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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안중근 이등박문 쏘다’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 쏘다'에서 묘사된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하는 장면
1979년 제작된 이 영화는 북한으로 말하면 이른바 ‘불후의 명작’에 속할 영화다.
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김일성은 1928년 1월 무송에서 ‘안중근 이등박문 쏘다’라는 연극을 직접 써서 주변 농촌 마을을 대상으로 공연했다고 한다.
이를 나중에 김정일이 작품으로 옮길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직접 창작 현장에 여러 번 방문하는 등 큰 품을 들였다고 한다.
이런 영화이니 만치 북한 최고의 재원들이 총동원돼 찍었다.
영화문학(시나리오)은 작가동맹위원장 위원장을 지낸 백인준이 썼다.
그는 한국으로 치면 국회 부의장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과 범민련 북측 본부 의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연출은 북한 최고의 연출가인 엄길선(2005년 사망)이 맡았다. 영화에는 수천 명의 엑스트라와 막대한 제작비가 동원됐다.
북한에서 한 해에 만들어지는 영화는 많지 않다. 최근에는 10편 미만이다.
외국영화도 거의 방영하지 않다보니 북한 TV에서는 많지 않은 국산 영화를 계속 되풀이해서 방영한다. 이런 실정이라 했던 영화가 얼마 안가 다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최근 연간에는 이런 영화들조차 잘 방영하진 않지만.
반복되는 영화 중에선 특히 김일성 일대기를 그린 영화나 김정일이 크게 치하하거나 품을 들여 만든 영화가 특히나 많이 상영된다.
평양시 형제산거리에 있는 영화 촬영 거리를 방문한 젊은 시절의 김정일.
해마다 명절 때면 꼭 나오는 영화도 있어서, 오늘은 어떤 영화가 TV에서 나오겠거니 하고 편성표를 보지도 않고도 아예 정확하게 맞추는 경우도 있다.
특히 기억되는 것은 보천보 전투 기념일인 6월4일에는 ‘백두산’이라는 영화가 매년 반복됐다는 것이다. 또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을 맞아서는 그의 연대기를 그린 영화인 ‘조선의 별’이나 ‘민족의 태양’ 같은 영화들이 쭉 상영된다.
그런데 상영할 수 있는 영화목록에서 아예 지워진 영화도 있다. 김정일이 뭐라고 한마디 한 영화라든지, 영화 주인공이 훗날 숙청된 경우라든지, 또는 시나리오 작가나 연출가가 숙청돼도 영화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안중근 이등박문 쏘다’는 만들어진 뒤 몇 년 뒤에만 방영되고 그 이후에는 TV에서 사라졌다. 기억에는 1980년대 중반 이후엔 방영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사라질 조건에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는데 그렇다.
그래서 북에 있을 때 “안중근 열사 본받는 사람이 나올까봐 저 영화는 안하는 가보다”고 생각했다. 북에선 ‘안중근 의사’라고 하지 않고 ‘안중근 열사’라고 한다.
영화에서 안중근 열사가 육혈포로 민족의 원수인 이등박문의 심장에 총탄을 날리고 조선독립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정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장이 뛰게 만든다.
그런데 김정일처럼 그런 광경이 영 내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만들 때는 아버지가 통치자고 자기는 2인자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북한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이 이런 영화도 아무런 선전용 메시지가 없이 만들어 졌을 리는 만무하다. 이 영화도 마지막에 안중근 의사의 독백으로 “국권 회복을 위한 교육 진흥과 국채보상운동도, 온몸을 바친 무장 독립 활동도, 겨레의 원수 이등박문을 격살한 것도 나라를 구하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짓밟히고 천대받는 우리 민족을 구원해 줄 영웅은 언제 나타날 것인가”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영화를 만들어 주려는 메시지는 결국 이것이었다. 안중근 의사도 못한 것을 민족의 영웅 김일성이 나타나 다 해결해치웠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라는 것이 노동당에서 주자는 메시지만 받을 수는 없다. 특히 북한 사람들은 별을 보라고 할 때 달을 보는데 익숙된 사람들이다.
훗날 김정일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누군가 안중근 열사처럼 민족을 위해 자기에게 총구를 겨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 쏘다’는 곧 상영이 중단됐고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져 갔다.
북한 영화 제작자들도 김정일의 비위에 맞추고 눈에 드는 영화를 만들려니 소재에 몹시 고민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영화가 나오면 비슷비슷하다. 튀는 것보단 안전빵이 제일 좋으니깐.
역사물 영화는 소재에서 비교적 자유로울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주인공이 왕이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양반을 긍정적으로만 묘사할 수도 없는 일이고 농민폭동 주도자들을 너무 찬미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래저래 막힌다.
북한은 1980년대에 ‘림꺽정’이란 5부작 영화를 만들었다. 홍명희의 소설 ‘림꺽정’에 기초해 양반의 착취에 참을 수 없던 양주 백정 림꺽정이 들고 일어나는 줄거리로 이는 남쪽에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 영화 '림꺽정'에서 주인공의 모습.
그 영화에는 림꺽정이 반란을 일으킨 뒤 핏발이 선 눈으로 비장하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말하는 등 반항을 묘사한 내용이 많다. 양반, 상놈 없는 세상 만들자는 구절이 들어간 주제가도 있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이런 영화도 요즘엔 상영되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민심이 악화되는 상황에선 자꾸 림꺽정 같은 인물을 비추어야 정권에 득이 날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1970~80년대는 북한 체제가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고 해서 ‘안중근’이나 ‘림꺽정’ 같은 민족의 열사나 역사 속 반항아들을 화폭에 담는 등 나름 다양성 있는 문화예술이 존재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수백 만 명이 굶어죽으면서 북한 예술도 점점 획일화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없다는 징표이기도 한 것 같다. 또 창작자들이 기가 팍 죽었거나 눈치를 많이 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안중근 열사 순국 100주년이 몇 일전 지나갔다. 그때로부터 1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민족은 제2의 안중근 열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
http://www.journalog.net/nambukstory/27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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