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영어 할배
코인은 이제 단순히 동전의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 세상의 변화와 함께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가상 화폐가 세상으로 나온 지도 제법 오래되었고 이러한 가상 화폐, 암호 화폐를 코인이라 부른다. 어쨌든 ‘돈’이라는 가치를 담고 있어서인지 코인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이 있고 그것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고, 어쨌거나 돈이라서 이 코인 종류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제법 많은 코인 투자 사기 피해 기사가 연이어 줄을 짓고 있고, 또한 코인 사기꾼 관련한 기사도 줄을 잇는다.
최근엔 이 코인 사기꾼과 관련하여 엄청난 ‘유명인’인 권도형이 외국에서 검거되었다가 최종 미국으로 송환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며칠 사이 다시 국내 송환으로 결정되었다고 번복되었다. 미국 송환에 환호하는 댓글이 많았고 그 중에도 ‘돈의 힘’이 한국으로 송환 결정을 하게 할 거라는, 국내 최고의 화려한 로펌 군단이 미국으로 합류하였다는 네티즌 댓글을 본 거 같았는데 역시…. 정말 한국은 ‘돈’과 관련해선 예측이 불가능할 수가 없는 나라다.
그런데, 이 범죄인과 관련된 기사에 뻘하게 꽂힌 문장이 있었다.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씨가 한국으로 송환을 결정한 몬테네그로 법원의 영문 결정문을 아직 받지 못해 항소 기한이 연기됐다.” ‘권씨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 영어로 된 결정문을 조속히 송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는 문장이었다. 이 코인 사기꾼은 한국인이 아니었나.
“코인, 코인”
나는 그 할아버지를 영어 할배라 불렀다. 부를 일이 없으니 그냥 속으로 아, 영어 할배!라고 생각했다. 영어 할배가 들이닥치면 체인지보다 코인이 나으네하며 돈통을 연다. 천 원짜리 한 장을 받아 5백 원짜리 동전 하나와 백 원짜리 동전 다섯개를 영어 할배의 손바닥에 떨어뜨린다. 어김없이 손가락 두 개를 길게 뻗어 흰 머리에 붙였다 떼며 터지는 소리, “쌩큐“
큰 키에 마른 몸, 하이얀 머리의 영어 할배가 영어를 쓰면 외국인 노신사 같이 보인다. 물론 제법 긴 문장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슈퍼를 드나드는 사람 중에 상위 랭크의 연령이지만 다른 할아버지들에 비해 늙어 보이지도 찌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영어의 힘인가?
영어를 들입다 써대니 사람들이 알아듣는 말이라고는 커피밖에 없는지라 영어 할배는 늘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영어 할배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모양이다. 하긴 우리나라 말을 할 때면 발음이 서툴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알아들을 사람이 없는데도 영어부터 써댄다. 실로 대화를 원해서 그러는 것인지 한국말이 생각이 안 나서 그러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러다 보니 영어 할배가 코인을 외치며 ‘할로우’하고 슈퍼에 들어서면 벌써 주위에서 난리이다.
“할배, 할로우는 물 건너 말이고 우리는 식사 자셨소? 이게 인사 아이요”
어떤 치들은 “할로우”에 맞서 “할로우”를 되받아치기도 “굳 모닝”으로 응대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그저 고개만 꾸벅이며 피하는 일이 많은데, 가끔 영어 할배가 다음 말을 더 이어갈라치면, “할배, 꼬부랑 말 자꾸 쓰다가 그 허리 당장에 꼬부랑거릴 낍니다” 하거나, “아따, 할배요! 아침부터 빠다 드싰소? 속이 닝글거리는디” 하며 영어 대화를 대놓고 거절한다.
이런 영어 할배의 하루 일과는 자판기 커피로부터 시작한다. 노가다를 가는 몇몇의 아침도 커피로 시작한다. 어둠이 빠져나갈 시간, 불이 켜지지 않은 슈퍼 앞 가로등 아래 주머니를 털어 동전을 세고 어울려서 동전을 맞추어 커피를 뽑는다. 새벽부터 커피 한잔에 몸을 녹인 노가다꾼들이 서둘러 일을 떠나고 영어 할배는 슈퍼로 들어 와 남은 커피 몇 모금을 조금씩 조금씩 씹는다.
“아, 노 프라블럼.”
영어 할배가 코인 다음으로 잘 쓰는 말 중 하나이기도 한데, 조금 기다리게 돼서 미안해하면 그저 당연하고도 느린 어투로 중얼거리는 말이다. 그러고는 천 원짜리 하나를 내밀어 동전으로 바꾸고 자판기 커피 한잔을 빼 들고서는 한참을 텔레비전을 쳐다보다 간다. 다른 사람들이 떠들고 있어도 딱히 대화에 끼지 않으며 술도 마시는 걸 본 적도 없다. 그래도 출근하듯 슈퍼를 드나들며 기본인 커피와 담배 이외에 빵을, 우유를 산다. 어쨌든 담배 몇 개비 피우다 조용히 앉아 있다가는 사라졌다가 어느 틈에 조용히 들어왔다 또 다시 조용히 사라진다.
영어 할배의 영어발음 역시도 한국말처럼 어눌해서 바로 파악하기 어렵다. 풍선에서 바람이 살살살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뭐, 사실, 우리나라 수십 년 영어 공부란 것이 보는 영어에 익숙해 있지 하는 영어에 익숙해 있는가? 쓰여진 글씨와 실제 발화한 발음의 차이는 너무 크다. 그때문이라서는 아니지만 나도 지속적으로 영어 할배와 대화가 어려운 부류인데, 그렇다고 할아버지를 붙잡고 프리토킹 연습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든 씨익, 썩소만을 날릴 뿐이다.
아무리 조용한 영어 할배라도 남 일 모르는 것 없는 사람들 덕분에 영어 할배의 가족사도 인생사도 조금씩 알게 되는데, 영어 할배는 슈퍼 바로 옆 빌라에 산다. 이 동네가 거기거 거기이지만 임대 아파트에 비해 빌라라는 어감이 주는 것은 ‘나 돈 있네’, ‘좀 사네’와 같다. 여인숙과 모텔에서 더 나아간 호텔급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3층짜리 희망빌라 2층 영어 할배는 더욱이 초로의 신사와 같은 이미지로 부상된다.
영어 할배가 사는 그 집. 그 곳에는 아들도 있고 며느리도 있고 손자도 있지만, 없다. 있는데 없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린가 하겠느냐만은, 그렇다. 영어 할배는 혼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설거지를 하고, 혼자서 빨래를 하고, 혼자서 잠을 자고, 혼자서 일어난다. 숨쉬는 공간에서 마치 우렁각시인 양 자신의 흔적을 되짚어 지우며 행적을 남기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그의 행적을 차근차근히 지우는 반면에 영어 할배의 동거자가 남긴 흔적은 고스란히 배어 있어 할아버지는 자신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 아니 텅 비어 있는 공간에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눈뜨고 일어난 아침이면 누군가가 먹고 자고 간 흔적은 보이는데, 그 흔적을 만든 이와는 마주보는 일이 없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게 서서히 한국어의 발음이 부자연스럽게 된 것엔 싸늘히 식은 흔적이 남겨진 잠자리와 식탁을 마주하면서가 아닐까.
가끔씩은 할아버지도 흔적만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흔적을 만드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이 밥 먹는 소리, 웃는 소리, 떠드는 소리, 간식을 먹는 소리 소리들을. 그렇게 그들은 웃는다. 먹는다. 함께 텔레비전을 본다. 웃을 줄도 알고, 더러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실랑이, 누군가와 티격태격 한 일도 오래지 않은가.
가족이라 불리는 그들이 유일하게 다 얼굴을 볼 수 있을 아침, 그들의 식탁에 할아버지는 초대되지 않는다. 그들이 밥을 먹고 난 후 모두가 떠난 뒤, 적당히 차려진 밥상에서 할아버지는 식사한다. 한참이 된 듯하긴 하다. 까마득한 옛일이니까. 이제는 그들을 마주치는 일이 무섭다. 눈을 떴으나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그들이 나갈 채비를 다 할 때까지 왜 그런지 모르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다. 식구들이 제각각 나가버리고 최후의 “딸깍”소리가 날 때야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들치고 햇살이 내리쬐는 거실을 향한다. 그리고 온기가 없는 밥과 국과 반찬을 몇 삼킨다. 그런 날은 얼마되지 않는다. 차려진 음식이 없어 빵과 우유를 사 먹는 일이 더 잦다.
영어 할배에게 그들은 보일듯 말듯한 존재이고 그들에게 영어 할배는 없는 존재다. 이런 기막힌 동거가 가능할 수 있는가 싶었지만 그렇게 산지 오래라는 것뿐. 며느리던가 손주 며느리던가가 싫어한다는 것뿐. 싫어함의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6.25 참전 재일학도의용군인-그렇게 익힌 영어를 집이 아닌 슈퍼에서 남발하는 영어 할배!-이란 명목으로 받게 되는 연금은 하루하루 영어 할배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 집도 영어 할배 것이라던데, 그렇기에 그 빌라에 기거할 수 있는 거라고. 그 돈이라도 없었더라면 영어 할배는 아마도 일찌감치 도대체 사람이라고는 사는 곳인가 의심스러울 어느 곳에 버려졌을 지도 모른다.
영어 할배는 며칠을 앓고 나서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후 뭣에 씌었는지 수의를 주문했다. 그 때만이라도 정말로 이제는 가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었건만 막상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보니 주문한 수의는, 한마디로 사기를 당한 꼴인 게다. 차마 제일 비싼 것은 하지 못하고 한단가 낮춰 주문한 수의는 공산품이 아니라 직접 만드네, 좋은 삼베를 쓰네 했건만 받고 보니 그 색깔이며 바느질 솜씨가 바로 사기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인. 저 멀리 가려는 마당에 그나마 알뜰살뜰하게 모아 쏟아부은 수의를 얼토당토 않게 사기당하고 나니 순탄치 못한 생의 마지막 길이 답답해 며칠 새 커피보다 담배피는 양만 늘었던, 그런 영어 할배가 코인이란 단어에 생각난다.
아주 오래 전 기억이다. 영어 할배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내가 슈퍼를 떠나 살던 때이고 영어 할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도 없다. 그럼에도 기억 속에 영어 할배가 남아 있는 건 그 기괴한 가족의 틀 때문일 게다. 지금도 이 땅에는 독거노인이 아님에도 마치 독거노인인 듯 살고 있는 노인이 있을 것이다. 연금을 노리는 가족에게 감금당한 채, 쉬이 죽지도 못하는 삶. 어느 순간 가족으로부터 미움받고 짐덩어리 취급받는 삶.
자판기 커피를 즐겨 드시던 영어 할배가 지금까지 살아 계셨더라면 더 이상 코인 코인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도 같다. 자판기에 지폐가 들어가는 건 오래 되었으니까. 세상은 참 느리게도 흘러가는 것 같지만 변화가 많은데, 애달픔 가득한 사람의 일은 변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영어 할배에게 절대 통장을 뺏기면 안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마지막에 곱디 고운 수의는 입으셨는지, 가족들에게 통장을 내어주고 코인 두 개라도 얻고 가셨는지, 아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