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7장 51-54절 죽으신 후에 일어난 일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신 일입니다. 그 길을 예수님은 피하실 수 있는 방법이 많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기를 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니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심문을 받을 때나 군병들이 주먹으로 치고 뺨을 때리고 채찍으로 때리며, 그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면서 놀려댈 때도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달리셨을 때도, 십자가 위에 달리셔서 하나님을 찾는데도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이 시간은 예수님에게 있어 너무나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니까?”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부르짖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그 절정의 순간에도 침묵하셨습니다.
때때로 기독교는 이런 위기의 상황과 죽음의 상황을 많이 지나와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견디라고 허락하신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최종적인 박해의 날이 될 때까지는 크고 작은 고난들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십니다. 이 때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의지해서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먼저 오늘 본문 중 마태복음 27장 5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하나님이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쫙 찢어진 것입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큰 성전, 그리고 높이가 높은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 막고 있던 휘장을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아래까지 쫙 찢으셨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면 다 만나주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10장 20절을 보면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휘장은 그의 육체를 나타내며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휘장 가운데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니까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찢어짐으로 인해 하나님과 모든 사람 사이를 가로막던 벽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구하며 찾는 사람들이 서로 화평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휘장이 우리를 위하여 열린 새로운 살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이 열렸고 영원하신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있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으며 영원한 생명의 교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6장 19절을 보면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이 소망은 하나님이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주시는 소망입니다. 그 튼튼하고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 가기 위하여 휘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로 인해 구원받았고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 휘장을 위에서 아랫 쪽으로 쫙 찢어놓으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어서 무덤에 묻혔는데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리셔서 그렇습니다. 52절입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이스라엘의 무덤은 우리 나라와 다르게 굴로 되어있습니다. 굴을 뚫고 거기에 시신을 넣은 후 돌로 만든 굴문으로 막아 놓습니다. 여기서 굴 문은 대부분 바위가 아니라 석회로 만든 커다란 둥글고 납작한 덩어리입니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돌을 깎아서 문을 만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무거워서 혼자 열거나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문을 옯기려면 장정 몇사람이 같이 돌려야 합니다.
그런 굴문이 부활때에 활짝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살아났던 성도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시면서 돌문이 열릴 때 이들의 무덤 문도 역시 지진과 천사들의 힘에 의해 같이 열렸습니다.
여기서 자던 성도들은 죽은 자들을 말하는데 그들을 성도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 가운데 예수님이 오시기를 사모하는 믿음을 가지고 죽은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성인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은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하신 일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울 목격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아들의 얼굴을 보이셨습니다. 5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들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목숨이 끊어졌을 때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흘동안 그 무덤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온 것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무덤에서 나오실 때 그들도 역시 무덤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들은 마치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동안 머물렀던 상태와 비슷한 삼 일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니느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이들도 역시 거룩한 성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자신들이 살아난 것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살아났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살아난 사람들 여러 사람의 공통점이 바로 성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죽은 성도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씀하지 않고 자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죽는 경우는 “잔다”고 표현합니다. 언젠가는 잠자던 것을 멈추고 주님의 호령과 나팔소리와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 듣고 일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내가 깨우러 가노라”하셨습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의 경우는 죽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 없습니다. 다 잠자다가 주님이 오실 때 깨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일어났던 성도들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자기들의 살아난 몸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가족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매우 기뻐했을 것입니다. 장래까지 다 치렀는데 다시 살아나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하신 일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백부장과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한 것입니다. 5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그들은 “진실로 이는 유대인의 왕이었다”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위에 빌라도가 쓴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백부장과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보면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끌려와서 심문을 받으실 때부터 로마 군병들은 일어나는 일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슨 표적이나 기사를 보이신 적도 없으십니다. 계속해서 심문을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시며 온갖 모욕과 비방을 하는 말들을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도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엇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지진이 일어나는 것과 그 전에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를 들으면서 그들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곱 마디는 예전에 부활주일 새벽 설교 때 말씀드렸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곱 마디 는 이렇습니다.“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은 요한와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십자가 아래에 섰는 것을 보시고 먼저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어머니라” 그리고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아들이니이다” 이 말씀은 “옆에 있는 요한은 이제부터 당신의 아들입니다”하는 뜻입니다. 둘을 한 가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을 넘어선 영의 가족을 한 가족으로 부르십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 하셨습니다. 육신의 목마름과 영혼의 목마름을 동시에 느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자신의 옆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두 강도 중 하나가 “주여 오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저를 생각하소서”하고 간구하자 예수님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셨습니다. 그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신 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하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여러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이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말씀들을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 여러분들 자신을 예수님께 온전히 드린다면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보이고자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보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용서와 구원과 화목과 목마름에 대한 해결과 최악의 상황을 거치고 지나가면서 영혼의 목마름을 느낄 때, 또 버림받아 혼자라고 느낄 때 모든 일을 다 이루게 하시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내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여러분들을 받으신 하나님은 예수님과 더불어 지성소로 들어오게 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뜻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