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조용합니다.
오늘은 자기가 학교지킴이(요즘 초등에서는 ‘일직’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남?)라며 혼자 상 차려 먹은 아내는 일찌감치 집을 나섰고 올해 고 3이 되는 아들 녀석도 소젖에 말은 시리얼을 깨작깨작 쳐먹더니만 두툼한 패딩점퍼로 중무장을 하고는 커다랗고 무거운 배낭 책가방을 둘러매고 아파트 상가 안의 사설도서실로 향하는데 현관문을 나서는 그 뒷모습은 떠블백을 메고 (입시) 전장으로 나서는 병사입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딸아이는 어젯밤 아예 집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성당 미사를 드리고 친구 집에서 자겠다는 귀띔을 지 엄마에게만 살짝 한 모양입니다.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집에서조차 내가 ‘불가촉천민’이 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현실입니다. (요즘 나에게 안기는 유일한 호모에렉투스(직립보행인)는 희산이뿐!! ㅠㅠ)
그 혼자만의 집에서 방금 전 숙제 하나를 끝냈습니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의 국민참여 박석 후원에 드디어 등록을 한 것입니다.
내년 5월 말에 완공 예정인 노 前 대통령 묘역 조성 공사를 하면서 전체 3만 8천여 개의 박석 중 1만 개를 국민 참여 방식으로 기부를 받는데 돌 값, 글씨 새기는 비용, 시공비 등의 비용으로 박석 1 개 당 5만 원 이상의 기부를 하면 15 자 이내의 추모 문구를 넣을 수 있습니다.
위의 글 제목은 그 박석에 새겨질 나의 문구입니다. 후원자의 이름을 함께 집어넣을 수도 있었지만 문구중의 ‘나’는 일종의 제유법으로서(캬, 이 전문용어!) 하는 짓거리가 나와 비슷한 ‘우리들’, 더 나아가 ‘국민 모두’이면 참 좋겠다는, 겸손하기가 이를 데 없는 나의 소박한 바람으로 내 이름 석 자는 뺐습니다.
생각해보면 ‘두목님’은 조직원들을 참 고달프게 했습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하여 그 ‘♬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국회 앞이며, 여의도 문화공원, 서울역 광장, 정부청사 후문 등에서 풍찬노숙 하게 하더니만, 이라크 파병 · FTA 라는 당신의 우회전 지령으로는 시청 앞 광장, 광화문 네거리를 휘저으며 악쓰게 하더니만, 급기야는 본인의 탄핵으로 또 몇날 며칠을 종로 육조거리, 그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종이컵 촛불로 우리들 시린 손을 녹이게 하셨던가요.
그러고는 돌아가셔서까지 조계사로, 대한문으로 우리들 집단 발품을 팔게 하고는 지난 가을밤, 그러니까 10월 9일 밤에는 '노무현재단 출범 기념 콘서트 -'Power to the people'‘를 구실로 저 서울 끝자락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로까지 아랫것들을 또 불러내셨습니다. 그 외진 경기도 역곡의 경계에서야 겨우 행사가 허락됨은 야박한 명박이패들의 소행이었겠지만.
그래도 온수역에서 대학 정문까지의 꽤 먼 길 따라 이어진 노란풍선을 좇아서 그 노란풍선만큼이나 화안한 은행나무가 인상적이었던 대학 캠퍼스에 들어서니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가 그동안 막힌 가슴을 뻥 뚫어 주었습니다.
그날은.... 참,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당시 몸이 편찮으시다는 권양숙 여사님도 봉하마을에서 일부러 올라오시어 손 흔들어 인사를 하셨고 유·무형의 눈치와 압력을 물리치고 달려와 열창하는 윤도현, 이해철, 강산에, 우리나라, 김제동도 이심전심 고마웠으며 100여 명으로 급조된 시민합창단도 감동, 그 자체였지만 그날, 무엇보다도 내 사방 반 뼘의 심장을 울컥, 하게 만든 것은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장관의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장하진 前 여성부 장관, 조기숙 前 청와대홍보수석, 이재정 前 통일부장관, 정연주 前 KBS 사장의 공연이었습니다.
노래 실력?....이야 ‘(공연 준비를 하며) 우리가 정치적으로는 동지가 될 수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절대 동지가 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는, 사회자 권해효의 우스갯소리가 꼭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 정도의 고만큼 실력이었지만 그래도 한때는 일국의 재상이었던 분들이 저렇게 무대 위에 함께 올라 절절하게 ‘상록수’와 ‘아침이슬’을 화음 맞추어 부름은, 참여정부만이 가능한 문화 의식이며 수준이며 역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두목’이 꿈꾸고 우리가 소망하는 <사람사는세상>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현실로 되돌아옵니다.
그제 방학도 했고 아∼흠, 미루었던 숙제도 오늘 끝내어 한층 여유로워진 김에 몇 자 끄적여 보았습니다. 추수 끝난 들녘처럼 까페가 갑자기 썰렁하게 느껴지기도 해 10月의 저들처럼 和而不同 어울렸음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이 아름다운 문장, 재민이네 곶감 엮어 말리듯 무진 공들여 엮어보았습니다.
엮는 중에는 (그 누구네 집과는 딴판으로) 방구들이 따듯해 좋았던 도리실의 메기매운탕 집에서 또 한 번 희산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지난 가을밤의 성공회대 공연 모습.
첫댓글 쌔앰~~~ 그래서 그렇게 쌤 눈이 맑은 거지요. 그 박석기부에 아까워 가게도 참여해야 겠어요. 우리 동네 화선이가 노사모 후원회원이고 열혈 동지니까 자세한 거 물어보고요(무정부주의자로 산지가 좀 되어서.... ). 흐트러지는 마음에 침하나 꽂아주시니 다시 마음을 세웁니다. 방학했으니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