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토요일 오후 2시 지하철 4호선 회현역 4번 출구에서 신장학회 등산팀들이 만났다. 황 승덕선생, 이 근후선생, 제일기린의 강이사와 보령제약, 아스트라의 한 친구 등 6명이 일행이다. 오늘은 남산을 한번 올라 보자는 것. 사실 서울에 오래 살다보면, 서울이 고향이던 아니던, 남산에 얽힌 추억은 한두 가지씩은 있게 마련이고, 그동안 남산은 많이 변하였기 때문 궁금하기도 한 차이었다. 남산 오르는 길은 여러 갈레가 있으나 오늘의 일정은 이곳에서 올라 팔각정으로 해서 국립극장 쪽으로 빠지는 코스로 주로 성벽을 따라 걷는 것.
위의 새로 개축한 성벽
오늘의 시발점
잘 닦여진 길
오늘의 일정에 대하여 이선생이 설명하고 있다.
새로 단장된 길을 오른다. 새벽에 온 진눈깨비가 성벽의 그늘에 있어 초입에 한번 크게 미끄러질 뻔하였다. 김 유신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은 먼발치에서 보고 말썽 많았던 어린이 회관은 서울시에서 쓰고 있구나.
위의 건물이 얼마 전 새로 문을 연 안 중근의사기념관이다.
그래도 이 분의 글은 힘이 느껴진다.
선생님의 휘호가 커다란 바위에 새겨 있어 한자 한자 음미하며 읽는다.
이 사진으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확실하게 들어난다.
시간이 없어 내부는 둘러보지 못하고 후일을 기약하며 휑하니 없어진 식물관 자리를 지나 아담하게 지어진 화장실 건물을 지나.
성벽을 오른 쪽에 두고 걸어가는데.
날씨가 사나워지면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 등산복차람의 우리야 별 문제 없지만 데이트나온 사람들의 몰 꼴은 좀 불쌍하게 보인다. 그래도 남자라고 웃옷을 벗어 여자한테 씌우고는 얼굴이 파랗게 되어 벌벌 떠는 모습이란.
서울 시내는 황사인지 뿌옇게 흐리다.
이선생이 이 성벽은 쌓은 모양으로 보아 태조 때 것이라며 밖을 내다 보라하여 보니까 올라오기 힘든 자리이다.
바람이 잦은 곳에 예전에 지은 정자와 벤치가 있어 황선생이 남대문시장에서 사 온 만두 두 가지를 먹는다. 아직 따끈 따끈하다.
가메손만두는 항상 줄지어 가다려서 산 다는 곳, 하나에 오백원이고 만두피에 표가 있는 것은 약간 매운 만두이다.
각각 하나씩 맛보았더니 예사 맛이 아니다. 황선생이 아들들한테, 외래간호사한테 물었더니 모두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집이라 한다.
여기에서 황선생이 준비한 뜨거운 물에 두유차 한잔을 마시고 나니까 며칠째 속탈이 나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였는데 힘이 난다.
사실 군것질하며 올라가는 것도 괜찮은데.
쉼터에 써 놓은 시 한수를 읽어 보며
향수의 시인 정 지용
누군들 이 시를 모를 수가 있을까.
봉수대에는 철없은 아이들만 기념촬영을 하고 있네.
팔각정 주변에는 놀러 온 사람들이 많다. 외국인들도, 지방에서 올라 온 사람들도. 하기사 서울에 처음 구경 온 사람들은 가장 중심지인 남산이 관광의 요체가 될 수도 있겠다. 남산 전망탑은 초석에 1969년에 공사시작하여 1975년에 완공되었다. 라고 나와있으나 청와대가 조망된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가 나중 개방되었다.
모처럼의 단독사진
나도 언젠가 파리의 몽마르뜨르광장에서 그린 적이 있었는데.
어릴 때 소풍을 가면 따라와서 사먹던 솜사탕
남산골 한옥마을로 내려 왔어도 되는데.
일부러 잘 닦여진 도로를 두고 성벽 바깥의 흙길로 내려 왔다.
우리가 내려 온 길과 다른 길, 아마 성벽 안쪽으로 새로 정돈된 길인 갑다.
언젠가 이길도 한번 내려와 보아야 겠다.
축조연대가 다른 성벽, 확연히 구별이 된다.
이 성벽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온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지금 최고급 반얀트리리조트로 개장.
결혼식이 한창인 자유센터 마당을 지나면 다시 만나는 성벽길
정자 옆을 돌아
끝에서 다시 성 밖으로 나온다.
성벽에는 문루가 있고 정식으로 이름이 있는 문들이 많이 있으나 이런 좁은 문이 있어 응급이나 비상사태때 성문을 열지 않고 드나 들 수 있는 암문(暗門)이다. 성의 바깥에서 찍은 것.
암문 안쪽에는 웬 오토바이 한대가 보이네.
60척마다 책임자의 실명이 들어 있다고 한다.
왼쪽부터, 이 근후선생, 황 승덕선생, 강이사, 보령제약, 아스트라제약 친구들.
이 사진을 찍고 내가 들어가서 다시 한장 찍으려니 배터리가 다했다.
내려 오다보니까 겨울 소나타 촬영장이란 곳, 여자 주인공이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KOMACO 건물. 앞에는 얼굴을 넣어 사진을 찍게 해 두었다. 지난 북촌 탐방에서도 중앙고등 앞에서 겨울 소나타 촬영하였던 곳이라며 일본 관광객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좀 이른 저녁식사로 장충동 족발집이다. 나도 한번 가보았고, 또 강이사도 가보았다는 장충동 할머니집(2279-9979) 이층에서 우선 빈대떡 두 장(5천원)과 족발 중짜리(3만원) 두 접시를 시킨다. 강이사가 일본어로 지지미라고 쓰인 메뉴를 보며 일본사람들도 모르는 것을 보니까 우리말이네요. 이선생이 덧 부쳐 지짐, 부침, 부침개 등도 우리말이지요. 막걸리 두 통도 같이 시켜서. 막걸리 한잔 씩 건배를 들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재미있게 보내는데 6시가 다되어 가니 이층 넓은 방이 가득 찬다.
참, 이 집 족발 소개가 늦었네요. 먼저 기본으로 깔리는 찬들이 따끈한 콩나물국 한 그릇씩과 동치미, 부추무침과 상추, 풋고추,마늘과 양파, 그리고 된장. 깍뚜기는 무가 달착지근하고 맜있다. 나는 이런데서 껍질 떼어나서 먹는 사람은 밉더라. 이는 비게도 아니고 순 콜라젠인데. 중짜 족발은 세명이 먹어도 먹어도 남아 결국 남겼지요. 맛이 없어 남긴게 아니고 양이 많아 남 긴 것, 걱정없어요, 남은 것 싸 달라면 금방 싸주니까. 몇년전 독일을 차를 세네어 여행을 하면서 여러가지 돼지고기요리를 맛 보았어도 이 집 족발처럼 부드럽고 맛있는 것을 먹어보지 못하였다. 오늘의 회비는 만 오천원. 주말 오후를 가족들과 아니라서 미안하지만 걷고, 역사를 배우고, 이야기하고, 맛있는 저녁과 술까지 마시고 이만하면 싸지 않나요? 다음 번은 적설기 산행으로 1월 중 예정.
첫댓글 남산 등산도 괜찮아 보입니다. 그리고.... 지지미는 이북 사투리인가 봅니다. 황해도 출신 우리 부친도 부치기( 부침개의 강원도 영서지방 사투리인지 모름...)를 지지미라고 부르셨던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