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 전․의경 산업시찰 소감문]
모범 전․의경 산업시찰에 내가 가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소 갑작스럽게 내려진 결정에 감사하고 설레는 한편 내가 과연 모범적인 대한민국 의무경찰인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번 산업시찰에 선발되지 못한 많은 부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2010년 6월 7일 이른 아침 인천지방경찰청으로 향했습니다.
인천 전역의 경찰서와 방범순찰대에서 모인 54명의 전․의경들은 한 눈에 봐도 과연 모범 전․의경들이라는 것이 그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느껴졌습니다.
내가 정말 이 곳에 있어도 되는 것일까 생각하며 다소 불편한 마음을 지닌 채, 이렇게 나에게는 과분한 2박 3일간의 산업시찰이 시작되었습니다.
"축제, 추억 그리고 책임감"
54명이 탑승한 두 대의 버스가 인천을 벗어나기 시작했을 때,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었고 입대한 뒤로 상황출동을 제외하고는 어디론가 먼 곳으로 떠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마치 학창시절 수련회를 떠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견학지는 5일마다 열린다는 강원도 정선의 한 재래시장이었습니다.
이곳 시장은 마치 시장 전체가 살아있는 듯이 움직였습니다.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들과 사러 온 사람들, 우리처럼 구경하러온 사람들, 그리고 맛깔스러운 음식들과 이곳을 오래오래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기념품들도 모두 신이 나서 들떠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살던 곳의 매일 열려있는 시장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는데 이곳 사람들에게 있어서 5일장은 그저 5일마다 열리는 시장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축제인 듯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이방인이자 구경꾼이었지만 결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다른 동네 같지 않았고 아주 오랜만에 부모님의 고향을 다시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시장 전체를 휘감고 있는 축제의 기운이 결코 낯설지 않았고 그 기운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맘껏 즐겨라”
정선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화암약수에 잠시 들린 후 우리는 레일바이크가 있는 구절리역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가족, 연인, 친구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한층 더 들뜨고 즐거운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처음 타보는 레일바이크는 굉장히 독특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날씨는 더웠지만 곧 바이크가 출발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 주위를 스쳐가는 시원한 바람에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100여대의 바이크에 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그 순간만큼은 다같이 소중한 하나의 추억을 만들며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처음 봤고 어쩌면 살면서 다시 볼 일이 없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어쨌거나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웃음을 나눈다는 것은 꽤 유쾌한 일이었습니다.
“위하여!”
하루의 일정을 마친 대원들이 모두 잔을 손에 들고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평소 우연히 만나면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불려 지며 나와, 우리와 다르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었는데 이곳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국민의 질서와 안녕을 지키고 있는 인천의, 대한민국의 경찰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의 이름으로, 하나의 목적으로 모인 대원들 사이에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깊은 유대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인천의 모든 전․의경을 대표하는 “모범 전․의경”이었기에. 우리의 사소한 행동들이 시민들에게는 인천경찰이자 대한민국 경찰 전체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것이 단순히 견학에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 인천경찰로서 소속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서는 이전과 조금 다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근무하도록 하는 데에 더 큰 뜻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소리쳤습니다.
“든든하고 정직한 인천 전․의경을 위하여!”
"자유의 가치"
다음 날 아침, 숙취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 조금 지쳐있는 대원들을 태운 차량은 힘차게 오대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대산이 우리나라의 명산 중의 하나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직접 눈과 귀로 느낀 이곳의 절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강한 직선의 바위사이를 흐르는 부드러운 계곡과 온힘을 다해 마지막 남은 잎까지 힘껏 펼치려는 늦은 봄의 꽃과 나무들은 서로의 그것을 결코 가리거나 해하는 일 없이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의 큰 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건축물들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고 장엄한 자연의 창조물 앞에 압도된 우리는 구룡폭포 앞에서 그렇게 한참을 넋을 잃고 자연에 흠뻑 취해있었습니다.
오대산의 여운을 마음껏 느끼며 내려오는 길에 관광객들이 종종 말을 걸어 왔습니다.
“인천에서 왔구나. 좋은 시간 보내라.”
그리고 보니 대원들이 입고 있는 중대티셔츠에는 모두 “인천”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고 선명하게 새겨져있었습니다.
분명 관광 중이었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 우리가 속해있는 곳이 어디인지, 우리의 행동이 무엇을 대표하고 있는지 절대 잊어선 안 되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주문진의 한 식당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꿀맛 같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속초로 가는 길에 우리는 양양의 경찰전적비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평화로웠던 일요일 새벽에 적화통일의 야욕을 품고 그야말로 기습 남침한 북한군 앞에서 그들과 결코 타협하지 않고 생명을 걸고 당당히 맞서 싸우다 전사하신 용맹스러운 우리 경찰 선배님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전적비 앞에서 우리는 들떠있던 마음들을 잠시 내려놓고 모두가 숙연하게 이 죽음이 얼마나 거룩하고도 값진 것이며 그들이 과연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며 보내고 있는 20여년의 시간들과 이 자유가 절대로 아무 대가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자신의 생명이 끊어지면서도 먼 후대의 우리는 결단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라는 피 묻은 외침이 60년의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나의 심장 속에 와 닿았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가깝지만 먼 그 곳, 우리 땅"
속초해수욕장 앞에 마련된 숙소에서 2박 3일중 마지막 밤을 즐겁게 보내고 다음날 아침 속초의 명 사찰인 낙산사를 올랐습니다.
이 곳 역시 관광객들이 지나치지 않고 한번씩 꼭 들르는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그 중 어느 한사람도 달갑지 않은 이 없는 듯 낙산사는 넓은 팔로 모두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그곳은 어느 종교의 예배장이라기 보다는 마치 산속의 오두막에 찾아온 듯 마음이 편안했는데 이 사찰도 엄밀히 따지자면 자연 한가운데에 지어진 건축물이겠으나 절대로 그것에 위배되거나 거스르지 않고 온전히 그 안에 속해있는 낙산사의 고요하고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보며 자연의 질서를 따라 그들과 공존하며 살았던 조상들의 높은 뜻과 지혜를 느꼈습니다.
2박 3일간의 산업시찰을 마무리할 마지막 견학지는 화진포의 김일성별장과 민족의 허리 38도선에 인접해있는 통일 전망대였습니다.
통일 전망대를 직접 찾은 것은 처음이었는데 비록 잠시였지만 TV로만 봤던 그 곳 땅을 직접 눈으로 보니 우리가 살고 있고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가 아니며 지금은 갈 수 없는 그곳에도 분명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역사를 지녔으며 같은 쓰라린 아픔을 나눈 우리 민족이 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여전히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는 그 이념과 사상이 바뀌지 않는 한 자유 민주주의 이외에는 결코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와 타협할 수 없고 또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선택"
2010년 6월 9일 긴 해가 저물어 어스름하게 내려앉은 시간, 2박 3일간의 모든 여정을 마친 모범 전․의경들이 다시 인천지방경찰청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이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2박 3일 동안 어쩌면 그 동안 쌓여있는 스트레스나 몸과 마음의 피로는 풀 수 있었지만 오히려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의 짐을 하나 얻은 것만 같았습니다.
인천의 대한민국 의무경찰로서 뚜렷한 목표의식이나 소속감 없이 한사람, 한사람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이었는지, 부대를 대표하여 선발된 대원으로써 산업시찰을 마친 후의 나의 군 생활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나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부대원 모두와 공유해야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그다지 모범적이지도 않았고 특별히 공을 세운일도 없는 내가 모범 전․의경으로 선발된 것에 대해 여전히 대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의 그동안의 안이했던 생활을 반성하고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귀중한 가르침과 발전을 얻은 것만 같아 나의 2년간의 군 생활 중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지 말았어야 할 너무나도 과분한 선물을 받은 나는 이제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라 부대를 위해, 인천 경찰을 위해 강한 소속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더욱 값지게 살아야겠다고 지금 이렇게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의무경찰이기에.......
(소속=인천중부경찰서 방범순찰대/상경,장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