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글라스 하청 비정규직
2015년 노조 만들자 부당해고
대법 '직접고용' 판결뒤 첫 출근
'이제 출근해 보겠습니다. 9년 만입니다.'
1일 아침 7시40분 여름 휴가철을 맞아 고요한 경북 구미시 구미국가산단.
일본계 유리 재조업체 에이지씨(AGC)화인테크노한국(주)(이하 아시히 글라스) 공장 앞은 흥겨운 노랫소리로 가득했다.
짙은남색 금속조끼를 입은 노동자 21명이 붉은색 장미꽃을 한송이씩 손에 들고 공장 정문으로 향하는 오르막을 올랐다.
길 양쪽에 건 수십명이 이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축하합니다!'
'울어도 괜찮아.'
'첫날부터 너무 열심히 일할라 카지 마래이~.'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장은 끝나지 않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오늘 출근하지 말고 계속 축하만 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문 앞 관리실에서 차례로 신분증을 확인받은 노동자들은 휴대전화 카메라에 보안 스티커를 붙인 뒤 출입증을 받았다.
'아이고, 이게 뭐라꼬, 다시 받는 데 9년이나 걸리뿟네.'
임종섭 노조 회계감사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AGC'라고 적힌 출입증을 만지작거렸다.
남퍈의 '출근길'을 동행한 한 조합원의 아내는 '9년 동안 함께 투쟁하느라 저 역시 구미공단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자리 찾기가 힘들다'며 '공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봐야 실감 날 것 같다.
어젯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며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2015년 해고했던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날 9년 만에 '정규직으로 첫 출근'을 시작했다.
지난 7월11일 대법원이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업체 지티에스(GTS) 소속 노동자 22명이 원청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서 '원청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애초 해고된 177명 중 소송에 참여한 22명 모두가 복직 판결을 받았고,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고 있는 1명을 제외한
21명이 이날 출근했다.
차 지회장은 등 아시히글라스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177명은 2015년 노조를 만든 지 두달 만에 해고됐다.
하청업체는 원청과 도급 계약이 끝났다는 이유를 들어 문자 한통으로 해고 통보한 뒤, 다음날부터 공장 출입을 막았다.
아사히글라스지회는 구미산단 최초의 비정규직 노조였다.
실수하면 붉은색 '징벌 조끼'를 입고 일해야 하는 등 정규직과 다른 차별에 맞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으로 만든 노조였다.
'200명 구조조정 맞서 '투쟁 2막'도 승리' 다짐
차 지회장은 지난 9년 의 투쟁을 떠올리며 연대해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늘 출근길은 수많은 동지가 9년간 함께 만들어 온 길입니다.
다시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벅차오릅니다.
비정규직이었던 우리가 정규직이 되어 민주노조 깃발을 들고 출근합니다.
행복합니다.'
아사히글라스는 대법원 판결 다음날인 지난 12일 '차헌호외 21명을 수신자로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의무이행 출근통보' 공문을
보냈다.
회사 쪽은 '15읿터 출근할 것을 통보한다.
출근하지 않ㅇㄹ 경우, 무노동 무임금 언칙 적용하고, 무단결근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밝혔다.
주말을 보낸 뒤 바로 출근하라는 통보였다.
노조는 출근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사쪽은 지난 31일까지 모두 세차래에 걸쳐 '무단결근'을 알리는 등기를
보냈다.
차 지회장은 '회사는 9년을 길거리에 있었던 우리에게 출근 준비를 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해고가 불법이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는데도 회사는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른다'고 꼬집었다
노동자들은 출근 뒤 '투쟁 2막'을 준비회사 측이 최근 정규직 노동자 200명 구조조정을 발표했기 떄문이다.
'이제 우리의 시간입니다.
민주노조 깃발을 들고 다시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더 큰 민주노조를 만들겠습니다.
투쟁 2막도 당당히 승리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요.' 김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