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따로 큰 집 하나를 빌어서 가마솥을 늘어놓고, 그들 일행의 아전들을 다 함께 같은 집에서 거처하게 하며, 그들이 먹는 쌀이나 소금도 관에서 돈을 주어 사들여서, 날마다 수량을 배정하여 지급하는 것이 좋다. 나오는 날에 따로 조처하여 한 톨의 쌀이나 한 줌의 소금이라도 백성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한다면, 아마 하루의 책임을 조금은 메울 수 있을 것이다. - 필경에는 육지 사람이나 섬사람에게 조금씩 징수하게 된다. -
1. 좋은 것을 보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니, 작은 일이라도 그래야 한다.
오늘날 해외 제국의 선제(船制)는 기묘하여 운항에 편리하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였는데도 선제가 소박하고 고루하다. 매양 표류선을 만나면, 그 선제(船制)의 도설(圖說)을 각각 자세히 기록해야 할 것이니, 재목은 어떤 나무를 썼고, 뱃전 판자는 몇 장이고, 길이와 넓이 그리고 높이는 몇 도나 되며, 배 앞머리의 구부리고 치솟은 형세는 어떠하며, 돛대ㆍ선실의 창문 만드는 방법과 상앗대ㆍ노ㆍ키ㆍ돛의 모양은 어떠하며, 유회(油灰)(주7)로서 배를 수리하는 법과 익판(翼板)(주8)이 파도를 헤치게 하는 기술은 어떠한가 등의 여러 가지 묘리를 자세히 물어서 상세하게 기록하여 그것을 모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표류인이 상륙하면, 곧 큰 도끼로 빠개고 부수어 즉시 불살라 버리니, 이는 도대체 무슨 법인가? 뜻있는 선비가 이미 이런 일을 맡았으면, 마땅히 이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1. 외국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가엾게 여기는 빛을 보여 주어야 하며, 음식 등 필요한 것을 줄 때는 싱싱하고 깨끗한 것을 주도록 하여, 우리의 지성(至誠)과 후의가 얼굴빛에 나타나도록 하면, 그들이 감복하고 기꺼워하여 돌아가서 좋은 말을 할 것이다.
[역주]
[주-D001] 정위조(精衛鳥)가 …… 것 :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우족(羽族) 정위(精衛)조〉에 의하면, 정위조는 까마귀와 비슷한데, 옛날 염제(炎帝)의 딸 여와(女媧)가 동해(東海)에 놀다 물에 빠져 죽어 그 혼(魂)이 화하여 된 것이기 때문에, 항시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우려 했다 한다.
[주-D002] 이유수(李儒修) : ?~1822. 자는 주신(周臣), 호는 금리(錦里),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벼슬은 장령(掌令)을 지냈다.
[주-D003] 삼례의소(三禮義疏) : 청나라 때 편찬된 《주례(周禮)》ㆍ《의례(儀禮)》ㆍ《예기(禮記)》를 주해(注解)한 책. 총 178권으로 되어 있다.
[주-D004] 십대가문초(十大家文鈔) : 명나라 때 모곤(茅坤)이 한유(韓愈)ㆍ유종원(柳宗元)ㆍ구양수(歐陽脩)ㆍ소순(蘇洵)ㆍ소식(蘇軾)ㆍ소철(蘇轍)ㆍ왕안석(王安石)ㆍ증공(曾鞏)의 글을 뽑아서 한 책을 만들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라고 칭하였는데, 청나라 때 저흔(儲欣)이 이고(李翶)와 손초(孫樵)의 글을 거기에 더 보태서 《십대가(十大家)》라 하였다. 《십대가문초》는 바로 십대가의 글을 뽑은 것이다.
[주-D005] 연감유함(淵鑑類函) : 청나라 때 장영(張英) 등이 왕명을 받아 고사성어(故事成語) 등을 편찬한 책인데, 총 450권이다.
[주-D006] 한우충동(汗牛充棟) : 책이 많음을 비유한 말이다. 싣고 다니면 소가 땀을 흘릴 만큼, 집에 쌓아두면 마룻보에 닿을 만큼 많다는 뜻이다. 《柳宗元 陸文通墓表》
[주-D007] 유회(油灰) : 기름ㆍ재ㆍ솜을 섞어 만든 물건으로 나무의 구멍 등을 메우는 데 쓴다.
[주-D008] 익판(翼板) : 배의 앞에 대는 판자이다.
漂船問情。機急而行艱。勿庸遲滯。爭時刻以赴。
漂船問情。其所自勉。凡有五條。
〇一。異國之人。禮當相敬。吾人每見彼人剃髮夾袖。心懷慢侮。接待問答。動失體貌。將使佻薄之名。達于天下。此一戒也。恪恭忠信。如見大賓可也。
〇一。國法。凡漂船中所有文字。毋論印本寫本。盡行鈔報。往年有一漂船。滿載書籍。幾千萬卷。泊於茂長外洋。問情。諸官議曰。將欲鈔報。如精衛塡海。如有刪拔。必城火及池。遂掘沙場。以累萬卷書。埋之沙中。漂人大痛。亦復奈何。李友儒修。後爲茂長宰。得沙中出書數帙。若三禮義疏,十大家文鈔。猶有浸漬之痕。余到康津。得淵鑑類函一卷。朽敗已甚。問曰。此從茂長來耶。其人大驚。大凡天下之事。力所不能。本無罪罰。挾山超海。臣曰。弗能而朝廷罪之。有是理乎。則宜臚陳書籍。但錄書名。詳其卷數。辭曰。充棟汗牛。猝無鈔寫之望。故但錄書名。不亦可乎。此而遭譴。唯宜含笑就理。乃行椎埋之習。暴殄球璧之寶。彼將謂我何哉。每遇一事。唯以循理爲心。勿以失職發怯。則無此事矣。
〇一。問情必在海島。島民本皆無告。吏隷從行者。憑藉接待。恣行剽劫。錡釜缾罌。悉無殘餘。一經漂船。數島必亡。故漂船到泊。島民必拔劍關弓。示以殺害之色。使之遁去。又或風急石惡。禍迫呼吸者。哀號乞救。而島民窺而不出。任其覆沒。旣沒旣死。四隣密議。焚船燒貨。以滅其跡。十餘年前。羅州諸島。屢有此事。羔皮焚者數萬領。甘草焚者。數萬觔。其或逸出於火中者。余親見之矣。若是者。何也。本由昏官不戢吏隷。使之縱惡。故民亦垂泣而爲是也。海外諸國。若聞此事。不以我爲脯人噉人之國乎。故問情官。宜明目嚴察。禁其侵虐。謂宜別借一大室。列置錡釜。使一行吏隷。咸處一室。其所食米鹽。官以錢貿入。排日支放。出來之日。別自區處。一粒之米。一撮之鹽。毋貽民害。則庶乎一日之責。得以小塞也。畢竟區處陸民島民。宜略略攤徵。
〇一。見善而遷。小事皆然。今海外諸國。其船制奇妙。利於行水。我邦三面環海。而船制朴陋。每遇一漂船。其船制圖說。各宜詳述。材用何木。舷用幾版。長廣高庳之度。低仰軒輊之勢。帆檣蓬綷之式。櫂櫓桅柁之狀。油灰艌縫之法。翼板排濤之術。種種妙理。宜詳問而詳錄之。以謀倣傚。顧乃漂人下陸。遂將巨斧。劈之析之。卽時焚滅。此又何法也。有志之士。旣差是役。宜以此爲心。
〇一。與彼人言語。宜示仁惻之色。其飮食所需。務要鮮潔。至誠厚意。發於顔色。庶彼感悅。歸有好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