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세 가지의 사건을 연이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후에 그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신 사건이고, 두 번째는 침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이 금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 이유를 질문하는 내용이고, 세 번째는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규례를 어겼다며 비난하는 사건입니다.
먼저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사건은 13절부터 17절에 나옵니다. 이 레위는 마태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됩니다. 레위는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시자 곧바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14절). 레위도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한 레위는 자기 집에 예수님을 초대하여 사람들을 불러 함께 음식을 먹었는데(15절), 15절에 나오는 죄인이란 아마도 세리를 비롯하여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 더러운 직업이라고 여겨졌던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자들을 죄인이라 여기며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꺼려하지 않으시고 함께 어울려 식사하셨으니 바리새인들이 비난한 것입니다(16절). 그러자 예수님은 의사가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한 것처럼, 주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대답하십니다(17절). 사람들을 어떤 카테고리(Kategorie, 범주, 範疇)로 묶어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류에게든 복음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들의 선택이지만, 복음은 그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전해져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나 예수님은 구세주와 주님이 되시길 원하십니다.
18절부터 22절까지는 금식에 대한 논쟁입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절기나 시기에 금식을 하면서 자신을 정결하고 경건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이러한 전통을 따르지 않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할 수 없다면서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텐데,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라고 답하십니다(19절, 20절). 여기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거룩과 경건의 근원이십니다. 그러한 주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부활하기 전까지의 기간은 금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금식의 필요는 하나님이신 주님에 의해 결정됩니다. 특히 전통과 관습에 의해 이뤄지는 그 당시의 금식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는 예화와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않고 새 부대에 넣는다는 예시(例示)를 통해 오래된 전통과 관습에 의해 모든 거룩과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님의 행동을 가두려는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에 의한 행동과 관습, 전통은 이제 낡은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시던 참된 메시아,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 대속(代贖)의 사역을 이루시면서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은 성취되었습니다. 참 생명, 참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앞에서 구약의 낡은 전통을 따르라고 말하는 것은 참 복음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과 이로 말미암은 전통과 관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다시 해석되어야 합니다.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은 새 가죽부대가 필요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도외시(度外視)한 채 전통과 관습에만 얽매이는 것은 복음의 본질, 복음의 초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혹시 나는 여전히 전통과 관습에 매여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지막 23절부터 28절은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으로 인해 촉발(觸發)된 안식일 논쟁입니다(23절, 24절). 율법에 의하면 지나가는 나그네가 배가 고플 때 지나가는 길의 밭에서 그 소산(所産)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먹는 것은 허용되지만 가지고 나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율법에서는 안식일에 추수하는 일도 금지되어 있는데 밀 이삭을 자른 것을 추수의 노동으로 본 것입니다(24절). 그러자 예수님은 사무엘상 21:1~6에 나오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면서 아히멜렉 제사장(그 당시 대제사장은 아히멜렉의 아버지인 아비아달)에게 요청하여 성소에 드려진 진설병(陳設餠)을 얻어서 다윗의 병사들과 함께 먹었던 것을 예로 들면서(25절, 26절),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27절). 안식일이라는 규례는 사람에게 쉼을 주시고자 하시며, 그날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날로 주신 것이지, 안식일이 사람을 옭아매기 위한 것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28절). 여기서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안식일을 명하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날이 오히려 사람들을 얽매이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면 안식일이라는 규례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 안식일의 의미를 온전히 찾으려면, 그 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면 됩니다. 안식일이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것을 안다면, 그날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괜찮은지, 괜찮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세 가지의 사건, 논쟁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를 가려줍니다. 전통과 관습, 규율에 매여 참된 복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 관습, 규율 등에 얽매여서 정작 메시아이시며, 참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보고, 오히려 적대하셨습니다. 비본질적인 것에 매여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복음의 본질에 더 집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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