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요양원 봉사 체험기
김두성
어느 시인은 “석양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나도 저무는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없을까 생각한 끝에 찾아간 곳이 OOO 아동요양원이다. 이층으로 깨끗하게 지어진 건물에 중증 정신지체부자유 아이들을 수용하고 있다.
나와 내 아내가 들어서자 많은 아이들이 앉아있거나 누워 있다. 그 중에 말을 하는 몇몇 아이는 “아버지! 엄마!” 하고, 다리가 성한 아이는 달려와 안아 달라고 가슴으로 뛰어든다. 엉금엉금 기는 아이는 다리를 잡고 늘어져 걸을 수가 없을 정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그 아이들에게는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엄마와 아빠다. 원아들 중 말을 못하는 아이가 거의 80% 정도다. 한 번도 앉아 보지 못한 아이,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한 아이, 배로만 기는 아이, 아예 난폭해서 끈으로 묶여 있는 아이, 자꾸만 머리를 아무데나 들이박아 안전모를 쓰고 사는 아이, 스무 살이 넘었어도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이. 이런 아이들을 사랑과 연민으로 돌보는 돌봄이 선생들이 모두 천사 같다. 이런 일을 하는 복지사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상인 속에서만 살아온 나는 정상적이지 못한 아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랍고 충격적이다. 숟가락질을 못해서 먹여 주는 아이도 거의 80%나 된다. 어떤 아이는 이가 있지만 씹는 지능이 없어 음식물을 아예 가위로 잘게 부수어 입에 넣어주는 아이도 많이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 중에서 몸을 몹시 흔드는 자폐증 아이를 자청해서 선택하고 처음으로 음식을 먹이려고 시도해 보았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음식을 먹이려 하니 상체를 어찌나 흔드는지 숟가락의 음식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손으로 꽉 잡고 먹이려 해도 소용없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입을 따라 먹이려 했지만 번번이 음식물을 볼이나 귀 언저리에다 쏟는다. 그런데 반짝 지혜가 떠올랐다. 아이 몸을 눕히고 먹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눕히니 몸체와 머리는 다행히 바닥에 고정되었으나 놀랍게도 양다리는 수평으로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몸의 구조가 아니다. 마치 네발짐승을 하늘을 향해 뒤집어 놓은 것처럼 몸체와 다리가 90도 각도로 굳어져 있어 두 다리는 천정을 향했고 또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참으로 기막힌 형국(形局)이다. 신이 이 아이에게 생명을 준 목적은 무엇일까?
나는 생명에 대한 회의와 연민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답답한 심정에 정신을 가다듬고 숟가락을 따라다니는 천진무구(天眞無垢)한 그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서 마치 공양(供養)하듯이 조심스럽게 먹이면서 입가로 흘러내리는 음식물을 곱게 곱게 닦아 주었다.
그날 이후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나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고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하고 외로워하면서 자학도 수없이 하지 않았는가.
그 다음부터 나는 갈 때마다 내가 자청해서 그 아이를 맡아서 밥을 먹인다. 첫날에는 불쌍한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면, 지금은 철 덜든 나에게 회오(悔悟)의 눈물 섞인 밥을 먹이는 것이다.
그 후부터 그 아이가 나를 기억하고 밥그릇만 들면 내 옆으로 기어와 미리 제 스스로 얼른 자신의 몸을 눕히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발전인가? 누워서 흔드는 양다리는 기쁨에 찬 만세였던 것이다. 누가 이 아이에게 식욕(食慾)과 생존의 본능을 주었는가? 참으로 감사하다. 신비하고 감동적인 경험이다.
돌봄이 선생 몇 분에게 물었다. “여기서 봉사 하시면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습니까?” 라고 물어 보았다, 먼저 한 분이 이렇게 대답한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밖에 아이들보다 더 빨리 자립심을 갖는 것을 봅니다.” 정상아들보다 일찍 자립한다는 말은 의외다. 또 한 분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 같이 생활 하다 보니까 오히려 여기 아이들이 정상으로 보이고 밖에 성한 아이들이 비정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정상인들이 사는 세계가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인다는 역설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또 한 분의 돌봄이 선생에게 “이렇게 말을 못하는데 어떻게 그들의 의사를 잘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까?” 라고 물어 보았다. “여기에서 일하면 다 알게 되지요. 그들도 욕구 불만일 때는 가슴을 치고 기분이 좋으면 팔을 번쩍 듭니다.” 라고 대답한다. 물론 모든 아이가 다 같은 방법이 아닌 각각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데 돌봄이 선생들은 천진하고 해맑은 그들의 눈동자를 통해서 아담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다고, 모두가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며, 아이를 못 낳는 다고 어머니가 못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어느 선각자의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예리한 촉각으로 아이의 눈빛하나 손 발짓 하나에도 그들의 감정을 감지한다. 그것은 사랑의 마력이다. 이곳 보모선생들은 세상에서 가장 선한 가슴과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참 사랑의 어머니다. 그들의 말대로 그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정상아인 것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천사 같은 돌봄이 선생들에게도 원아들을 위한 간절한 소망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 돌봄이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의 지체부자유 등급에 따라 재활치료를 위한 시설의 미흡함과 교육할 수 있는 학교가 없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라고 한다.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데 다 같은 인간인데 건강한 사람들과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 몹시 가슴 아픕니다.” 라고 한다.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란 송나라 유학자 상산의 말이 생각난다. 현대사회는 배고픔보다 불평등으로 분노한다.
아동요양원 건물은 왜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까? 또 왜 그들은 한정된 건물에만 격리수용 되어 소외된 삶을 사는 걸까? 동네마다 학교 건물 안에 장애 아동병원을 설치하여, 아이들이 직접 그 아이들을 방문하여 자선봉사의 기쁨을 깨닫게 한다면 행복지수가 더 높아질 것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는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한다. 이기심은 본인뿐만 아니라 사회를 불행하게 한다.
장애인 요양시설이 혐오시설이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장애우 들이 정상인과 똑같은 혜택을 골고루 누리며, 다른 정상인 아이들과 같은 운동장에서 함께 놀면 좋겠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남의 불행을 남의 일이라 방관하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어려서부터 자선봉사의 기쁨을 알게 한다면, 행복 바이러스를 전염시켜 자살률과 음주문화, 폭력성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