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선교를 위한 글로벌 플랫폼으로서 로잔 운동의 비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네 개의 키워드가 필요합니다. 바로 (1) 세계 (2) 복음주의 (3) 선교 (4) 운동이라는 키워드입니다. 앞으로 총 4회에 걸쳐서 각각의 키워드가 가진 신학적, 선교학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은 “세계”라는 키워드를 살펴보겠습니다.
세계(world)는 기독교 복음의 보편성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만을 위한 좋은 소식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세계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한 좋은 소식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땅의 모든 족속을 축복하기 위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창 12:3).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은 시내 산에서 선포된 율법의 전문(前文)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온 세계는 하나님께 속했으며, 그분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온 세상에 선포해야 하는 책임을 받았습니다(출 19:5-6).
기독교 복음의 보편성은 성경이 기록된 방식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는 그 경전이 창시자의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슬람의 경전 쿠란은 무함마드가 사용했던 아랍어로 기록되었고, 유교의 경전 십삼경(十三經)은 공자가 사용했던 중국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은 아람어를 사용하셨지만, 신약 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세계 모든 종교 중에서 유일하게 창시자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기록된 경전입니다.
헬라어는 신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언어가 아니라, 당시 그리스-로마 사회의 공통어(lingua franca)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천국 복음은 처음부터 다른 언어로 표현되고 번역되었는데, 이는 기독교 복음이 특정한 언어와 문화에 뿌리내린 진리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민족을 위한 보편적인 진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서 예일 대학의 라민 사네(Lamin Sanneh) 교수는 “성경 번역은 교회의 태생적 특징(birthmark)이자,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benchmark)이다. 왜냐하면 자국어 성경 없이는 현지 교회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종교와 대비되는 기독교의 또 다른 특징은 기독교에는 다수의 중심(center)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모든 종교에는 특정한 지리적 중심이 있습니다. 가령, 이슬람의 중심은 메카이고, 유대교의 중심은 예루살렘이며, 힌두교의 중심은 인도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 시작부터 다수의 중심을 가진 다중심적(polycentric) 종교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로마를 중심 거점으로 해서 발전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콘스탄티노플, 캔터베리, 비텐베르크, 취리히, 제네바 등 여러 지역이 기독교의 중심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앤드류 월스, 필립 젠킨스, 데이나 로버트와 같은 세계 기독교학자들은 기독교 복음이 한 방향이 아니라 다방향(multi-directional)으로 전파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세계 기독교 역사를 상세하게 살펴보면, “복음의 서진(西進)”이나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과 같은 단순화된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선교 운동이 있었습니다. 일례로,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북미 대륙에 도착하기 1세기 전에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들은 인도와 일본, 중국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기독교는 그 시작부터 세계 여러 지역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하였고, 복음을 위해서 지리적, 문화적, 사회적 경계를 넘어갔던 수많은 선교사의 헌신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글로벌 신앙 운동이 되었습니다.
1974년에 시작된 로잔 운동은 당시 부상하던 세계 기독교의 현실을 자각하며 비서구권 교회의 선교적 역할을 다음과 같이 주목했습니다. “선교의 새 시대가 동트고 있음을 우리는 기뻐한다. 서방 선교의 주도적 역할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하나님은 신생 교회들 중에서 세계 복음화를 위한 위대하고도 새로운 자원을 불러일으키신다”(로잔언약 8항).
국제로잔위원회는 리더십 구성과 참가자 선정에 있어서 현재 세계 교회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의 프로그램 위원장은 홍콩 출신의 패트릭 펑(Patrick Fung, 국제 OMF 대표)이 맡고 있으며, 다수의 아시아 선교학자와 선교 리더들이 신학 위원회와 프로그램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로잔대회를 통해서 세계 기독교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