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화漁火
김순경
죽음을 무릅쓰고 몰려든다. 지척을 분간하기 힘든 어둠을 뚫고 불빛을 향한다. 누가 시키거나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목숨앗이들이 잠복해 있어도 가던 길을 멈추거나 돌아서지 않는다. 행렬이 물결을 이루면 쉽게 빠져나오거나 흩어지지 못하고 관성으로 밀려간다.
어둠이 내리자 거의 동시에 불이 켜졌다. 사냥감을 주시하며 때를 기다리던 맹수같이 일시에 수십 척 배가 불덩이로 변했다. 어둠에 묻혀 있던 거대한 선단의 오백 촉 어화가 출렁대는 바다에 빛을 내려놓자 캄캄한 바다는 무섭도록 검붉게 변한다. 파도가 칠 때마다 주낙처럼 매달린 전등이 곡예하듯 춤을 춘다. 선원들도 세상이 잠든 캄캄한 바다를 밝혀주는 등불같이 파도를 탄다.
어화는 배에 달아 놓은 집어등이다. 강한 불빛만 보면 본능적으로 미생물들이 몰려든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작은 먹이가 고등어나 오징어 같은 어류를 불러 모은다. 시각적 신호를 감지한 고기들은 먹이를 찾는 신호인 줄 알고 직관적으로 움직인다. 한 마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달려든다. 속도가 붙으면 촘촘한 그물과 날카로운 낚싯바늘이 눈앞에 나타나도 멈추지 못한다.
물고기만이 아니다. 사람도 오직 부와 권력에만 촉각을 곤두세운다. 자신도 모르게 모리배가 되어 알량한 의리를 들먹인다. 넘지 말아야 할 선도 거리낌 없이 넘나든다. 관성이 붙으면 어떤 망설임도 죄의식도 없이 과감해진다. 허황한 꿈을 좇다가 덫에 걸려들거나 수렁에도 빠진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갈수록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무리가 늘어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욕망도 늘어난다. 부귀영달을 위한 일이면 지옥이라도 달려갈 기세다. 가방끈이 긴 자들도 시류에 아첨하고 이상한 논리를 앞세워 혹세무민하는 경우가 많다. 삶이 고달픈 자들은 남을 이용하고 속이는 방법도 모르고 매사에 여유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신의 촉각을 가진 모리배들이 집어등을 보고 몰려드는 물고기처럼 부와 권력을 향해 달려든다. 이미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이룬 자들이 늘 앞장선다.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각종 매스컴마저 찢어지고 갈라져 싸움을 부추긴다. TV와 신문, 유튜버들이 어찌나 설쳐대는지 진실을 구분하기가 정말 어렵다. 모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민주와 자유를 외쳐댄다. 알아듣기조차 힘든 전문용어와 듣기만 해도 긴장되는 법을 들먹이며 토해내는 패널들의 말을 듣다 보면 오히려 불안과 의문만 증폭된다. 지구촌 곳곳에서 자행되는 힘 있는 자들의 갖가지 행태도 점점 거칠어진다.
가는 곳마다 탐욕에 눈먼 자들이 설쳐댄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2016년 ≪수필과비평≫ 신인상,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아르코 발표지원 및 발간지원 선정,
경북문학대전 은상, 포항스틸에세이 대상, 경북문화체험수필 금상, 등대문학상 우수상, 포항소재문학 최우수상
부산문인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수필과비평작가회의, 부경수필문인협회, 수필미학작가회 회원
수필집 대대리 별곡, 모탕, 고주박이, 시김새, 검·은·꽃
첫댓글 <漁火>
교수님, 항상 좋은 글 많이 읽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배울 점이 너무 많은 선배님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