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비천할 때 우리를 기억하셨네.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시편 136,23)” 오늘 탈출기 말씀에 이어 화답송으로 이른바 ‘하느님 자비에 관한 대(大)찬양 시편’을 바쳤습니다. 그 가운데 저는 ‘기억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와 닿았습니다. 어떤 행위 이전에 ‘기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많은 기억들 가운데 어떤 기억을 더 깊이 더 많이 떠올리며 사느냐에 따라 그의 행동에서 자비와 사랑이 나올 수도 있고 무자비와 미움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감사와 기쁨의 행동이 나올 수도 있고 불만족과 원망의 행동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 그것이 스쳐지나가는 일들이라고 하여도 좋고 감사하고 사랑스러움의 일들이라면 내 기억의 저장소에 잘 보관해 놓고 시원한 우물물을 떠 마시듯 때마다 떠올려 좋지 않은 일들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일으키는 열기들을 식혀주어야 할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중대한 기억들이 몇 가지씩 있습니다. 세례, 첫 영성체, 견진, 혼인과 같은 성사의 은총을 받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순례와 봉사를 하던 축복의 기억들도 있습니다. 또한 아프고 힘들 때 벌거벗은 나약한 한 신앙인으로서 창조주 하느님 앞에 오랜 기간 인내와 기다림 속에 의탁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기억들이 오늘의 믿음을 지탱해주고 있고 신앙의 생기를 북돋아 줍니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당면한 어려움과 문제들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불편하고 답답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하며 내일에 대한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도 가슴 한켠에 늘 무겁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마련해주신 ‘거룩한 기억’이라는 은총의 우물에서 구원의 샘물 한 그릇을 떠 마시는 것이 유익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하시고 전능하시며 사랑 자체이기에 우리를 결코 잊는 일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늘 살아계신 분으로서, 과거로부터는 기억으로, 오늘은 현존으로, 내일은 그 기억과 현존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여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으로서 당신께 바라는 이들과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영원한 희망이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이사 42,4; 마태 12,21)
오늘 들은 탈출기 말씀에서 계시되었듯이 ‘430년 동안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잊지 않고 기억하셨고 마침내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셨듯이(탈출 12,42)’ 삶의 고단함과 시련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무겁고 답답했던 마음과 힘겨웠던 삶을 주님 앞에 다시 내려놓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시편 31,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