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보고 싶은 얼굴들
낙화 된 꽃이 보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일 년만 기다리면 다시 피어나서 볼 수 있어도 임은 일 년보다도 더 길게 기다려도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누구에게나 웃음과 향기와 그리고 사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골고루 변함없이 나누어 주어서 꽃은 임의 영혼이며 사랑의 상징이다.
이 세상의 꽃 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 색깔 그리고 향이 서로 달라 각각의 꽃들은 인간들에게 자기만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경쟁적 본능인 것 같다.
그래서 몸에 밴 꽃 모양, 색깔 그리고 향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느낄 때는 꽃에 얽혔던 노스탤지어들이 쉽게 떠올리며 풍덩 빠져버리곤 한다.
꽃은 한정된 장소와 시기에만 볼 수 있으나 “해와 달”은 세상천지 어디를 가나 날마다 볼 수 있다. 객지에 잠깐 나와 있거나 해외여행 할 때 아침에 뜨는 해와 저녁에 뜨는 달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고향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해와 달뿐이기 때문이다. 타향에서 동쪽 해를 바라볼 때 고향의 앞산과 그리운 얼굴들이 오버랩 되어 사라지지 않아 고향의 이것저것들이 한꺼번에 얽히어 상상의 나래는 어느덧 그쪽 하늘을 날고 있고, 밤 구름 사이로 살며시 내민 달님의 얼굴을 보면 하늘에 계시는 부모님 거울 같아 왈칵 울음이 목을 매이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해는 고향이며, 달은 어머니와 그리운 임으로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 선잠 속에서도 손을 뻗어 만지작거리면 어머니 손이 바로 닿거나 어머니 옷자락이 잡히면 안심하고 잠을 스르르 잘 수 있었어도 아무것도 닿지 않으면 칭얼대거나 바로 으앙 울 때면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잠 깨셔서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토닥거려 어머니 품에 안아 잠을 재워주시고 세상근심 막아주셨던 어머니 모습이 그립고 또 보고 싶으면 이제는 휘영청 달님을 보면 위안이 되고 들쑤시던 마음도 어느새 가라앉는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가장 높이 매달아 놓아 쉽게 고향을 떠올리고 그리운 사람들 얼굴을 보듯 소식을 전해주는 해와 달이 있어 우리는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다. 뜨는 장소는 조금씩 달라도 얼굴 모양은 일정하게 만드신 해님, 얼굴 모양은 조금씩 변해도 뜨는 장소는 일정하게 만드신 달님을 점지하셔 궁금한 소식, 보고 싶은 얼굴들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하신 조물주님께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우신지 경배 드린다.
봄이 되어 지천에 꽃들이 만발하여 잠뱅이 흠뻑 젖도록 뛰어다니며 눈 비벼 찾아보아도 임의 얼굴과 향기는 없다. 시대산에 걸쳐있는 휘영청 밝은 달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아도 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으니 이제는 꽃도 나를 싫어하고 달님도 나를 버리셨나 보다.
꽃임과 달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예전과 같으신데 변덕스러운 나의 몹쓸 심상이 넘겨짚는 지레짐작인 줄도 모른다.
그리움은 끝도 없고 성이 차지 않아서인지 꽃과 달임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도 또 임을 부추기는 것은 어느 여가수의 애잔한 가사와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절규하듯 부르는 한 소절의 음악이다. 그 노래는 임이 나에게 못다 한 말 가슴에 묻어두었다가 이 세상 다 하기 전 꼭 하고 싶었던 마지막 한마디의 외침인 양 마음을 질퍽하게 하여서 하던 일 잠시 멈추고 또 다른 회상에 젖어 내가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하고 임을 그냥 보낸 후회에 원망도 해본다.
나눔은 쓰고 남은 것보다 넉넉하지 않은 것을 내가 덜 갖고 나누는데 보람이 있다. 이제라도 많은 임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정을 베푸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