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쟁력은 덩치順이 아니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듯, 국가 경쟁력도 덩치 순이 아니었다. 10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국내총생산(GDP) 기준의 경제 10대국 중 미국·캐나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경쟁력 10걸(傑)에 들지 못했다.
덩치 큰 나라를 제친 곳은 홍콩·싱가포르·룩셈부르크 등 작지만 강한 ‘강소국(强小國)’이었다. ①작은 정부 ②규제완화 ③개방 ④우수한 인적 자원 ⑤유연한 노사관계의 5대 강점이 이들의 경쟁력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반면 독일·프랑스 등 대국(大國)들은 ?경직되고 폐쇄적인 노사문화 ?글로벌 경제에 역행하는 반(反)개방주의 등이 약점으로 지적되며 경쟁력 아래 순위로 밀렸다.
한국의 경쟁력이 9계단 추락한 원인 역시 이들 약체대국과 비슷했다. IMD는 “한국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성사 여부가 중요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작지만 강한 강소국
IMD는 보고서에서 “경쟁력은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번영을 위해 더 나가려는 야망(ambition)”이라고 정의했다. IMD가 현재 복지에 안주하려는 경제대국 대신, 적극적으로 개방엔진을 가동하는 강소국에 후한 점수를 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경쟁력 2위를 기록한 홍콩은 경제 규모로는 세계 38위에 불과한 작은 도시국가. 그러나 정부 효율성은 2년 연속 세계 1위를 달렸다. IMD는 홍콩 정부정책의 강점으로 “개인소득세, 기업 법인세율이 근로·투자의욕을 꺾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낮다”고 지적했다.
경쟁력 8위를 기록한 스위스는 경제규모 세계 20위. IMD는 스위스 각 주(州)정부가 추진하는 감세(減稅) 정책과 세제(稅制)의 효율적 운영,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는 데 정부규제가 낮은 점을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으로 들었다.
경쟁력 10위를 기록한 핀란드는 국제화된 인력이 풍부해, 글로벌 경쟁시대에 유리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혔다. 국제화가 쉽게 수용되는 풍토로 인해 노키아 같은 세계적 기업이 핀란드에서 출발할 수 있었고, 정부의 관료주의가 어느 국가보다 낮다고 IMD는 평했다. 경쟁력 9위인 룩셈부르크는 “경제전반에 기업가 정신이 충만하다” “대학교육이 기업들의 수요에 적합하다”는 점이 경쟁력을 높인 요인이었다.
◆크지만 약한 경제대국
반면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7개국(G7) 회원국 중 독일·프랑스·이탈리아 3개국은 ‘유럽병’으로 불리는 복지병과 정부 부문 비효율성이 약점으로 평가돼 국가경쟁력 순위가 추락했다.
세계 3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법인·소득세율이 조사대상 61개국 중 각각 58위, 54위를 기록할 정도로 세부담이 높았고, 사회보장비용 부담률(56위)도 하위권에 처졌다.
프랑스는 사회보장비용 부담률(60위), 환경변화에 둔감한 정부정책(56위), 인종· 성차별(56위) 등이 약점으로 지적됐고, 반(反)개방적 문화와 세계화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꼴찌인 61위를 기록했다.
경제규모 세계 7위인 이탈리아는 경쟁력 순위가 56위로 추락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이탈리아 AGI통신은 “부실한 경제운용 성과와 정부행정 비효율이라는 ‘최악의 칵테일’이 경쟁력 순위 하락을 초래했다”고 전했다.
<출처:chosun.com/2006.5.11>
[사설] 부끄러운 국가경쟁력 38위
매년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하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한국의 경쟁력을 작년보다 9단계나 추락한 세계 38위로 평가했다. 조사대상 61개국 중 절반 안에도 못든다니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난다. 지난해 9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비슷한 보고서에서는 한국이 12단계 뛰어올라 17위를 기록했던 것을 보면 이런 널뛰기 순위 변동이 제대로 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실제로 한국의 경쟁력 순위를 끌어내린 요인이 된 정부행정효율 분야(47위)와 기업경영효율 분야(45위)는 주로 기업인 설문조사에 의존한 평가다. 국제유가와 환율변동, 반기업정서 확산 등 환경 변화에 따른 심리적 요인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니 실질적 펀더멘털이 크게 바뀌었다고 하기엔 무리다. 세계 경제력 10위 국가가 이런 보고서 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는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세부 평가 항목을 보면 정부와 기업 효율성을 갉아먹는 주요 원인은 제도적 여건(46위)과 기업관련법(51위), 그리고 꼴찌를 기록한 노사관계(61위)였다. 규제개혁과 노사안정을 갈망하는 기업인들 요구에 귀를 막고 있는 정부 책임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 기업들은 세계 일류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정부는 분배, 복지, 균형 타령이나 하고 세금 늘릴 궁리만 하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 최강의 노조가 만들어 놓은 노동시장 경직성을 해소하지 않고는 국가경쟁력이 향상될 리 없다. 말로만 떠들어온 '정부혁신'도 실질적인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 방만하게 널려 있는 온갖 위원회, 기획단들부터 빨리 정리할 건 정리하고 국민혈세 짜내기에 앞서 재정운용 효율화도 더 고민해야 한다. 청계천, 서울의 숲 같은 작품을 남기면서도 부채를 절반으로 줄인 서울시 행정의 경영마인드를 중앙정부도 좀 배웠으면 한다.
IMD 보고서는 기업에도 몇 가지 숙제를 던져줬다. 감사ㆍ회계관행(58위)과 경영자 신뢰성(54위) 항목은 편법 상속과 비자금으로 물의를 빚는 재벌의 도덕성 문제가 국가경쟁력 하락의 큰 원인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우수한 금융전문가 항목이 최하위로 나타난 만큼 선진금융기법 도입도 서둘러야 하겠다.