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부부는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를 했습니다. 시골이라지만 산골 오지 마을은 아니고 마당에 텃밭이 조금 있고 대문을 나서면 논밭이 훤히 펼쳐져 있는 동네지요.
낯선 시골 마을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많이 의지하고 무슨 일이든 여쭤 보고 의논하면서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이제 옆집 할머니가 시어머니 같다고 합니다.
텃밭에 잡초가 이리 무성하도록 뭐 하노? 집이가, 밀림이가? 강아지 꽉 묶어 놔야지, 채소 다 밟아서 망친다. 대문 좀 닫고 다녀라, 온 동네 쓰레기 집구석에 다 들어온다. 나갈 때 문단속 좀 잘하고 일찍일찍 다녀라. 집에 사람 없는 것처럼 보이면 도둑 든다. 부부 사이에 티격태격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동네 시끄럽다 등등….
아내 말대로 팔자에 없는 어머니 한 분 더 모시고 사는 셈이지요. 개구쟁이 아이 마냥 야단을 맞으면서 살다가 얼마 전에야 비로소 할머니께 한 가지 약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잘못을 해서 꾸중을 하시다가도 배고파요, 먹을 것 좀 주세요, 하면 언제 화가 났었더냐 하는 듯 재빨리 음식을 해 주시거든요. 음식 솜씨도 어찌나 기가 막힌지 집사람이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답니다. 그 요령을 알고 난 뒤로는 이제 길게 야단을 맞지 않고 맛있는 음식까지 먹을 수 있는 법을 터득했지요.
그래도 옆집 할머니 관심 덕분에 우리 집은 참 깨끗해졌어요. 할머니께서 휴지도 줍고, 마당도 쓸고 풀을 뽑아 주시거든요. 물론 저도 고마운 마음에 열심히 하고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절 보시고도 야단하는 일이 부쩍 줄어들었어요. 이상해서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그러더군요.
“애기 아빠는 무슨 말을 하면 잘 듣지도 않고 먹을 것만 찾는다고….”
손희국 / 부산시 강서구 강동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