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닭 없이”
욥기는 하늘에서 열린 회의에 사탄이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뭐라고 물으셨죠? 우리의 이해로 의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너는 왜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느냐?" 이게 무슨 뜻일까요? "너는 왜 그렇게 내 통치를 누리지 못하고 만족하지도 순종하지도 않고, 발 벗고 나서서 휘젓고 다니느냐?" 하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욥을 봐라" 하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그러자 사탄이 "욥이 까닭 없이 잘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잘해 주시니까 잘하죠" 하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 속에는 "너 왜 그 꼴이냐?"는 하나님의 물음에 대해서 "내가 괜히 그러겠습니까? 하나님이 제 마음에 안 들게 구셔서 그렇죠" 하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욥과 싸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말하자면 어떤 논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너 왜 그 모양이냐?" "저는 하나님이 마음에 안 듭니다." “욥은 잘 하지 않느냐?" "욥을 쳐보십시오. 그가 까닭 없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욥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까닭 없이"라는 말은 어렵습니다. '이유 없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발언은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항복할 만한, 순응할 만한, 충분한 조건이 채워졌기 때문에 욥이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탄에게 "그래? 그럼, 그 조건을 제거해 보아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그 조건'이 무엇이냐면 사탄이 불만으로 생각하는 것이겠죠. 그 조건을 사탄에게도 주었더라면 사탄도 만족했을 그런 것 말입니다. 그래서 욥기에서 하나님이 제거한 것은 하나님 쪽에서 볼 때는 조건이 아니고, 사탄에게나 욥에게는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닥칠 재난에 대한 욥의 반응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조건으로 안 삼으시는데 우리는 조건으로 삼는 것들과의 갈등이 이제 재난이 되는 것입니다.
이 재난을 통과해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어떤 다른 조건에 의하여 성립되는 만족스러운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조건을 채우기에 바빠집니다. 10절에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까"라는 표현에서 울타리로 둘렀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의 이해의 범주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욥이 가진 이해의 범주를 만족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뒤집어 보면 사탄은 하나님을 향하여 "제게는 하나님이 그 울타리를 만족시키지 못하셨습니다" 하고 불평하는 셈입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저'는 이라고 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제 욥기에 들어가면 여러분의 이해 범주가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불평을 사탄처럼 할 수도 있고 욥처럼 할 수도 있습니다. 욥은 그 불평 속에서 진정한 이해의 범주, 즉 자신의 이해 범주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이해 범주와 통치의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욕심을 채우지 못한 자의 불평에 불과하다면 그는 사탄으로 남을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과정입니다. 이 이야기를 로마서 5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1-4)".
우리는 이미 구원을 얻은 자라는 사실과 1절에 있는 바와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자라고 하는 조건 위에 서 있습니다. 또한, 2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약속과 소망 가운데 있습니다. 이렇게 이미 일어난 것과 장차 우리가 받을 것 사이가 현재인데, 이 현재를 3절에서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현재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였기 때문에 이미 얻은 구원과 그 구원의 영광된 성취 사이는 '환난'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왜 환난입니까? 환난을 통해서만 인내를, 그 인내가 연단을, 그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당연히 그 앞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환난이 인내를 만들고, 인내가 연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이해 범주를 깨고, "까닭 없이"라고 제시된 사탄의 고소 근거를 깨고, 우리의 이해와 욕심과 조건을 깨고 하나님의 뜻과 넘치는 지혜 안으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 박영선, 《욥기 설교》, 영음사, 2014, p.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