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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이었더라(수10:28-43)-2023.1.22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도 해보고 패하기도 해 보았습니다. 가장 첫 번째 전쟁은 여리고성의 전투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은 이스라엘이 매우 희한한 방법으로 대승을 거두었지요. 그러나 그것도 잠간 그들은 쓰라린 전쟁의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가볍게 여겼던 아이성의 전투에서 보기 좋게 패하고 말지요. 마치 전쟁이 자기들에게 속한 것처럼 아이성의 전투에서 방심한 거예요. 결국 그들은 패배의 원인을 하나님 앞에서 찾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죄를 철저히 회개한 후에 하나님이 주시는 방법으로 전쟁에 다시 임하여 완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이기기도 하고 패하기도 합니다. 결론은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하지만 하나님을 떠나면 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지요. 이제 이스라엘은 본격적으로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가나안의 전쟁은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전쟁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이미 가나안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셨거든요.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싸워서 승리를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전쟁은 칼과 창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인 것이지요. 이른바 그들의 무기나 군사적인 수효나 전술이나 전략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닌 거예요.
때문에 그들이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자기들의 힘을 빼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져주십니다. 이미 하나님은 가나안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셨거든요. 그래서 가나안의 정복전쟁을 이스라엘만의 싸움으로 보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전쟁인 것이지요. 왜냐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심으시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가나안 사람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이거든요. 하나님은 다만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성전을 치르는 대리인으로 삼으셨던 것이지요.
여호수아 10장을 보면 이스라엘과 화친조약을 맺었던 기브온 사람들을 치려고 동맹군을 결성했던 아모리 다섯 왕을 이스라엘이 도와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본격적으로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가나안의 남부지방을 하나씩 정복해 가는 것이지요. 먼저 아모리 다섯 왕들이 숨어 있던 막게다를 취하고 그 성읍과 왕을 쳐서 진멸합니다(28절). 그리고 다시 립나와 싸웁니다. 그리고 그 성읍과 왕을 쳐서 진멸합니다(30절). 다시 라기스로 가서 싸워 그들을 진멸시킵니다(32절). 다시 에글론으로 가서 싸워 그들을 완전히 진멸합니다(35절).
그들은 다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운 후에 그들을 진멸합니다(37절). 다시 드빌로 가서 싸워 진멸합니다(39절). 진멸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싸워서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그들이 싸워서 승리한 지역을 본문40절에서는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가나안의 어떤 곳에서든지 싸워서 승리한 것이지요. 산지, 평지, 경사지를 가리지 않고 승리한 것입니다. 전쟁을 했다하면 싱거우리만큼 쉽게 이긴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이 승리했던 기사의 내용도 아주 간결하게 정리해줍니다. ‘~과 일반이었더라’는 것이지요.
(1) 승리의 비결을 아십니까?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했던 비결을 보십시오. 아주 간단합니다. “~과 일반이었더라”는 것입니다. ‘일반이었더라’는 말은 한결같다는 뜻입니다. 변함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가장 먼저 싸웠던 막게다 전투의 승리의 비결을 관찰해 보십시오. 28절에 후미에 보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싸운 전쟁이 여리고성의 전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의 전투에서 압승을 거둡니다. 그 엄청난 여리고 성을 그들은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방식으로 이겼습니다.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여리고성을 매일 한 바퀴씩 엿새 동안 도는 것이요, 제 칠일 째는 일곱 바퀴를 도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여리고성을 13바퀴 도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 철옹성 같은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기로 작정한 여리고 성을 믿음으로 돌고 돌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방법을 그대로 믿고 순종한 것이지요. 절대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믿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도하십니다. 그리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결과는 드라마 같은 승리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깜짝 놀랐을 것이지만, 하나님도 여리고성의 전투에 임한 이스라엘의 믿음을 기쁘게 여기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성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경험을 승리의 샘플로 인용하신 것입니다. 더 이상 잡다한 설명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지요. 때문에 막게다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의 전쟁역사에 대하여 ‘여리고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고 인용한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승리는 가장 완전한 승리요, 가장 완벽한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그 전쟁의 승리를 기억하지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여리고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고 말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지요. 막게다의 전쟁에 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나 자세나 결과에 대해 이보다 더 완전한 설명은 있을 수 없었던 거예요.
한마디로 막게다 전쟁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여리고 성의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의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지요.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는 말로 충분했던 거예요.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막게다 전투에 임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자세가 여리고성의 전투에 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세와 동일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나 마음이 동일했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대로 싸웠던 것입니다. 그러니 막게다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입니다(42절).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십니다. 한결같이 변함이 없으시지요. 당연히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들을 향한 마음이 동일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리고 성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신 것처럼 모든 남부지방의 정복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42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이것이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입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은 결국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그 전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단번에 이기게 하신 것이지요(42절). 그래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삼상17:47). 여호수아를 필두로 해서 이스라엘은 본격적인 가나안의 정복전쟁에 임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략과 전술을 짜지도 않았습니다. 혹은 전쟁에서 싸울만한 병사를 계수하거나 그들의 정신무장을 교육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여리고성의 전투에 임했던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마음은 첫사랑의 마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전쟁에 임하는 자세는 여리고 성의 전투에 임하던 그 자세를 기억하는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믿음과 그 마음과 그 자세를 가지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른바 가나안의 첫 번째 전쟁, 여리고성의 전투의 초심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가나안의 어떤 부족들이라도 결코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가나안의 부족들이 아무리 잘 무장하여 전쟁을 준비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이스라엘을 대적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의 전투 때에 가졌던 그 마음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전쟁에서 승리했던 감격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초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승리했던 여리고 성의 전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 전투는 믿음의 전투였기 때문이지요. 물론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은 영적전쟁입니다. 믿는 자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입니다(엡6:12). 그래서 전쟁의 결과는 항상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믿는 자가 누구의 힘을 의지하여 싸우느냐에 따라 이길 수도 있고 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믿는 자는 당연히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전쟁은 영적전쟁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힘과 능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신으로 싸우는 전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만 신뢰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하면 그 전쟁은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난날 아이성의 전투에서 패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고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여리고 성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경험을 믿음으로 반추하여 그런 자세로 전쟁에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막게다 전투를 필두로 해서 하나씩 하나씩 가나안의 남부지방을 점령해 나갑니다. 막게다의 승리를 립나의 전투로 연결했던 것입니다. 립나의 승리를 다시 라기스로 이어갑니다. 라기스의 승리를 다시 에글론으로 이어가고, 에글론의 승리를 헤브론으로 이어갑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승리의 순간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들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경험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본문은 계속해서 ‘일반이었더라’는 말씀을 반복합니다. 마치 추임새를 넣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도 여리고성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경험을 샘플로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조금 전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경험들을 추억시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에 대한 승리의 확신을 더해주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이겼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하는 재미까지 붙였는지 모릅니다. 물론 전쟁을 좋아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붙여주신 전쟁이라면 당연히 피하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미안하지만 전쟁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들은 정작 싸워야 할 전쟁은 피하고, 싸우지 말아야 할 전쟁은 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붙여주신 전쟁이라면 좋든지 싫든지 반드시 싸워야 할 전쟁입니다. 그 전쟁은 피한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그 전쟁은 즐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전쟁의 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무려 일곱 번이나 ‘일반이었더라’(28,30,32,35,37,39절에 두 번)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먼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전쟁에 임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마음가짐이 동일했다는 말입니다. 믿음과 마음이 한결같았다는 말이지요.
(2) 이스라엘이 전쟁에 임하는 믿음과 마음의 자세가 여리고 성의 전투와 일반이었습니다
다만 한결같은 믿음과 마음의 상태를 어디서 찾는 것일까요? 본문 28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전쟁의 승리의 가장 좋은 샘플을 여리고성의 전투에서 찾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전투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것이었지요. 아무도 여리고 성의 전투에 대하여 하나님의 방법을 의심하거나 자기들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법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를 돌라하면 한 바퀴를 돌았고, 하루에 일곱 바퀴를 돌라하면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아무도 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무모한 방법이라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고 하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외치라하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죽이라면 죽였고, 살리라면 살렸습니다. 거두라면 거두었고, 바치라면 바쳤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매뉴얼대로 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 전쟁의 결과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것이지요. 물론 아간이라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물을 더럽혀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여리고성의 전투는 이스라엘이 가장 좋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잊을 수 없는 승리의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 줄을 알았던 것이지요.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믿었던 것이지요. 특별히 가나안의 정복전쟁은 더욱 그러합니다. 가나안의 정복전쟁은 영적 전쟁이기 때문이지요. 그 전쟁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과의 전쟁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전쟁을 주도하시되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리인으로 내세우신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을 아무 대책 없이 전쟁터로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앞장서십니다. 그리고 배후에서 역사하십니다.
물론 이방신들도 자기들을 추종하는 자들을 내세워 싸우게 합니다. 그래서 마치 신들의 전쟁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신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우상은 죽은 신이요,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에 능한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어떤 전쟁에서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다만 그들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간구하게 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민족입니다. 그들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던 민족입니다. 애굽에서 탈출할 때부터 목도했습니다. 애굽왕 바로와의 밀고 당기는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승리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 어떻게 싸우시는지 똑똑히 목격한 것이지요. 아무 힘도 없는 이스라엘이 애굽왕 바로와의 10라운드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 보았습니다. 또한 홍해를 건널 때도 자기들은 무사히 건넜지만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어떻게 홍해 바다속에 수장시켰는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민21:33-34). 한마디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것을 친히 목도한 것이지요. 그중에서도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 첫 번째 전투였던 여리고성의 전투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전쟁에서 그들이 어떤 자세로 임했는가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말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을 순수한 마음으로 신뢰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것이지요. 결국 하나님은 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승리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이스라엘은 어떤 전쟁을 치를지라도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자신감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었지요. 그들은 비록 자기들의 생각과 방법과 다를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전쟁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경험보다 좋은 스승이 없습니다. 전쟁도 이긴 경험이 있어야 이기기가 쉽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대부분 그러합니다.
하다못해 운동경기를 해도 이겨본 팀이 이기기가 쉽습니다. 이겨본 경험이 없으면 패배에 익숙해집니다.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현장에 나가면 괜히 불안하고 사기가 꺾입니다. 그런데 이겨본 경험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지요. 이것은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리해 본 경험이 있어야 자신감을 갖고 싸웁니다. 승리하는 사람들은 승리하는 법칙을 알거든요. 그런데 실패만 하는 사람들은 승리의 법칙을 잘 모릅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성적이 어느 정도의 레벨에 올라가 보아야 감을 느낍니다. 그래야 목표가 분명하고 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영업하는 세일즈맨들이 가장 리얼하게 경험할 것입니다. 영업사원은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라가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높은 수준의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갈 꿈을 꿉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 자신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막상 그 분야에서 도전할만한 힘도 없고, 이길 자신감도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능력도 오르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겨본 사람이 이기기 쉽고, 정상에 올라가 본 사람이 그 맛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더 유리한 국면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본격적으로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다릅니다. 정말 전쟁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전쟁에 재미를 붙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들은 기브온을 대적하는 아모리 다섯 왕들과의 전쟁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이후 전쟁의 묘미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전쟁이라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지요. 이제는 어떤 대적들이라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거예요. 그래서 이런 경험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합니다. 전쟁의 승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은 본격적인 전쟁에 임해야 합니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을 통해 전쟁에서 이긴 특별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따끈따끈한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은 이기는 비결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믿는 자는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삶의 현장 어디에서든지 이기는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영적인 전쟁에서 이긴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전쟁을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붙여주신 전쟁을 즐기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것은 피 흘리는 전쟁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싸움이 그러합니다. 믿는 자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싸움은 영적 전쟁입니다. 믿음이 없을 때는 영적 싸움의 실체를 모릅니다. 영적 전쟁의 용어도 모르지요.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면 영적 싸움의 실체가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모든 싸움을 영적인 현상으로 바라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단순히 우리 육체와 관련된 일처럼 보일지라도 뒤에는 영적인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기 전에는 그런 실체를 전혀 모릅니다.
(3)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단번에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갖게 되면 내 소속이 달라집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아군과 적군이 분명해진다는 말입니다. 이른바 싸움의 대상이 드러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이제 나의 싸움은 내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어두움의 정사와 권세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 전쟁의 승부는 오직 내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싸울 때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싸우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싸우는 자들이거든요. 그래서 믿는 자가 개입되는 삶의 모든 일들은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하다못해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도 처절한 영적전쟁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은 마귀가 가장 싫어하고 방해하는 아주 특별한 전쟁이지요.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두 번 싸우다가 넘어짐을 경험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너무 쉽게 포기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전도는 아주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만의 일이라고 변명합니다. 그는 영적 전쟁에서 패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의 숱한 거절을 통해 승리의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은 오히려 즐깁니다. 전쟁의 실체를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무장하여 전쟁에 임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는 패배의 두려움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전쟁은 승리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가나안에서 여리고성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경험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영적자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서 지나친 자신감으로 말미암아 아이성의 전투에서 쓰라린 패배를 경험했지만 말입니다. 그들이 경험한 아이성의 패배가 얼마나 그들을 의기소침하게 했는지 아십니까?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습니다. 승리의 경험을 가진 자는 자신감으로 충만하지만, 패배의 경험을 가진 자는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승리의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승리의 경험은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만 가능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은 자라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먼저 우리 안에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마음을 갖지 않았는데 주님의 마음으로 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반드시 내가 먼저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전쟁을 하나님이 주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전쟁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다만 전쟁에서 승리했을지라도 우리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이긴 후에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또 다른 패배를 경험하는 일이 종종 있거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여리고 성의 전투에서 승리했지요. 그런데 아간이라는 못된 놈이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탐욕을 부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여리고성의 전리품을 도적질 하지요. 결국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른바 아이성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는 이겨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패배할지라도 낙심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항상 그런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는 초지일관해야 합니다. 그런 자는 어떤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연속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요, 동일한 자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본문에서는 ‘일반이었더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나 마음이 여일했다는 것이지요. 다만 그 동일한 믿음과 마음을 여리고 성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샘플로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변함이 없으면 하나님은 당연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민수기23장19절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아니하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하심이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간사하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일향 미쁘사 당신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지켜주십니다. 여호와는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행한 것이 ‘일반이었더라’는 말씀은 본문40절에서 말씀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일반이었다’는 말씀이 여호와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는 말씀과 동일하다는 것이지요.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변함없는 믿음에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단번에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42절을 보십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이스라엘의 변함없는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단번에 그 땅을 정복케 하신 것이지요.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전쟁에 임한 자세나 마음가짐이 일반이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한결 같으셨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동일하신 마음이요, 한결같은 마음이며, 일반이셨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한결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종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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