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교 급식소가서 3일이 지났다.
첫날과 둘째날은 내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그것만 해서,
여유가 전혀 없었다.
청소를 하면서도 내가 이걸 왜 하는지 이해도 못하고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삼일째가 되니까 이제야 여유가 생겨서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제는 미트볼과 메밀국수가 점심메뉴라서,
메밀국수 만드는 과정까지는 습득을 못했지만 미트볼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배웠다.
이거는 잘 기억했다가 다음에 종삼회 모임 있으면 미트볼 사다가 형들하고 나눠먹어야지 복습도 할겸,
그렇게 마음먹었다.
미트볼 기름에 튀기는 것은 상식이고,
미트볼 소스 만드는 법을 보니까,
물엿의 비율이 1, 케찹의 비율이 3으로 냄비에 볶다가,
고추장의 비율을 1로 해서 다시 볶아낸 후 완성시키는 것을 봤다.
조리사님한테 원래 이게 만드는 방법 전부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고 단가 때문에 기본적인 틀에서만 음식을 만들고,
1500명 식사를 한 번에 조리하는 거라서 같은 음식이라도 요리할 때보다는 들어가는 재료가 적다고 말했다.
그럼 요리할 때는 뭐를 더 넣어야 하냐고 물어보니,
간마늘 넣어주고 땅콩같은 거 넣어줘도 더 고소하다고 해서 수첩에 적어놨다.
2.
6시 20분까지 출근해서 30분부터 일하지만,
9시 30분에 아침 먹고,
1시 30분에 점심을 먹어서 식사비가 크게 줄어서 돈이 많이 절약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만들 줄 아는 요리가 하나도 없어서,
석식을 맡기기에는 실력 미달이라서,
조리실장님이나 조리사님이 일찍 퇴근하면 그 자리를 메꿔야하는데 아직 그럴 수준이 안되서,
4시 30분이면 퇴근하고,
당분간은 야근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냐면,
5500원 곱하기 3시간 = 16500원,
16500원 곱하기 22일 = 363000원,
3십6만3천원이 내 월급에서 떨어진다는 가슴 아픈 계산이 2.5초 지나갈 때 암산으로 머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130만원씩 적금 넣어야하는데 이러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퇴근해서 pc방 사장님한테 월요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목요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수원에 미술심리학원 다니면서 평일알바한테 일 시키는 거 저한테 넘겨주십시오 부탁을 해서,
그걸 받아왔다.
그래도 여전히 처음 계산보다 월급이 20만원 줄었지만,
200만원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냈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쪽으로는 굉장히 빨리 움직인다.
3.
그래도 걱정이 많은 게 급식소는 학생들 방학하면 쉬는 일터라서,
조리실장님, 조리사님, 영양사님 두 명은 정규직이라서 수당은 안나와서 놀아도 기본급은 받지만,
그러니 그들에게 학생들 방학은 유급휴가기간이지만,
나와 기타등등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은 그 기간에는 백수가 되는 거라서,
이걸 또 어떻게 막아내야 ... 적금을 무사히 넣을 수 있을까 ...
집에 와서 혼자 소주 마시면서 머리 쥐나도록 고민을 했다.
최소한 어디가서 그 쉬는 기간에 딱 맞춰서 120만원을 벌어와야 적금이 안틀어지는데 ...
공장을 다니기도 시간이 촉박하고,
회사에서 여기만 단체급식하는 게 아니고 다른 곳에도 to가 있으면 알바로 보내준다고 하지만,
당장 석식도 실력없다고 인건비 아낀다고 그냥 집에 보내버리는데 ...
지금 벌써 4월인데 7월 중순까지 조리사님에 준하는 요리실력을 쌓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리고 ...
빨라면 올해 겨울방학때까지는 일해야 노하우가 쌓일 텐데 ... ...
정말 노가다 하기 싫었는데 ... ... 인력소개소 나가서 20일을 꼬박 일해서 7만원씩 받아와야하는 짓을 또 해야 하는구나 ...
그런 생각을 했다.
4.
왜 매일매일이 서바이벌 전쟁하듯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기죽을 성격은 아니지만 ... ...
오늘 살고 내일은 무슨 일이 있겠지 ... 예상가능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거 변수가 생기면 그거 대응하는데 에너지를 다쓰고,
뭐 하나 무너지면 또 그 뒤에 세운 계획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뭐해야지 계획세우면 진이 다 빠지기 때문이다.
5.
급식소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게 나처럼 술 마시고 담배피는 사람 아무도 없고,
완전히 난 야만인 취급을 받아서 거기서 조금 놀랐다.
다들 가정이 있어서 건강이 좋지 않아서 고꾸락하면 그분들도 인생플랜이 무너지는 거라서,
알아서 조심하고 건강 생각하는 것을 보고 많이 느꼈다.
담배를 끊지를 못하면 하루 반 갑 정도라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에 한 갑 반을 피는데 ... 지금이야 젊으니까 그래도 버티고,
술도 매일매일 소주 한 병이나 두 병은 마시고 자는데 ...
몸에서 신호가 오는게 이제 그러면 안된다는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뚱뚱하면 여자님에게도 인기가 없다.
물론 나는 날씬했어도 평생 여자님한테 인기가 없었지만 그래도 외형적인 이미지라는 게 있지 않은가.
술을 일주일에 한 번만 마시든지,
아니면 안 마시면 안 마시다가 벗을 만나게 되면 그때나 한 잔 하든지,
이래야 정상적인 사람이지 ...
평생 젊은 사람으로 살 거 아닌데 지금 정신못차리면 ... 마흔 넘어서 한참 돈 벌고 하고 싶은 거 할 때,
병원만 들락날락하다가 일찍 죽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워서 그래서 좋은 습관을 들여놔야 하는데 ... ...
매일매일 소주 빨고,
틈만 나면 입에 담배 물던 습관 ... 13년된 세월 ...
이거 고치는 것도 쉽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술은 그렇다치고 예전에 담배안필때 어찌 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항상 혼자 일하다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니,
주당과 골초의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이렇게나 안좋은 것이었구나를 정말 많이 느꼈다.
첫댓글 이땅의 무수한 주당과 골초들의 비애를 한몸에 ㅋㅋㅋㅋㅋ 욕보심다. ^^ 십자가 지고 가느라. ^6 ㅋㅋㅋ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