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만 갈대축제
2017. 11. 금계.
11월 8일 수요일, 백수건달인 나와 유 선생, 김 선생은 강진여중에 근무하는 염손oo 선생한테 놀러갔다. 마침 강진만 갈대축제 기간이니 한 번 놀러오라는 전갈이었다.
전교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교조를 하다 보니 좋은 점 한 가지가 친구들이 많이 생겨 어디든지 아무 때나 놀러 다닐 수 있다는 행운이다.
가장 왼쪽 좀 벗겨진 사람이 그나마 일행 중에서는 가장 젊은 염손oo 선생이다. 장가들었다고 외국여행을 못 다닐 바는 아니로되, 특히 염손 선생은 장가를 들지 않은 덕분에 외국여행을 뻔질나게 많이 다닌 사람인데, 우리 같은 패키지여행보다는 배낭여행, 우르르 몰려다니는 쪽보다는 단출하게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이해하는 쪽을 선호한다고 한다.
강진만 바다 안쪽 수로 곁으로 코스모스와 노란 국화꽃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솔직히 강진만 갈대보다는 오히려 코스모스 국화가 더 화려하였다.
올해는 이쪽 지방 강수량이 부족한 탓이라는데 축제를 즐기기에는 갈대꽃이 너무나 빈약한 느낌이었다.
강진만 구강포(九江浦) - 강진만은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어서 아홉 하천의 골짜기 물이 합수한다고 해서 구강포라는 이름을 얻었단다. 우리나라에서 구강포의 그윽하고 아기자기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은 구강포뿐이다.
가물어서 갈대꽃이 빈약한 가운데 그나마 가장 볼 만한 곳이 이 갈대였다.
축제를 즐기러 온 유치원 아니면 어린이집 아이들.
“참, 니기들만 헐 때가 좋은 때여!”
또 다른 곳에서 좋은 때를 만끽하고 있는 아이들.
예전에는 ‘데크’라는 말도 없었다. 약품 처리를 해서 물에도 잘 썩지 않는다는 ‘데크’는 물을 가까이 하는데 좋은 시설이 되어주었다.
강진만 앞바다를 힘차게 달리는 어부 아저씨.
나는 점이나 사주팔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점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우리 어머니께서는 내 사주가 물을 가까이 할 팔자란다. 지내놓고 보니 나는 물가에서 많이 살았고, 물을 너무나 좋아한다.
저 어부가 새삼 부럽다. 다음 세상에서는 나도 작은 배 한 척 마련해야겠다.
저 깃발이 나를 부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형상화한 작품이란다. 강진만의 바람기가 저 깃발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바람기가 없는 세상은 살맛도 나지 않는 세상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을 바라보는 한 행복하게도 아직 나는 살아 있다.
저기가 만덕산. 가운데 오른쪽 언저리에 백련사, 왼쪽 능선 너머에 다산초당이 있다 한다. 나는 다산초당은 몇 차례 가보았지만 아직도 백련사는 못 가봤다.
바닷가 제방 위에 뜬금없이 백조가 두 마리 부리를 맞대고 있다. 아마도 강진만의 상징 조형물인 모양인데 너무 생뚱맞고 자연 경관과 어울리지 않아서 차라리 안 세운 것만도 못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갈대축제장 한 켠의 국화전시장. 강진을 대표하는 고려청자 모양을 본떠서 국화를 입혀놓았다. 갈대보다 훨씬 더 현란하다.
이번 강진만 갈대축제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일, 국화전시장에서 찍은 사진을 그 옆의 천막으로 가져가니 기념으로 인화해서 한 장씩 액자를 만들어주었다. 무료, 물론 강진군 예산은 좀 들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 공짜로 액자를 받는 일이다.
축제장 입구의 꽤 넓은 주차장 지붕은 모두 태양광 발전. 유 선생은 핵발전소를 줄이고 앞으로 지을 모든 주택 지붕에는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수학여행이라도 왔는지 말만한 큰애기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린다. 유치원생들만 좋은 시절인 줄 알았더니 저 나이도 정말로 꽃다운 나이다.
점심 식단은 돼지 수육과 추어탕. 술을 끔찍이도 좋아하는 염손 선생 덕분에 나까지 흠뻑 취했다.
추어탕 식당을 나오니 골목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강진의 자랑인 영랑 시인의 시도 곁들였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영랑은 떠나고 시만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월출산 자락에 자리한 백운동 별서정원에 들렀다. 백운동 별서정원은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정과 함께 전남의 3대 정원이란다. 옛 문인 화가들이 들락거렸을 만큼 제법 운치가 있는 곳이었다.
담장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별서정원의 정식 출입문이 그윽하게 예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백운동에서 올려다본 월출산과 차밭.
첫댓글 강진만 끄트머리 마량포구 가기 전에 있는 대구중학교에서 해직되었지요.
강진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강진. 하고 내뱉으면 울컥 하는 마음과 후훗 하는 웃음 또한 머금게 하는 곳입니다.
그 때,
함께 했던 젊은 친구들 나름으로 치열하게 사는 곳인데......
자주 가지 못하고 마음만 늘 한켠에 도사리고 있는 곳, 강진!
강진이 참 좋은 고장일세. 오죽하면 문화유산 답사 1번지라 했겠는가. 나는 가끔 혼자 쓸쓸하면 버스를 타고 강진에서 내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외로움을 달랜다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말든 나에게는 언제나 강진이 어머니 젖을 어루만기는 것처럼 포근하고 평안하고 풍만한 고장일세. 방하도장에서 도 많이 닦으시게나.
"만덕호에 늪처럼 내려 앉은 안개가 어디론지 몰려 가고 있습니다. 바다 건너 저쪽, 희부옇게 보이는 곳이 칠량입니다. 안개 덜 걷힌 이쪽, 봉우리 밑으로 다산의 집이 들앉아 있지요. 굴곡 깊은 강진만이 드러납니다." 한상준 소설집 <강진만>의 앞 표지글을 읽어드립니다... 오랜 교단의 고락을 함께한 공으로 이렇게 조촐한 카페에서 조명준선생님과 담소를 나누시니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입니다. 이 시각은 새벽 5시 22분. 근래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한형과 비슷하나봐요. 이도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