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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고 외치라2
이사야서 풀이 2. 信天함석헌
「이사야서」를 중심으로,II
혼자라도 항거할 줄 알아야……
너 정말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평화주의에 입각해서 산업선교 하는 거냐? 그렇잖으면 적어도 만족은 아니 하더라도 풍으로 마르크스주의 혹 무슨 그런 거 영향받지 않았냐? 안 받았다고 할 사람 많지 못 할 거야. 바로 이게 문제라 그 말이야. 그러니까 순수한 비폭력으로 하지 않고는 노사관계 바로 안된다, 이런 것을 우리더러 지금부터 깊이 반성해보라고 그러는 거요. 하지만 우리 편에서 생각을 하면 그런 것을 아주 좋은 기회로 삼아서 깊이 반성할 수가 있어요. 그런 게 없었던들 우리가 잘된다, 잘 된다 이래 가지고 미처 생각 못하고 불순한 생각을 그냥 가지고 갈 수도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 반성은 많이 할 수 있어요. 나 자신에게 관계 안된다고 범연하게 지내지 말고 어차피 이건 민족적으로 당한 문제요, 세계 인류적으로 당한 문제니까 이런 데서는 사양을 하지 마시오. 공자님의 좋은 말이 있어. 선을 행하는 데서는 선생님이라도 사양해서는 못쓴다고
처음에 되지도 못할 일에 앞장을 서서는 그건 못써. 그러진 마시오. 생각으로만 그럴 게 아니라 성경을,「이사야」면「이사야」를 잘 읽어 가노라면 어느 때 그 확신이 올 거예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우리도 할 일이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사람은 보람이 있어야 사는데 무엇을 하는 게 보람된 일이겠나? 멋으로 가지고는 보람된 일이 안 생겨. 거기 넘어가지 마시오. 거 나쁜 놈들이야. 그림깨나 그린다고 음악깨나 한다고 밤낮 멋이라고 그 소리 해가지고 사람 다 못쓰게 하고, 텔레비는 농촌에까지 들여보내가지고 시에미 며느리가 같이 앉아, 에미 딸이 같이 앉아 그걸 보곤 멋지다고 그러고, 그러고서 민족이 옳게 될 리 있어요
거기 대해선 혼자라도 항거할 줄 알아야 돼. 보겠거든 스위치 껐다가 필요한 것만 딱 보든지, 보는 겸인지라 이것도 좀 볼까, 그럭하면 어느 결에 그것이 내 마음에 흘러들어서, 그럭하곤 거기 성령의 감동 안 와요. 올리가 있어요?
그렇게 문명의 아주 나쁜 구정물 속에 우리가 사니까 이젠 우리 자신이 맑게 하도록. 나도 최근에 와서야 우리집에 정수기 갖다 달았어. 아닌게 아니라 수도물이, 다 같이 먹는 수도물이, 먹으면 죽겠는데, 거 나쁜 건데, 또 사실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신용 있다고 해서 삼만 오천 원이나 주고 정수길 갔다 끼웠는데 수압이 낮으니까 나오질 않아. 새벽이나 돼야 요렇게 나와서 맑은 물이나 받아먹습니다마는 몸에 정수기를 끼우지 않고는 안되겠거든 지식의 정수기를, 마음의 정수기 으레 끼워야 돼. 다 듣지 마시오. 그러니까 다 돌아가는데 할 수 없지. 그 라디오들을 수밖에 없지 않아요. 쓸데없는 소리 하거든 꺼버리시오! 장사치의 광고 내가 왜 들어쥐! 뭣할려고. 나는 세상이 나 같다면 장사 하나도 안돼 갈 거라고 그래. 저 암만 그래도 난 까딱없어. 광고 듣지 마세요. 열 번이래도 나오면 꺼버려. 뉴스만 듣겠으면 뉴스만 듣고. 그건 들어, 그건 안 들을 수 없지. 그건 들어야 하는데 그러자니 좀 어렵지만 어렵더라도 그렇게라도 해서 좀 갈라가면서 할 생각을 해야지. 멍청하게, 물에 물 탄 듯 그럴 수는 없다 그 말이야.
영원히 살아 있는 시
그 다음 계속해서
한 소리 있어 명하신다. “외쳐라”
마음 속에 “외쳐라” 하는 소리가 들려. 그러니까 이사야가 “무엇을 외칠까요” 하고 나는 물었다.
“하고 나는 물었다” 그렇게는 안돼 있어. 요새 글로 쓰니까 그렇지. 이거 개역은 개역인데 그전보다 맘에 안 드는 점이 많이 있어요. 이담 여러분이 원어 많이 배워가지고 좀 잘 번역하도록 해보시오.
모든 인생은 한날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진다.
스쳐가는 여호와의 입김에.
백성이란 실로 풀과 같은 존재이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이건 정말 영원히 살아 있는 시예요. 시를 쓸려거든 정말 이렇게 써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시가 그렇게 많긴 많은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를 시만 많아. 그건 내가 또 도매금으로 남의 시 너무 멸시하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시는 홍(興)하기 위해, “시(詩)는 흥야(興也)라.” 시는 일어나기 위해, 정신이 일어나기 위해 읽는 거지. 거저 뭐 멋지게 놀기 위해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러게 옛날 사람은 “시(詩)는 언지야(言志也) 라.” 시는 뜻을 말하는 거다, 말할 뜻이 있으면 시도 쓰지만 뜻도 없이 그저 말장난으로만 “태양이 하품을 한다, 구름이 낮잠을 잔다.” 그까짓 소리는 안 들어도 괜찮아. 그건 말로 꾸미는 거예요. 사상은 없는데 말 로 꾸며본다고 하는 거. 영 아무것도 뜻이 없는 미(美)를 지어볼려고, 의미가 없는 미(美)를 만들어볼려고, 그런 미 몰라도 괜찮아.
참은 참이기 때문에 참을 붙들면 참 그 속에 미가 있어요. 진선미(眞善美)라고 하는 그 미, 그래 아까 을지문덕이 한걸 보면 그대로 거기 멋이 있고 미가 있어요. 전쟁을 해 일곱 번 패했는데, 시로 써보냈는데, 그래도 안되니까 반격해라, 그래 청천강에서 모두 내리몰아서 없애버렸다고 하는 말인데, 그런데 참을 하기만 하면 거기 미가 저절로 따르지 않아요?
참이 뭔지는 잊어버리고, 그럭하고 미를 만들어볼까. 세상이 얼마나 깝대기가 됐으면 미스 유니버스 내보고 미스 아시아 내고. 미스 코리아 내고 미스 월 내자고. 그건 해 뭘하는거야. 할 일이 너무 없어서, 할일을 내버리니까 세계가 이렇게 답답해져서. 이제 언제 미·소 전쟁이 나겠는지 모르는데, 미스 유니버스는 뽑아서 뭘 하겠단 말이야. 한국 한 구석에서 내가 그따위 욕하기로서 무슨 효력이 있겠소마는 괜찮아, 하나님이 들으실 줄 알고 욕이 나가거든 욕하시오. 그런 거 욕 좀 해야 돼. 뭣이고 흉내내느라 신문마다 신문마다 그런 거 왜 하는지 아시오? 독자 늘여서 돈 뽑아낼려고 그러지 우리 사람 되라고 하는 줄 아시오? 천만에! 그런 소리 아예 듣지 마시오. 할 수 없으니까 그놈의 신문 보기는 보지만, 그놈들이 그러기 위해 하는 건 줄 알고 안 넘어갈 때는 안 넘어가야지. 이건 그저 외국 예술품 갖다가 전람회하는데 좋다 좋다 가보고, 춤춘다고 해도 가보고, 씨름한다 해도 가보고, 그럭하느라고 내 밑천 다 팔아먹고. 돈의 밑천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 양심의 밑천이 다 없어지고 말아요.
두려워 말고 외치라 !
그래 아까 하던 말 내가 중가운데 잊어버려서 지금 생각나니까 합니다만, 해방될 무렵에 우리 민족의 마음이 지쳤다 그 말이야. 왜 그런고 하니 해서는 안되는 일인 것을 내가 내 양심을 죽이면서 일본 사람에게 복종했다 그말이야. 너 이름 고쳐라, 이름 고치고, 성 고쳐라, 성 고치고 그러니 우리 한국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명령이 자동적으로 안 와. 내가 왜 한국사람인데 내 성 고친단말이야. 할 수없이 누르는 것 무서우니까 고쳐놓고, 핑계가 애들 학교 보낼려니까 할 수 없지. 그러고는 이제 야마모또도 되고 야마다도 되고 나까야마도 되고, 모두 그랬단 말이야. 그랬으니 양심이 이게 불 맞은 쇠야. 쇠가 불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낙철이라 그랬어. 불 맞은 쇠 같아서 아무것도 못해. 나오라니까 군인으로 나갔지. 못할 짓을 양심에 거스리면서도 내가 살려니까 할 수 없지. 이 육체가 살려니까 할 수 없지, 그러고 이 양심이 형편이 없어졌단 말이야. 그런 민족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한단 말이야. 만일 그런 역사가 계속이 됐던들 사람질 못하고 말았어. 일본 사람의 종 노릇이나, 일본 사람이 고등관리는 시킬 리가 없고 그저 아랫일이나, 하니까 밥은 벌어먹고 새낀 낳아 가겠지만 노예 살림이지 신통한 거 없었을 거요. 민족문화고 뭐고 없고.
아, 그런데 갑자기 우리가 싸워 이긴 것도 아닌데 해방이 턱 됐다. 그러니 이게 다른 게 아니고 “하나님의 무조건 용서라” 그말이야. 여기 지금「이사야」40장 “내 백성을 위로하고 위로하라.” 왜? 너무 지친 걸 채찍으로 치면 죽어버리지 살아갈 가망이 없으니까. 저걸 살려 힘을 쓰도록 할려면 “야 문제 없다, 내가 이제부터 말썽 안 시킬 거니까 나부터 안심해라.”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형제끼리 싸움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와 싸운 셈이지. 이 세상의 아버지와 싸웠다면 하나님과 싸운 거야. 하나님과 전쟁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 불행이 오는 건데, 예언자들은 그렇게 본 사람이야.
그러니까 문제가 해결이 될려면 어떻게? 하나님과 둘 새가 풀려야겠는데 그렇다면 무조건 용서를 선포하지 않고는 안돼.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하나님이 그런 예언을 주신 거요. 그래서 이 백성이, 지치고 지쳐서 살 보람을 못 느끼던 민족이 외국에서 포로로 됐다가 거기서 오면서도 노래 부르면서 돌아오고, 묵은 데를 다시 갈고 무너졌던 성을 다시 쌓고, 거 얼마나 소생하는 기운이 있었겠나! 우리 해방 후에가 꼭 그런 거예요. 그래서 나는 참 좋았어요. 나는 그때 그대로 안 있고 면자치위원장, 군자치위원장, 도에선 교육부장, 이제 생각을 하면 호랑이 담배 먹던 얘기, 철이 없어 그랬지, 거 뭘 하러 나갔겠어요.
너, 시온아,
높은 산에 올라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너, 예루살렘아,
힘껏 외쳐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질러라.
두려워 말라는 소리 잘 알고 넘어가야 돼. 겁이 있어서는 못써. 겁이 없어야 해. 두려운 생각을 말아야 하는데, 사람이 왜 두려워하느냐 그러면 욕심이 있기 때문에 두려운 거예요. 욕심의 중심은 뭔고 그러면 나, 자아라는 거예요. 자아가 요것 못 놔 하면 할 것도 많고, 할 것 많은 다음은 겁이 많아져. 그러게 가족이 없는 사람보다는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겁이 많고 양심이 약해지기 쉽고, 학문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는 또 약해지기 쉽고 지위 있는 사람은 물론 그렇고. 그러니까 이상은 무소유(無所有)라,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가지지 말라는 말은 그저 아무것도 없이 하라, 그런 말은 아니에요. 돼오면 가질 수도 있지. 하지만 내 거로 알지는 말라 그 말이야. 집을 내가 쓰고 있다, 친구가 지어 줬다, 소유하지 말라고 그래서 내 집 안 가질거야 그럭하고 거지노릇 할 거야. 그럴 생각이 있으면 그래도 좋아요. 하지만 구태여 그럴 것까지는 없고, 호의로 해서 받을 만한 거는 받아도 좋아요. 나도 친구가 지어준 집에 살아요. 하지만 그거 내 거거니 하는 생각은 말라 그 말이야. 이것은 친구가 준 거니까, 하나님이 준 것이지. 이 세상에 만일 하나님이 안계시다면 까닭도 없는 친구가 나한테 집 줄 리 있어요? 하나님이 시켜서 그런 거니까 그걸 내 거라고 그럴 수가 없지. 하나님의 집에 세를 들어 사는 경우 그건 관리인으로 있는 것. 돈을 가져도 그렇고, 심지어는 기술까지도 학식까지도 그렇게 생각해야 옳은 거야. 안 그러면 그거 언제 잃어버릴까봐 맘이 약해져.
유다의 모든 도시에 알려라.
너의 하나님께서 저기 오신다.
아주 구체적인 말이에요. “하나님이 저기 오신다.” 이건 상상으로 참고서를 읽어가지고 학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눈에 반드시 보였어도 혹은 안 보였어도 괜찮아. “하나님이 오신다.” 지금 이 시국에 하나님이 오신다! 아주 그런 걸 실감한 사람이야. 체험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힘이 나겠나, 안 나겠나? 보시오. 요점은 너를 보지 말고 이제 하나님이 일어서서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오시는 거니까, 그러니까 용기 내라! 용기 낼 뿐 아니라 그 하나님 오시는데 길을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
길 준비가 뭐야? 평탄해야 하지 않아? 마음의 갈피갈피, 높은 부분 낮은 부분, 어떤 것 너무 교만해 못쓰고, 어떤 건 너무 음험해서 못쓰고 그런 거 없애라 그 말이야. 여기 이 사막을 고쳐라. 결국은 여기 이 속을 설명하는 건데. 내 가슴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환히 뚫려 뵈도록 까지.
곡절을 알 수가 없어
이 세상에선 내 처지도 좀 생각해주시오. 이 곡절을 알 수가 없습니다. 곡절이 뭔고 하면 꼬불꼬불한 길이야. 체제가 어떻게 됐는지 곡절을 알 수가 없어. 옳지 못한 건 다 꼬불꼬불이야. 하늘에서 뜨는 해는 환하게 나요. 꼬부라진 데 어디 있어요. 하늘에 뚫린 분인데 왜 꼬부라지겠어요. 세상이 정당한 것일수록 옳은 것이 올 때에는 나는 미리 통지하고 간다, 그런단 말이야. 연애할려고 할 때는 몰래 해야 돼. 그러니까 그거 해서 소용없는 거야. 데이트 할 때는 내놓고 하면 될 수가 없지 않아? 사람이니까 약해서 그럴 수 있기는 있지만, 그럴 때 그만 데이트가 재미있어지면 내 양심이 죽어버려. 그래 그걸 벗어버려야 하겠는데 안 벗어져. 그게 큰 문제라 그 말이야.
그래 그 힘은 이거라도 보느라면,“사막에 하나님의 길을.” 뜨끔해. 그게 무슨 소린고 하니 감추는 것 없애란 말이지. 어느 모퉁이에서만 만나지 말라는 말이지. 구구하게 편지해가지고 하지 말란 말이지. 그러는데 평안이 왜 없겠어요. 거기다 “그렇습니다. 나 숨길 것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숨길 것 없습니다. 나 안됐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게 이제 용서받는 거야.
시간 많이, 너무 많이 갔습니다.
40장 마지막이나 읽고 그만둡시다.
이건 안 읽을 수 없어.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런 주장을 펴느냐?
“여호와께서는 나의 고생길 같은 것은 관심도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내 권리 따위, 알은 체도 않으신다.”
너희는 모르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여호와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
땅의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힘이 솟구쳐 피곤을 모르시고,
슬기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힘이 빠진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기진한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청년들도 힘이 빠져 허덕이겠고
장정들도 비틀거리겠지만
여호와를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나리라.
날개 쳐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
씨알의 소리 1979. 11 89호
저작집; 21- 49
전집; 11-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